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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20년 ‘질투로 시작해 HOT하게 뜨자 문화침략 내세워 골든타임 불가’

1992년 8월 24일 한·중 양국이 국교를 맺은 뒤 꼭 20년이 흘렀다. 한류(韓流)의 역사는 중국 수교와 함께 물꼬를 텄다. 지금은 고유명사가 된 ‘한류’는 중국에서 처음 탄생했고, 이제는 세계에서 통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키워드로 한류의 변천사를 들여다봤다.

-한류의 태동

■<질투>(1993년)

중국에서 방송된 첫 한국 드라마다. 국교를 맺은 뒤 몇 년간은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질투>가 중국 국영방송인 CCTV를 통해 방영됐지만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사랑이 뭐길래>(1997년)

한류가 ‘터진’ 것은 1997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방송되고 나서다. 소위 중국에서 인기를 모았던 최초의 한국 드라마다. 시청률 15%로, 중국내 1억5000만 명이 시청했다. 그렇다고 주인공인 ‘대발이’ 최민수나 하희라, 이순재, 김혜자 등 배우 개인에 관심의 초점이 모아진 건 아니다. 중국 시청자들의 눈길을 단숨에 잡아끈 스타는 이듬해 방송된 다른 작품이었다.

■안자이쉬(1998년)

<별은 내가슴에>의 주인공 안재욱은 최초의 한류스타라고 할 만하다. 중국인들은 그를 안자이쉬로 불렀다. 그가 나타나는 행사장마다 5만~6만여 명의 팬들을 끌고 다니며 원조 한류스타로 군림했다. 드라마의 잇따른 성공으로 CCTV를 비롯해 지역 방송사는 장동건 주연의 <의가형제> 차인표의 <신데렐라> 이성재의 <거짓말> 등을 앞다퉈 방송했다. 당시 중국의 부촌지역으로 꼽히던 광둥성과 푸젠성에서는 <거짓말>의 여주인공 배종옥 패션이 유행하기도 했다.

-장르의 확산

■H.O.T(1998년)

H.O.T

드라마로 촉발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은 대중음악으로 이어졌다. 포문은 당대 최고의 인기 아이돌그룹 H.O.T가 열었다. 유튜브도, 스마트폰도 없던 1998년 5월 현지 음반사 우전소프트를 통해 H.O.T의 음반이 소개된 뒤 중국 청소년들 역시 H.O.T에 열광했다. 이듬해에는 중국 정부 최초로 클론이 유료공연을 개최했고, 2000년 2월 H.O.T는 1만여 명이 몰려든 베이징 공인체육관에서 중국 문화부 초청으로 공연을 열었다. 이들과 함께 NRG, 베이비복스, 태사자 등도 중국 팬들의 마음을 달궜으며, 이들이 입국할 때마다 베이징 공항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댄스음악 열풍은 한류문화를 패션으로까지 연결시켰다. 중국 신세대는 헤어스타일, 패션에서 H.O.T 등 한국 스타들을 따라했고, 이들 사이에는 ‘따페이쿠’라고 불리는 힙합바지가 유행했다. 머리 염색을 하는 젊은이들도 늘어났다. 한국가수의 사진이나 캐릭터가 그려진 각종 팬시상품 전문점, 한국식 패션몰도 북새통을 이뤘다.

■한류(1999년)

대륙을 공략하는 한국 대중문화에 대해 중국은 ‘한류(韓流)’라는 이름으로 칭했다. 한류(寒流)란 원래 시베리아에서 몰아치는 찬 바람을 뜻하는 말이지만, 그만한 강도로 중국 문화 전반에 몰아치는 한국문화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1999년 중국 공산당 청년기관지 <중국청년보>가 최초로 이 단어를 사용한 뒤 이듬해부터 대다수의 미디어들은 이 단어를 사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한류의 영문표기는 ‘Korean Wave’혹은 ‘Hallyu’이다.

