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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 지망 조근현 감독, 미대 꼬드기길 잘했죠?

영화 ‘26년’ 과 인연 깊은 박재동 화백

고교 교사때 재능 알아봐… 미술감독하다 첫 연출, 너무 잘해내 뿌듯하다

지난 5일 전화 인터뷰로 만난 시사만화가 박재동(60) 화백은 대단하다, 굉장하다는 말을 자주했다. 만화 <26년>으로 법이 해결치 못한 문제를 상기 시킨 원작자 강풀이 굉장하고, 숱한 투자 좌절에도 <26년>을 영화로 만든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가 대단하고, 스크린에 잘 구현해 낸 조근현 감독이 그렇다고 했다. 박 화백은 <26년>과 실타래 같은 인연으로 얽혀있다. 조근현 감독, 강풀과의 사연도 길지만, 영화가 다루고 있는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다. 인연의 시작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4년 내가 중경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있을 때 고등학생이던 조근현 감독을 가르쳤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감각이 좋았어요. 그때 그 친구가 그린 로봇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더라고. 아주 재능 있는 데도 공대를 지망하길래 꼬드겨 미대를 가라고 했죠.”

박 화백은 조 감독이 고등학생 때 그린 로봇 그림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조 감독은 삼수 끝에 서울대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박 화백이 학교를 그만두고 화실을 운영했을 때 대학생이된 조 감독이 강사로 일했다. 이후 영화계에 입문한 조 감독은 <장화, 홍련> <음란서생> <마이웨이> 등의 미술감독으로 이름을 떨치다 <26년>으로 감독에 데뷔했다.

박 화백은 “영화 미술감독으로 명성을 떨치니 기분이 좋으면서 안심이 됐다. 미술을 추천했는데 잘못된 조언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해줬다. 지금은 감독까지 되니 얼떨떨할 정도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원작자 강풀은 박재동 화백의 만화를 보고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박 화백은 강풀의 결혼식에서 축사를 했다.

강풀을 “재미나고 풍부한 소재를 가진 대형 이야기꾼”이라고 말한 박 화백은 “<26년>같이 사회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해준 게 고맙다”고 말했다.

<26년>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 유족들이 26년 후 모여 사건의 주범을 암살하려 시도한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5.18을 소재로 한 만화, 영화, 소설 등은 많았지만 단죄, 복수를 다룬 적은 거의 없다. 2008년부터 영화화를 시도했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번번이 투자가 무산됐다. 시민들이 ‘제작두레’ 방식으로 제작비 일부를 보태고 가수 이승환, 방송인 김제동 등 개인 투자자들이 힘을 모아 지난달 29일 개봉했다. 여러 인연으로 얽혀있는 박 화백이 이끄는 애니메이션 회사 오돌또기도 영화에 참여했다. 영화 속 5.18 당시 시민들이 희생되는 장면은 오돌또기의 애니메이션으로 묘사했다. 또 박 화백의 아내인 배우 김선화, 딸 박솔나리씨는 출연료를 받지 않고 연기했다.

“조 감독의 첫 연출작이라 걱정 많이 했는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영화에 푹 빠졌어요. 특히 ‘그 사람’이 ‘요즘 젊은 사람들은 나한테 감정이 안 좋나봐, 직접 당해보지도 않고’라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실제로도 (전 전 대통령이) 그런 말을 했는데, 그건 (젊은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당하게 했다는 걸 인정하는 거잖아요. 감정이입을 하다보니 ‘그 사람’의 거실에서 난투극을 벌일 땐 꽤 통쾌했습니다.”

박 화백은 5.18을 계기로 작품 성향이 바뀌었다고 했다.

“5.18이 일어났던 1980년에 미술학원 강사를 하고 있었어요. 언론이 통제당할 때니까 ‘광주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얘길 소문으로만 들었죠. 그해 말인가 ‘현실과 발언’ 동인전을 광주에서 했는데, 그때 피해자들의 증언을 직접 접했죠. 끔찍할 정도로 처절해서 믿을 수 없었어요. 전까진 모더니즘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그때부터 민중미술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26년>은 나와 이래저래 얽혀있는 특별한 영화”라고 말하는 박 화백은 여러 모로 의미있는 영화라고 말했다.

“투자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암초에 부딪쳤지만 끝내 (영화화) 해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요. 많은 국민들의 여망이 결실을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민중들이 영화로 대리 해소하길 바라겠습니까. <도가니>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같은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법이나 정치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걸 예술이 하고 있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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