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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속살 탐방]북악산 백사실계곡

부암동 골목 끝 ‘비밀의 정원’이 숨어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자리한 백사실(白沙室)계곡은 ‘서울의 마지막 비밀정원’으로 불린다. 도심 복판에 있으면서도 숲과 계류는 강원도 못지않게 맑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명승(제36호)과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이곳에 서울 사대문 안에서는 유일하게 도롱뇽이 서식하고 가재와 버들치를 볼 수 있다. 또 이항복 선생과 추사 김정희의 별서터가 남아 있다.

‘동천(洞天)’은 ‘신선이 사는 곳’을 일컫는다. 그만큼 풍광이 좋다는 얘기다. ‘백석동천’으로 불리는 백사실계곡은 조선시대 한양에서 인왕산 자락의 ‘청계동천’과 함께 이름난 명소다. 계곡 탐방은 부암동 석파정 별당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곧바로 계곡으로 들면 곳곳에 터를 잡은 문화유적을 놓친다. 석파정 별당에서 서울미술관을 거쳐 부암동주민센터 옆길로 들어선 후 청계동천을 둘러본 뒤 서울성곽을 따라 윤동주문학관, 창의문, 환기미술관, 백사실계곡, 현통사를 거쳐 세검정으로 내려선다. ‘생태·문화 탐방길’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 코스는 이곳저곳 눈도장을 찍고 쉬엄쉬엄 걸으면 4~5시간 걸린다.

‘서울의 마지막 비밀정원’으로 불리는 백사실계곡은 사대문 안에서 유일하게 도롱뇽이 서식하는 청정계곡이다. 부암동 골목길 탐방은 물론 계곡 주변에 문화유적이 많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사대문 안 유일한 도롱뇽 서식 ‘생태 보전 지역’
석파정 별당~성곽길~세검정 4~5시간 탐방길엔
윤동주문학관·무계정사 등 역사문화명소 즐비

과거 ‘부침바위’가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 부암동은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끼어 있는 분지 형태의 마을이다. 부침바위는 작은 돌을 대고 자신의 나이만큼 문지르면 돌이 바위에 붙으면서 아들을 얻는다는 전설이 전해지지만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부암동은 예부터 도성 밖 경승지로 이름이 높았다. 왕족과 사대부들이 별장과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겼던 백석동천과 석파정, 무계정사터, 탕춘대터 등이 모두 이곳에 있다. 또 서울 유일의 당간지주인 장의사지 당간지주와 보도각백불(옥천암 마애불) 등의 고려시대 유적까지 품고 있다. 그중에서도 북악산 서북쪽에 터를 잡은 백사실계곡이 백미다.

석파랑 가기 전 홍은동에는 홍지문이 우뚝 서 있다. 숙종 때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탕춘대성을 만들면서 낸 관문이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옥천암이란 암자와 함께 고려 때 만들어진 백색불상 ‘보도각백불’을 볼 수 있다. 자하문로에 터를 잡은 ‘석파랑’은 한식당이다. 식당에는 흥선대원군의 별장 ‘석파정’에서 옮겨다 놓은 사랑채가 있다. 여기서 북악산으로 향하면 구한말 대원군 별장인 석파정이 인왕산자락 절개지 위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서울미술관을 거쳐 부암동주민센터 옆길로 들면 인왕산 자락이다. ‘무계정사길’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이 길에 현재 복원 중인 오진암이 있다. 오진암은 화가 이병직이 살던 집으로, 1953년 국내 최초의 요정으로 새로 문을 열었다. 1972년 분단 27년 만에 남북 대표가 이곳에서 만나 7·4공동 성명에 대해 논의한 역사적인 장소다. 이후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오진암은 낙원동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져 전통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중이다. 여기서 조금 더 오르면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 이용의 별장인 무계정사를 만난다.

종로구청 이현승 해설사는 “안평대군이 꿈에 무릉도원을 본 후 깨어나서 그곳과 같은 자리라고 생각되는 곳에 정자를 세운 것이 무계정사”라며 “그는 이곳에서 글을 읊고 활을 쏘고 심신을 단련했다”고 설명했다.

무계정사는 현재 허물어져가는 건물 한 채만이 잡초에 둘러싸여 있다. 정자터 앞 큰 바위에 새겨진 ‘무계동(武溪洞)’이란 글씨만이 옛 영화를 증거한다. 무계정사 바로 앞 공터는 빙허 현진건의 집터다. 여기서 반계 윤웅렬 별장을 지나 창의문로3길을 따라 간다. 인왕산을 등지고 가는 이 길은 만개한 백일홍이 담장너머 길손을 반기는 꽃길이다. 좌측으로 시야를 돌리면 북한산의 장대한 능선과 부암동 일대가 한눈에 잡힌다.

서울성곽을 우측에 끼고 가는 골목길은 깊고 길고 아늑하다.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청운공원)이다. 찻길을 건너 북악산길 초입에 창의문이 있다. ‘자하문’으로도 불리는 창의문은 서울성곽 4대문 사이에 만들어진 4소문 중 하나다.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북소문으로, 4소문 중 유일하게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현승 해설사는 “창의문에 무지개 모양의 월단(月團) 맨 위에 봉황 한 쌍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닭 모양을 그린 것으로 창의문 밖에 지네가 많아 천적을 그려넣은 것”이라고 말했다.

백일홍이 꽃터널을 이룬 부암동 골목길

길은 다시 동양방앗간을 거쳐 환기미술관으로 향한다. 환기미술관은 수화 김환기를 기리고자 1992년에 설립된 미술관이다. 여기서 산복길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 촬영지로 유명한 산모퉁이카페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전망이 일품인 카페를 지나 언덕배기 갈림길에서 좌측 길을 따라 뒷골마을(능금마을)로 내려선다. 북악산 자락에서도 외진 뒷골마을은 도심 복판에 남아 있는 산골마을이다. 현재 1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은 집집마다 끼고 있는 텃밭이 앙증맞다.

만개한 앵두나무 꽃향기를 맡으며 오솔길을 따라가면 본격적인 숲길이다. 물고기가 떼지어 다니는 계류 옆에는 ‘이곳에 도롱뇽이 숨 쉬고 있다’고 적힌 팻말이 있다. 어둑한 숲길에 흰 바위가 이어진다. 소나무 군락에 이르자 왼쪽으로 거대한 바위에 ‘백석동천’이란 글씨가 또렷하다.

발길을 이어 산 아래로 내려서면 백사 이항복의 별장터다. ‘ㄱ’자형 건물터에는 십수개의 초석과 주춧돌만 남아 있다. 정자터 맞은편 산 중턱 큰바위에는 ‘월암(月巖)’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아름드리 물푸레나무가 울창한 연못 옆 벤치에 앉아 잠시 발품을 쉬어간다. 정자터 밑 현통사로 내려서면 서울에서는 유일한 자연폭포인 ‘백사폭포’가 기다린다. 거대한 백색 암반을 2단으로 타고 넘는 계류가 멋스럽다.

산자락을 내려와 세검정로6길을 따라가면 세검정이 반긴다. 연산군 시절 탕춘대의 부속 정자로 세워진 세검정은 광해군 때 김류·이귀가 물에 칼을 갈며 인조반정을 모의하던 곳이다. 정자 이름도 ‘칼을 씻었다’는 뜻이다. 과거 서울 시민들의 피서지로 인기가 높았던 정자는 북악산에서 흘러온 계류만이 흰 반석을 어루만지고 있다. 종로구청 관광산업과 (02)731-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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