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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의 ‘축구로 행복했던 시간’

“또 이런 시간이 올까요?”

홍명보호 주장 구자철(23·아우크스부르크)의 목소리가 갑작스레 갈라졌다. 믹스트존에서 한창 한·일전의 의미를 진중히 설명하던 주장의 모습은 사라지고 친구들과 예고된 이별에 한숨짓는 청년만 남았다.

지난 11일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축구 3·4위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후반 쐐기골을 터뜨려 한국에 2-0 승리를 안긴 구자철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하루가 지난 뒤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으로 이동해 동메달 시상식에 오른 자리에서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올림픽 축구대표팀 구자철이 1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d

구자철은 홍명보 감독(43)과 처음 인연을 맺은 2009년을 떠올렸다.

당시만 해도 홍명보호는 잠재력이 있는 선수들이 모였을 뿐 올림픽을 넘보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그러던 이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이 자리까지 왔다. 첫해 이집트 청소년월드컵 8강을 시작해 이듬해 광저우 아시안게임 3위를 거쳐 올림픽에서 사고를 쳤다.

어느 한 팀도 만만히 볼 수 없었지만 하나로 똘똘 뭉쳐 세상을 놀라게 했다. 모두가 패배를 예상한 멕시코와의 첫 경기를 무승부로 마친 것을 시작으로 메달 후보로 꼽히던 스위스, 개최국 영국을 잇달아 물리쳤다. 패배를 예견하던 도박업체들의 예상을 매번 뒤집으며 ‘도박 파괴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저 ‘꿈’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우리가 가진 축구를 매 경기 보여줬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며 웃었다.

비록 결승 진출의 문턱에서 브라질에 패했지만 흔들리지 않고 벼랑 끝 동메달 매치에서 열린 한·일전을 완벽한 승리로 결정지었다.

구자철은 “일본에는 지고 싶지 않았다. 꼭 1년 전 삿포로에서 0-3으로 진 뒤 썼던 메모를 보니 ‘부끄럽고 속상하다’고 쓰여 있더라. 이번에도 같은 결과를 반복할 수는 없어 경기장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나왔다. 그 결과가 승리라 다행이다”고 말했다.

신명나게 이야기하던 구자철의 환한 얼굴은 홍명보호의 해체 이야기가 나오자 조금씩 굳기 시작했다. 홍 감독은 런던올림픽을 끝으로 홍명보호의 해산을 선언했다. 워낙 끈끈한 동료애를 자랑하던 이들이기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잠시 울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구자철은 “홍 감독님이 런던이 마지막이라고 하시더라. 그리고 그 마지막을 화려하게 불태우자고 하셨다. 그 믿음에 보답해서 기쁘지만, 동료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힘겹다”고 말했다.

잠시 눈가에 물기도 비쳤다. “웃으면서 헤어지자고 약속했는데…”라고 잠시 말을 줄인 그는 “좋은 기억만 갖고 떠나겠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올림픽, 큰 축제였다고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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