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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의 아메리카 브레이크]군국주의 싸고도는 美-日 합작 막장 영화

1945년 8월 원자폭탄을 맞고 일본은 미국에 항복한다. 점령군 최고 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일본 도쿄에 상륙한다. 도쿄 한복판에 점령군 사령부를 차린 맥아더는 휘하의 푈러스 장군에게 한 가지 지시를 내린다.

“10일 안으로 전쟁 책임자를 찾아내 체포하고 전범재판에 회부할 것.”

푈러스 장군은 일본 군인과 정치가를 차례로 체포하지만, 이 과정에서 피해갈 수 없는 큰 문제에 맞닥뜨린다. 일왕이다.

“일왕을 체포하고 전범 재판에 회부해 목매달아야 하는가. 과연 덴노(天皇·일왕을 신격화해 부르는 말)는 전쟁에 얼마나 책임이 있는가.”

최근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엠퍼러(Emperor·황제)·사진> 줄거리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피터 웨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연기파 배우 토미 리 존스가 맥아더 역을 맡았다.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신 황제(맥아더)’가 ‘구 황제(일왕)’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는, 박진감 넘치는 도입부로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는 여러 흥미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가장 멍청한 길로 빠진다. 바로 ‘오리엔탈리즘’이다. 전범 체포 임무를 지닌 푈러스 장군이 학생 시절 일본인 유학생 여자 친구(하츠네 에리코)를 두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영화는 ‘막장 드라마’로 빠진다.

그 다음은 뻔하다. 푈러스 장군은 여자 친구를 통해 동양의 신비에 빠지고 일본 문화를 접한다. 최악은, 한국인에겐 지겹다 못해 식상한 ‘혼네(本音·본심)’와 ‘다테마에(建前·배려를 위한 언행)’까지 대단한 사실인양 포장하는 것이다. 시종일관 ‘일본은 서양인과 다른 사고 방식, 도덕 관념을 갖고 있으며, 서양인 잣대로 심판해선 안 된다’라고 외친다.

결국 푈러스 장군은 “덴노에겐 전쟁 책임이 없다. 일왕을 살려두고 이용하는 것이 평화적 점령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올린다. 맥아더는 일왕을 집으로 초대해 “앞으로 다함께 일본을 평화로운 나라로 만들자”고 외치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전쟁 피해를 입은 한국, 중국 등 아시안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

이처럼 일본 편향적 영화가 할리우드 최고 감독과 스타 배우를 동원해 버젓이 미국에서 개봉된 것을 보며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영화 촬영에 일본도 전폭 협력했다고 하니, 일본의 할리우드 구슬리기는 여전해 보인다.

최근 일본이 외교 채널을 동원해 미국 내 위안부 기림비 설립을 막는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일본군 전투기 ‘제로센’ 개발자를 미화하는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신비하고 선량한 일본’을 국제 사회에 알리는 일본의 ‘문화전쟁’을 보면서, 한국만 안방에서 ‘반일’을 외치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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