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임재범, 조용필 새음반 듣고 “어? 이 형님 봐라”

듬성듬성 난 수염은 길렀다기 보다는 그냥 놓아 두었다고 하는 게 맞을 성싶다. 수염이 흡사 야생초 같다. 짧았던 머리칼도 어느 사이 기다랗게 자랐다.

지난달 30일 서울 성내동 음악기획사 ‘드림팩토리’의 지하 연습실. 가수 임재범(51)은 오래된 청바지 차림으로 다가 올 공연에 대해 스태프들과 이야기 하던 중이었다. 공연 연습이 예정돼 있던 날이었다. 얼추 수십 개의 악기와 갖가지 공연 장비가 연습실에 가득 들어찼다. 인터뷰가 끝나는 대로 곧 연습이 시작된다고 했다.

무대 장악력이나 카리스마를 보면 쉽게 짐작하긴 힘들겠지만, 막상 부닥친 임재범은 매우 온화하고 유쾌한 편이다.

“살이 좀 붙었지요? 배드민턴이며 미식축구며 닥치는 대로 운동을 했는데, 최근 들어선 좀 덜 하게 돼요. 요즘은 이렇게 공연 준비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배도 좀 나왔고.”(웃음)

임재범은 1년 가까이 TV 출연을 다시 ‘뚝’ 끊고 살았다. MBC <나는 가수다> 직후 일부 특집 음악 프로그램을 빼고서는 좀처럼 TV에 나서지 않았다. 가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방송사 대신 그는 줄곧 공연장을 찾아왔다. 2년 전 ‘다시 깨어난 거인’으로 전국 투어를 했고, 지난 해엔 ‘해빙’이란 타이틀로 무대에 섰다.

“가수가 앨범을 내고 공연장을 찾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 TV에 나가면 다시 질문이 과거로 돌아갈 때가 많아요. 옛날 이야기가 반복이 되곤 하고…. 과거에 묶이고 싶지 않은 게 제 바람인데, 다시 불거지고 그게 제게 상처가 돼요. 하기야 지금의 모습만을 말한다면 TV에 나올 게 없을 수도 있겠네요.”

늘 당당할 것 같지만, 카메라에 대한 두려움이 상당하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나는 가수다> 출연 때에도 심하게 긴장하고 경직됐다고 한다. 출연 도중 맹장이 터진 것도 어쩌면 당시의 긴장감을 대변하는 일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사가 될 때는 지나갔다. 비교적 차분한 일상을 가졌다.

“인기를 유지하려고 발버둥쳐봤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요 몇 년 사이 한참 집중을 받을 때에도 부침은 있을 것이라고 여겼죠. 세월 따라 스스로 내려놓는 법 또한 많이 배웠습니다.”

그가 마련 중인 공연은 이제 세월, 그리고 치유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공연 제목을 ‘걷다 보면…’으로 삼았다.

“우린 각자에게 괴로움, 고통 같은 게 있고, 이걸 또 해결하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게 생각보다는 쉽지 않아요. 딱히 해결은 안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정리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제 자신이 무대에 서서 관객들을 대신해서 한번 걸어 가볼까 합니다.” 임재범은 데뷔 이후 처음으로 연극적 요소를 공연에 넣는다. 예컨대 임재범이 길을 나서고 이후 일어나는 각종 일화나 이에 따른 메시지를 스토리로 담고, 이를 노래에 녹여 부른다. ‘사랑보다 깊은 상처’ ‘고해’ ‘너를 위해’ 등 주옥 같은 노래가 적절한 막으로 찾아 들어간다.

공연에는 치유의 방식으로 가족애도 언급될 것으로 기대된다.

“공기처럼 곁에 있으니까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또 ‘가족’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를 포함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걸 잊고 사는 것 같고요. 아이가 생기니 세상이 이랬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자주 하게 되네요.”

올해로 12살이 된 딸 지수양의 이야기를 할 때면 확실히 그의 얼굴엔 언제나 환한 꽃이 피었다. 딸이 가수를 하고 싶다고 한다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선 “말리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제가 현명했다면 그렇게 험하거나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그 길을 아는 아비의 입장에서는 그 걸 권유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암 투병 중인 아내는 호전됐다.

절창과 두성으로 노래하는 그의 ‘치유’ 공연은 7월5일~6일 서울 연세대 대강당에서 막을 올린 뒤 대전, 대구, 부산, 창원 등 10대 도시 투어로 이어진다.

임재범은 공연이 끝나면 당분간 대외 활동을 잠근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정규 7집 준비에 매진한다. 중간 중간 공연하지 않았던 해외에서 공연을 할 생각이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공연 이후 휴식을 갖는 게 좋지 않냐고 스태프들과 이야기해왔습니다. 제 음악이 공식화되고 만연화되지 않도록, 새로운 변화와 장르를 고민해 볼 때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시나위 출신의 로커 답게 아직 ‘록’을 향한 애정은 여전하다.

“제가 방황한 것도 록 때문이고, 반대로 힘을 얻은 것도 록 때문이지요. 비유하자면 이런 겁니다. 답답할 때 엄청나게 시원한 폭포수에 들어간 것이랄까요. 아니면 땀이 나 죽겠는데, 맵고 얼큰한 ‘짬뽕’을 먹는 것이라고 할까요. 미련이 있습니다. 지금 머리를 기르는 것도 어쩌면 마지막일 듯해요.”

그렇다고 하드록으로 온전히 옮기기에는 음악계 전체의 추세가 반대로 흐른다.

“조용필 형님도 로커 출신이십니다. 그분의 이번 음반 들으면서 제 입에서 나온 첫 말이 ‘어 이 형님 봐라’였어요. 좋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그 큰 공백기 동안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싶더군요. 그 고통 때문에 이렇게 좋은 선물을 받은 것 같고. 저 또한 스스로의 음악 세계를 어찌할 지 이런 걸 시간을 두고 고민을 해보겠습니다. 공연 이후 내년까진 결과물을 들고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데요?”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