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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마니아여 환호하라 ‘얼음과 불의 노래’ 5부출간

▲‘얼음과 불의 노래’ 5부 - 드래곤과의 춤(전 3권)
조지 R.R. 마틴 지음·서계인 옮김/은행나무/각권 700쪽 내외/각권 2만500원

“한마디로 미치고 환장하겠다.”

조지 R. R.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얼불노)시리즈 5부에 해당하는 ‘드래곤과의 춤’ 출간 소식을 접한 한 독자의 반응이다.

최근 수십년간 전세계 장르문학 팬들이 목놓아 기다린 세가지를 꼽으면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와 스티븐 킹의 <다크타워> 그리고 <얼불노>의 마지막장 마침표를 보는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년쯤 시작돼 2004년에야 결말을 맺은 <다크타워 시리즈>(국내에서는 3부 ‘황무지’까지 출간)와 관련해 한 할머니 독자가 “당신 바쁜 건 이해하겠는데, 요즘 내 관심은 온통 죽기 전에 과연 시리즈의 끝을 볼 수 있을지에 쏠려 있소”라고 집필을 독려하며 스티븐 킹에게 보낸 편지 일화는 유명하다.

이제 ‘두 난제’는 해결됐으니 남은 것은 <얼불노>다. 하지만 ‘이제나 저제나’하며 팬들을 애태우기는 <얼불노>도 <다크타워>에 못지않다.

사실 <얼불노>에 대해 기사를 쓰는 것은 적잖은 부담이다. 수많은 ‘덕후’(마니아를 가리키는 누리꾼들의 용어. 일본의 오다쿠가 어원)들이 보기에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얼불노>를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아는 체’(?)를 하자면, 조지 R. R. 마틴이 <얼불노> 시리즈를 구상하고 집필을 시작한 것은 1990년쯤으로 알려졌다. 1995년 1부인 ‘왕좌의 게임’이 출간됐으니 어느 덧 20년이 되어간다. 전체 7부작으로 나올 예정이라고 하니 독자들이 ‘원’을 풀기에는 아직 갈길이 멀다. 작가 본인도 양심(?)은 있는지, 서문에 “이번 편이 나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라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고 하니 독자들의 ‘기대와 원성’이 얼마나 큰 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얼불노>는 1부 ‘왕좌의 게임’(전 2권) 출간과 함께 전세계 독자들로부터 “탁월한 상상력과 엄청난 흡인력을 지닌 작품으로 판타지 소설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열화와 같은 찬사를 받았다. 세계 유력 언론과 팬들은 “<반지의 제왕>에 필적할 유일한 판타지”라며 그에게 ‘미국의 톨킨’이란 영예로운 별명을 헌사했다.

특히 2011년 시리즈 1부를 원작으로 미국 HBO에서 제작해 방영한 드라마 <왕좌의 게임>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얼불노 시리즈>는 전세계인이 공유하는 ‘21세기 신화’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미드 <왕좌의 게임>.

시사주간지 <타임>이 “돈과 권력, 욕망과 사랑을 향한 인간의 진흙탕 속 투쟁의 노래”로 요약한 이 시리즈는 ‘어른들을 위한 판타지’라는 점에서 <해리포터>와는 다르다. <해리포터>가 현실세상과 판타지 세계를 뒤섞은 것과 달리 <얼불노>는 완벽하게 작가가 창조해 낸 세상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반지의 제왕>에 가깝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이 호빗과 엘프, 인간 등 여러 종족이 함을 모아 절대악과 맞서 싸우는 신화적 세계관을 담은데 비해, <얼불노>는 복잡한 혈연과 봉신 관계가 마치 중세 유럽의 왕권 전쟁을 보는 듯할 정도로 인간 세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 차이가 있다.

책은 탄탄한 구성과 탁월한 캐릭터 설정, 완벽한 스토리 라인을 토대로 실제 역사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생생한 현실감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특히 다채로운 인물들을 통해 권력을 둘러싼 숨 막히는 음모와 계략, 배신과 희생, 욕망의 인간사를 흥미진진하게 엮어낸다. 절묘하게 가미된 마법과 환상의 세계는 이야기에 독자들을 몰입시키는 양념이다. 엄청나게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를 치밀한 복선과 심리 묘사를 통해 일관되게 끌고 나가는 것은 역시 작가의 힘이다.

가상의 왕국 ‘세븐 킹덤’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벌어지는 음모와 쟁투를 다룬 <얼불노 시리즈>의 5부 ‘드래곤과의 춤’은 4부인 ‘까마귀의 향연’의 뒷얘기가 아닌 같은 시간 대의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조연급 캐릭터가 대거 등장해 이야기를 끌고간 ‘까마귀의 향연’과 달리 이번에는 주연급이 다시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한다.

조지 R.R. 마틴은 1971년 <히어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했다. 1974년 <라이라의 노래>로 휴고상을, 1979년에는 <샌드킹>으로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등 미국을 대표하는 SF·판타지 작가로 명성을 누려왔다. <타임>지가 선정한 ‘2011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얼불노> 이후 세계 장르 문학계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은 크다.

미드 <왕좌의 게임>.

국내에서 <얼불노 시리즈>가 출판된 것은 2000년 11월이다. ‘왕좌의 게임’(전2권)을 시작으로 2001년 2부 ‘왕들의 전쟁’(전2권), 2005년 3부 ‘성검의 폭풍’(전2권), 2008년 4부 ‘까마귀의 향연’(전2권)이 각각 출간됐다. 하지만 권당 700~800쪽(최고 900여쪽)에 이르는 엄청난 분량 탓에 판매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주저하는 출판사를 움직인 것은 ‘덕후’들이었다. 출판사에는 “후속권을 왜 빨리 내지 않느냐” “번역이 틀렸다”는 등의 요구와 질타가 쏟아졌다고 한다. 때 마침 미드 <왕좌의 게임>이 국내에도 방송되며 책 판매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출판사로서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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