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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그땐 그랬지]화제작 ‘피에타’ 주연 이정진

이정진(34)은 패션모델로 활동하다가 <해변으로 가다>(2000)로 데뷔했다. 데뷔작을 비롯해 <해적, 디스코왕 되다> <말죽거리 잔혹사> <마파도> <해결사> <돌이킬 수 없는> <원더풀 라디오> <피에타> 등에서 줄곧 주인공을 맡았다. 제6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피에타>에서 알 수 있듯 출연작마다 의외의 인물을 맡아 깊은 인상을 남겨 왔다.

[영화배우 이정진.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패션모델 거쳐 배우로 데뷔

이정진은 청소년 시절 배우를 꿈꾼 적이 없다. 준수한 외모를 두고 주변에서 ‘배우 하면 좋겠다’고 입을 모을 때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먼 훗날 영화배우 데뷔 권유를 받았을 때에는 거부하기까지 했다. 패션모델도 우연히 됐다. 이 또한 처음에는 안중에 없었다.

건국대 원예학과에 진학한 그는 교정에서 졸업작품 발표회를 준비하고 있던 한 선배의 눈에 띄였다. 일면식이 없는 선배였다. 모델이 돼 달라는 이 선배의 요청을 이정진은 한사코 사양했다. 할 줄 모르고 관심도 없다면서. 한 달쯤 거절하다가 서둘러 워킹훈련을 받고 무대에 섰다. 이때 그를 눈여겨 본 유명 모델 에이전트의 권유를 받고 본격 패션모델로 데뷔했다. 유명 모델 에이전트(모델라인) 소속이던 그는 학생 신분으로 자가용을 소유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사진|<해변으로 가다>의 이정진(왼쪽에서 두 번째)

영화배우도 패션모델이 된 것과 같은 과정을 거쳐 데뷔했다. 2012년 10월 현재, 수애·김남길·이소연 등이 소속돼 있는 스타J 엔터테인먼트 정영범 대표의 제안을 처음에는 고사했다. 입고 싶은 옷이지만 자신에게 맞을는지 몰라 거절했다가 받아들였다. 연기훈련을 받은 뒤 탤런트로 활동하던 중 <해변으로 가다>(감독 김인수)로 신고식을 치렀다.

“패션쇼 카탈로그를 보셨대요. 제가 거절하자 ‘배우가 돼도 배우가 안 되겠다’고 여기셨고,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하셨고….”

정 대표는 미국의 오클라호마시티대학교 신문방송학과와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을 졸업했다. 광고대행사에 다니다가 스타J 엔터테인먼트를 창립, 매니저로 전업했다. 스타J에서 이정진과 함께 연기수업을 받은 이들 가운데 유명 배우가 된 이들이 즐비하다. 장동건·고소영 부부를 비롯해 원빈·심은하·김지수·이승연 등이다.

■공포영화로 씁쓸한 신고식

<해변으로 가다>는 공포영화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PC통신 동호회 회원들이 바다로 놀러갔다가 치르는 죽음의 공포를 그렸다. 이정진은 자신만만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한, 모임의 리더이자 바다여행을 기획한 대학 경영학과 재학생 ‘상태’로 출연했다.

촬영은 경남 남해에서 두 달여 동안 했다. 저예산영화로 제작여건이 좋지 않았다. 주인공을 맡은 배우들이 이정진과 김현정·재희·이승채·이세은·양동근 등 모두 신인이어서 촬영과정이 순조롭지 않았다.

“많이 혼났어요. 한 데 모여 벌을 받기도 했고. 너나 없이 신인이다보니 열정만 넘쳤지 조화를 이루는 데에 미숙했던 거죠.”

이 영화는 2000년 8월 12일 개봉, 서울에서 8만4227명(이하 한국영화연감 기준)이 관람했다. 저예산영화로 나름 선방했지만 화려한 신고식을 기대했던 이정진은 씁쓸한 마음을 추스려야 했다. 2002년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 연기력을 쌓는 데 주력했다. 독백·발음 연습부터 꼼꼼히 다시 시작했다. 영화 <해적, 디스코왕 되다>(감독 김동원)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해적, 디스코왕 되다>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춤과 액션을 버무린 코미디 영화다. 이정진은 타이틀롤 ‘해적’ 역을 맡았다. ‘성기’(양동근) ‘봉팔’(임창정) 등과 싸움질을 일삼던 중 첫눈에 반한 ‘봉자’(한채영)를 위해 룸살롱 사장이 제안한 디스코 경연대회에 참가, 우승을 차지하는 순정파 고교생이다.

