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X세대 오빠들의 귀환 대한민국이 움직인다

■ 마흔, 좀 놀아본 오빠들

2012년 인기를 모은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 나오는 네 남자는 1972년생, 91학번 동갑내기다. 과거 40대가 진짜 ‘아저씨, 아줌마’였다면 ‘신사의 품격’의 40대는 약간 나이가 든 오빠였다. 한마디로 요즘 40대는 그냥 40대가 아니다. 책이 주목하는 것은 과거 ‘X세대’ ‘오렌지족’으로 불리던 그들이다.

왕성한 문화소비 시대였던 1990년대에 20대를 보낸 이들이 이제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을 갖춘 30대 후반~40대 초·중반이 돼 문화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고 진단한다. 더욱이 그들은 전통적 가족관에서 방향을 틀어 자기 표현에 강하고 1인 라이프를 적극 즐기기까지 한다. 이들은 국내 수입차 시장을 크게 키운 일등공신이자 공연계의 큰손이며 해외여행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주체들이다.

■ 장남감을 갖고 노는 애어른들

반려 동물·SNS 문화 등 소비주역이 된 3040 통해
통계·숫자로는 설명못한 다양한 현상 생생한 진단

서울 용산 아이파크백화점에 있는 장난감 테마관 ‘토이&하비’는 ‘좀 놀아본 오빠’들을 위한 공간이다. 여기서 판매되는 장난감은 무선조정 자동차나 비행기, 헬기 등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소수의 마니아들만 즐기던 무선조정 장난감이 대중화된 것은, 1980~1990년대 어린이였던 지금의 30~40대가 어른이 돼 경제력이 뒷받침되자 당시 마음속에만 품었던 로망을 누리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요즘 인기가 높은 사회인 야구팀에서 뛰려면 장비만 100만원은 족히 들지만 이들은 결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돈이 많아서? 아니다. 의식주에 쓰는 돈은 최대한 줄이면서도 취미에는 아낌없이 돈을 쓰는 것이 ‘놀아본 오빠’들의 특징이다. 그들에게는 당장 즐겁고 행복한 것이 가치있는 것이고 여기에 선택과 집중을 한다.

‘응답하라! 90년대’로 대표되는 최근의 복고 열풍은 결국 ‘오빠들의 귀환’ 선언인 셈이다.

■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

1500여곳이 넘는 뉴욕 맨해튼의 세탁소 중 최고는 ‘제리’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점포다. 광고나 마케팅을 잘해서 유명한 것이 아니다. 트위터를 통해 입소문이 난 덕이다. 일본 치바현의 ‘가시와 미스터리 카페’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계산하면 그 음식은 자신이 먹지 못한다. 황당하게 들리지만 그 음식의 주인은 다음 손님이다. 이런 불확실성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되고, 새로운 가치의 공간이 됐다.

요즘은 함께 밥을 먹을 상대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찾는 시대다. ‘얼마나 상대가 없으면 저럴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금 관점을 바꾸면 관심사나 코드가 맞는 사람과 수다를 떨며 음식을 먹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사람들은 SNS를 가상 세계가 아닌 문화로 받아들였고, 이를 소비할 준비가 됐다.지난 대선 과정에서 폭발한 ‘트위터 정치’는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 난 라면을 먹어도 개에게는 스테이크를

외국에서 인기인 개 전용 맥주가 한국에서도 출시됐다. 사람이 마시는 맥주보다 훨씬 비싸다. 이를 두고 반려견 사랑이 낳은 일부 부자들의 사치라고 말하면 오산이다. 부자뿐 아니라 많은 일반인들도 이 맥주를 사다 개에게 먹인다.

‘애완견’에서 ‘반려견’으로 시대가 바뀌고 있다. 개에게 돈을 너무 많이 쓴 나머지 가난해진 이른바 ‘펫 푸어’가 생길 정도다. 애완동물 시대에 개·고양이는 일종이 장난감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반려동물 시대에 와서는 또 하나의 가족을 의미한다. 개·고양이에게 투자하느라 자신에게 쓸 돈은 없는 그들을 보면, 자신은 굶으면서도 자식에게 올인하던 부모 세대가 떠오른다.

이는 결혼하지 않는 30~40대가 늘면서 함께 나타나는 현상이다. 경기불황으로 실업이 늘고, 아파트 값이 하늘을 찌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결혼은 언감생심, 1인 가족의 증가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그 해결책으로 등장하는 것이 한 집에 가족이 아닌 1인들이 뭉쳐 사는 형태가 떠오르고 있다. 청년 실업률도 높고 비정규직도 많은 요즘, 젊은 1인 가구의 연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이처럼 책은 새로 출현한 현상의 진단은 물론 그 주체들의 시계열적 계보와 문화 코드의 그물망까지 촘촘하게 분석, 오늘의 한국인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양태를 손으로 만지듯이 생생하게 전해준다. 특히 통계와 숫자가 설명하지 못한 다양한 생활·문화를 진단한 점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라이프 트렌드 2013-좀 놀아본 오빠들의 귀환
김용섭 지음/도서출판 부키/344쪽/1만5000원.


2013년 한국과 한국인의 삶을 전망한 책이다. 이맘 때쯤 흔하게 나오는 ‘트렌드 도서’의 하나로 치부할 수 있지만 뭔가 색이 다르다. 일단 표제어부터 톡톡 튀는 ‘좀 놀아본 오빠들의 귀환’이다.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트렌드 류’ 출판물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숫자와 딱딱한 그래프를 과감하게(?) 제쳐 놓은 점이다. 대신 한국인의 생활과 문화, 생각의 코드를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새로운 트렌드 읽기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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