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내가 주연이다]‘최고다 이순신’ 고두심

절절한 눈빛·목멘 목소리 … 주름마저 아름다운 ‘우리 엄마’ 최고다, 고두심

KBS 주말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은 뭔가 부족한 드라마다. 평균 시청률이 20%대이긴 하지만, <넝쿨째 굴러온 당신> <내 딸 서영이> 등 전작의 후광이 크고, 출생의 비밀에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내세울 것 없지만 씩씩한 여주인공의 출세기 등 줄거리도 뻔하다. 꿈도 재능도 없고 심지어 평범한 외모의 백수 아이유가 병원장 아들에 기획사 대표인 조정석의 마음을 휘어잡는 것도 설득력이 약하다. 아이유의 연기도 아직은 물이 덜 올랐고 남주인공 조정석은 병원장 아들에 기획사 대표 역인데도 시청자들에겐 아직도 영화 <건축학개론>의 납득이가 갑자기 너무 세련되어 진 것만 같아 몰입이 잘 되지 않는다. 장소 협찬도 노골적이어서 화면 연출도 주말극다운 영상미나 줄거리에 상응하는 긴박감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시청자들이 겨우 몰입하는 장면은 고두심이 등장할 때다. “고두심이 연기를 잘한다”는 말은 “조용필이 노래를 잘한다”는 것처럼 공허한 표현이긴 하지만, 그래도 명불허전. 고두심의 모성 연기가 이 드라마를 살리고 있다.

▲배신·분노·연민 복잡한 감정 40년 내공으로 실감연기 …
대사 하나, 표정 하나에 안방팬도 함께 눈물
“역시 연기의 신” 찬사 잇따라

이미 다양한 드라마에서 여러 차례 대한민국 어머니상을 보여준 고두심은 모성애 연기의 달인이다. 특히 이 드라마에서는 아주 평범한 어머니가 갑자기 남편의 죽음, 첫딸의 이혼, 막내딸의 출생의 비밀에 연이어 충격을 받으며 각 상황마다 변하는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해 시청자들의 감탄사를 자아낸다.

<최고다 이순신>에서 고두심이 맡은 역할은 50대 주부 김정애다. 홀로 된 시어머니, 자상한 남편, 그리고 세 딸을 키우며 중산층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막내딸 이순신(아이유 분)이 연기자를 시켜주겠다는 사기꾼의 농간에 2000만원을 사기당하고, 남편(정동환 분)은 첫사랑 송미령(이미숙 분)을 만나러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는다. 살림만 하던 그는 딸의 빚을 갚고 남편이 없는 살림에 생활비라도 보태려고 청소부일도 한다. 착한 큰딸(손태영 분)은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고 딸을 데리고 친정에 들어왔고 설상가상, 업둥이로 키운 막내딸이 이미숙과 정동환의 딸임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남편에 대한 배신감, 송미령에 대한 증오, 그들 사이에 태어난(아직 친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막내딸에 대한 분노와 사랑과 연민 등 복잡한 마음을 40년 경력의 연기력으로 완벽히 보여주고 있다.

고두심은 남편에 대한 미움보다 피가 섞이지 않은 업둥이여서 구박을 받고 자란 순신이 이젠 남편의 딸로 밝혀진 후 다시 가족들의 구박과 원망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후에 얼마나 충격받고 상처를 입을까를 더 걱정한다. 서로 자기 아이라고 우기는 두 어머니에게 “그럼 아이를 칼로 반으로 나누라”는 판결을 했던 지혜로운 솔로몬이라도 고두심에게 “당신이 친모가 맞다”고 판결을 내릴 것만 같이 고두심은 키운 정도 모정임을 온 몸으로 보여준다.

한껏 위축된 어깨와 눈빛, 불안함에 젖은 목소리, 이 와중에서도 혹시나 딸이 알고 가슴 아파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모습, 딸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거짓말하는 모습, 이미숙에게 “당신도 엄마가 맞느냐?”고 부르짖는 모습 등 그가 연기를 할 때마다 시청자들은 덩달아 울고 한숨을 내쉰다.

지난 1, 2일분에서 특히 그랬다. 행여 딸에게 피해가 갈까봐 기자회견을 말리러 찾아간 고두심에게 이미숙은 기자회견의 뜻을 굽히지 않으면서 “식당에서 알바나 하고 그게 상처 안 주고 키운 결과냐”고 독설을 내뱉는다. 고두심은 “당신, 내 딸 건드리지 마. 내 딸 건드리기만 해봐. 내가 가만히 안 있을 거다”고 절규했다.