당시 이정진은 액션연기가 처음이었다. 이를 위해 매일 서너 시간씩 연습을 했다. 춤 또한 문외한이나 다름 없었다. 반면 양동근·임창정 등은 춤에 능했다. 이정진은 두 배우 틈에 끼여 스트레스를 적잖이 받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춤연습에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개인지도를 아끼지 않은 양동근 등과 함께하면서 공동작업의 매력을 느꼈다.

<해적, 디스코왕 되다>는 2002년 6월 5일에 개봉됐다. 월드컵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41만1513명이 관람, 흥행에 성공했다. 이어 <말죽거리 잔혹사>(감독 유하)가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에 맞서 전국에서 311만5767명이 관람하고, 네 번째 작품 <마파도>(감독 추창민)가 309만467명을 동원하면서 이정진은 흥행배우로 손꼽혔다.

■도전으로 일관, 변신을 거듭

훤칠한 키(184㎝)와 수려한 외모, 감미로운 목소리…. 이정진은 멜로영화 주인공의 조건을 고루 갖췄다. 하지만 이정진의 출연작 가운데 본격 멜로영화는 한 편도 없다. 멜로 범주에 드는 영화도 <원더풀 라디오>(감독 권칠인)에 지나지 않는다. 이정진은 퇴출 위기에 몰린 아이돌 가수 출신 DJ ‘진아’(이민정)의 재기를 돕고 그녀와 사랑도 꽃피우는 라디오 프로그램 PD ‘재혁’으로 출연했다.

이정진은 또한 외모에 반하는, 선입견을 깨뜨리는 배역에 도전해 왔다. 대표작인 <말죽거리 잔혹사>는 시나리오 초고를 가장 먼저 읽은 뒤 먹이를 찾던 하이에나처럼 모범생 ‘현수’(권상우)가 아닌 ‘우식’을 원했다. 학교에서 가장 매서운 주먹을 지닌, 매정하고 비열하기도 해 적이 많은, 결국 뒤통수를 맞고 종적을 감추는 인물이다.

이후에도 이정진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마파도>에서 거금을 훔치고 잠적한 여자를 쫓는 건달 ‘재철’로 주목받은 뒤 <해결사>(감독 권혁재)에서는 출세를 위해 주변을 저버리는 형사 ‘필호’ 역을 맡았다. <돌이킬 수 없는>(감독 박수영·김효광)에는 아동성폭력 전과 때문에 어린이 실종 사건의 용의자로 몰려 곤욕을 치르는 ‘세진’으로 출연했다. <피에타>에서 한 사채업자의 피도 눈물도 없는 하수인 ‘강도’로 열연을 펼쳐 월드스타로 등극했다.

<말죽거리 잔혹사> 출연 당시 이정진은 담배를 필 줄 몰랐다. 촬영을 앞두었을 때부터 열심히 배웠지만 담배를 권하고 피는 장면은 결국 편집 과정에 모두 삭제됐다. 이를 의식, <마파도>에서는 하루에 세 갑도 피웠다. “이러다가 쓰러질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할 정도로 연습을 거듭했다. 섬마을의 할머니로 출연한 김수미·여운계·김을동·김형자 등과 마주쳤을 때 이문식은 담배를 감춰야 했지만 이정진은 개의치 않아도 됐다. 그가 담배 피우는 연기를 위해 연습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독려를 받았다. 극중에서처럼 맞담배를 피라고.

영화가 완성되는 과정은 곧잘 출산과 비견된다. 난산이 아닌 영화가 없다고 한다. 이정진은 “출연작 가운데 <피에타>가 육체적·정신적으로 가장 힘들고 어려웠다”고 했다. “22일 동안 풀만 먹어 7.5㎏를 뺐고 2주 남짓한 촬영 기간에 혼신을 다했다”며 “현장에 모니터와 조명도 없고 스태프도 10여 명에 불과해 사람들이 영화 찍는 줄 몰랐다”고 했다. “김기덕 감독과 함께한 배우·스태프에게 감동받았다”며 “결과도 좋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사진=<해적, 디스코왕 되다>, <말죽거리 잔혹사>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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