■<엽기적인 그녀>(2001년)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중국에서 처음 상영됐다. 이를 통해 전지현이 스타로 자리매김 했고 영화 OST ‘아이 빌리브’도 인기를 얻었다.

-한류 활황기

■한국가수시상식(2005년)

중국 CCTV가 자체 기획으로 <한국 가수 시상식>을 방영한 것은 자국내 한국가수들의 인기 정도를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국내에서 활동하던 가수들의 중국진출도 이어졌다. 단순히 공연을 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 머무르며 음반을 발매하고 현지 방송에 진출해 국내처럼 활동하는 식이었다. 2004년 말 중국에서 가수로 데뷔한 장나라는 2006년까지 현지에서 정규앨범 5장을 발매했다.

■<대장금>(2005년)

MBC <대장금> 한 장면.

2005년 7월 방송된 드라마 <대장금>은 한류의 위력을 보여준 드라마다. 홍콩 TVB에서 방영한 <대장금>은 중국이 시청률 집계를 시작한 뒤 가장 높은 시청률인 50%를 기록했다. 중국의 주요 방송사들은 이후 앞다퉈 <여인천하> <허준> 등 20여 편을 내보냈다. 2000년 이후 한국의 대 중국 방송프로그램 수출금액은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01년 248만7000달러였던 콘텐츠 수출금액은 2005년 1096만2000달러로까지 성장했다.

-중국의 견제

■“한류에 항거하라”(2005년)

중국의 한류 정착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중국 대중문화 시장의 불법복제는 예전부터 극심했고 이 때문에 시장전망을 비관적으로 내놓는 전문가들도 많았다. 한류가 주목받으면서 한국 대중문화 불법 콘텐츠도 급속도로 많아졌다. 한편으론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력 확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중국 대중문화계 인사들은 공개적으로 ‘문화 침략’이라는 발언을 해 중국내 한류확산 반대 여론을 이끌었다. 2005년 말 청룽은 “한류에 항거하라”고 말했고 중국의 유명 사극 배우인 장궈리도 “중국에서 한류가 성행한 건 매국노 같은 언론들 때문” “한류는 문화침략”이라고 발언했다.

■골든 타임 방송 제한(2006년)

반대여론은 중국 정부의 외국문화 수입 규제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2006년 중국국가광전총국은 CCTV에 연간 수입하는 한국 드라마를 4편으로 제한했다. 또 중국 문화부는 해외음반 수입을 비롯해 실내 체육관 공연까지 규제하면서 한류 가수들의 발을 묶었다.

한류 진앙지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오히려 중국에서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등 해외 각지로 한류가 뻗어나가는 계기가 됐다. 중국 내에서 한류 공급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국내 가수들의 현지 데뷔에서 한발 더 나가 현지인들을 연습생으로 발탁하기 시작했다. 아예 중국 활동을 염두에 두고 팀을 구성해 데뷔시키는 방식이다. 슈퍼주니어의 일부 멤버들이 ‘슈퍼주니어 M’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나 중국인 가수 장리인의 데뷔가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미쓰에이, F(x), Exo-M 등도 중국인들이 주요 멤버로 활약하고 있다.

■<애상여주파>(2010년)

한국에서 수입해 단순 방송하던 데서 공동제작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지난 2010년부터는 현지 리메이크가 봇물을 이루기 시작했다. 특이한 점은 국내 인기 배우들이 현지 방송에 직접 출연하는 형식이 주류를 이뤘다. 일방향의 한류가 쌍방향의 한류로 한단계 진화한 셈이다. 2000년 국내에서 방송됐던 <이브의 모든 것>은 2010년 장혁 주연의 <애상여주파>(愛上女主播)로 방송돼 전체 프로그램 중 시청률 2위를 기록했다.

■골든 타임 방송 불가(2012년)

올해부터 중국은 모든 자국 TV에서 외국영화나 드라마의 골든타임(오후 7~10시) 방영을 금지하는 등 공고한 견제책을 구사하고 있다. 결국 드라마는 중국 방송에서 퇴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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