또 아이유와 데이트를 즐긴 뒤 함께 남편의 묘를 찾아 인사한 후 딸에게 “너 낳아준 엄마가 따로 있다”고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다. 북받쳐 오는 눈물을 꾹 참고 담담하게 고백하려 애쓰는 그의 모습에 연기인줄 알면서도 시청자들도 눈물을 참지 못 했다. 네티즌들은 실시간 SNS나 게시판을 통해 “고두심 연기 짠하고 슬프다” “고두심 선생님 같은 관록있는 연기자 선생님들이 국민들에게 주는 위안이 없었다면 참 살기 힘들었을거야” “고두심은 정말 연기의 신인 듯” “고두심 볼 때마다 울컥하고 찌릿하다” “‘최고다 이순신’은 고두심이 살린다” 등 격한 공감을 표했다.

고두심의 뛰어난 연기로 화제를 모은 드라마 맨 위부터 KBS2 <최고다 이순신>, KBS2 <꽃보다 아름다워>, MBC <춤추는 가얏고>, MBC <전원일기>.

이런 연기력 찬사에 고두심은 “너무 자주 들어서 식상하다”며 웃을지도 모른다. 그는 한 번도 아닌 5번이나 연기대상을 거머쥔 유일무이한 스타다. 그것도 KBS, MBC, SBS 방송 3사 모든 연기대상을 석권했다. 1989년 <사랑의 굴레>로 KBS 연기대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1990년 <춤추는 가얏고>로 MBC 연기대상, 2000년엔 <덕이>로 SBS 연기대상, 그리고 2004년에는 다시 MBC에서 <한강수 타령>과 KBS <꽃보다 아름다워>로 MBC와 KBS 연기대상을 받았다.

고두심은 <최고다 이순신>에서 연기 대결을 벌이는 이미숙처럼 도드라진 미모나 천부적인 연기력을 가진 배우는 아니다. 조선백자처럼 두고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고 갈수록 빛이 발하는 연기자다. 고두심은 무역회사 직원으로 일하다 24세였던 1972년 MBC 공채 탤런트 5기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탤런트로 입문해서도 가정부·술집 종업원 등 단역에 머물거나 그나마 배역도 없이 녹화장 주변을 서성거리는 신세를 면치 못해 무역회사를 계속 다니기도 했다.

<갈대>에 출연해 관심 받는 연기자로 떠올랐고 “잘났어! 정말”이란 유행어를 탄생시킨 <사랑의 굴레>에서 히스테릭한 여주인공, <춤추는 가얏고>에서 가야금 명인 죽사 이금화 역을 맡으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20년 넘게 출연한 <전원일기> 김회장댁 맏며느리 역할은 생활연기의 진수를 보여줬다. 노희경 작가의 작품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남편에게 버림받고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쏟아 부은 후 혼자 고통을 떠안다 치매에 걸린 엄마 역은 지금도 시청자들의 기억에 생생하다. 가슴에 빨간약을 바르며 “엄마가 가슴이 아파, 가슴이 아파”라는 대사를 할 때 시청자들은 그것이 드라마란 것도 잊었다. 그는 어느 배역에나 진정한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지독한 연습과 몰입력 덕분이다.

“드라마 <한강수 타령>에 출연하기 전엔 한 재래시장으로 출근을 했다. 극중에서 생선장수로 나오기 때문에 생선가게에 가서 손님을 부르는 방법부터 생선을 자르는 기술까지 세밀하게 배우기 위해서였다. 작품이 주어지면 항상 그 인물의 형상을 그린다. 양치질을 하다가 거울을 보면서도 그 배역이라면 어떻게 할까 연구한다.

소설가 황석영은 “삶과 연기가 일치되는 이 시대의 최고로 아름다운 연기자”라고 헌사했다. 한 시인도 “고두심은 인생의 두 가지 마음을 아름답게 피워낸 보기 드문 사람이다. 하나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고, 하나는 삶에 대한 진지함이다”라고 했다.

성형수술로 젊어 보이려 하지도 않고, 굳이 예쁘게 보이려고도 하지 않고 배역에만 완벽히 충실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연기자 고두심. 그 덕분에 “최고다 고두심”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