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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하거나, 궁금하거나…가요계 ‘티저의 모든것’

지난달 16일 그룹 빅뱅의 멤버 지드래곤은 짧은 영상 하나를 인터넷에 띄웠다. 43초짜리 영상에서 지드래곤은 이렇다 할 말도 하지 않고 흰색 모자와 붉은 색 헬멧을 번갈아 썼다. 현란한 음악과 함께 ‘지드래곤 2집 앨범 쿠데타’란 문구가 떴다. 지난달 26일에는 검정색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눈만 나온 사진을, 다음날인 27일에는 다시 붉은 색 두건을 뒤집어 쓴 사진 1점을 각각 올렸다.

지드래곤의 신곡 ‘쿠데타’는 이렇게 뜸을 들이다 첫 영상 공개 17일 뒤인 2일 발표됐다. 지드래곤은 그 사이 4차례 홍보영상을 올렸다. 일종의 티저였다. ‘티저’(teaser)는 사전적으로는 ‘애간장을 태우는 것’이라는 의미로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음악기획사들은 요즘 ‘티저’ 마케팅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음반 대다수가 수 차례 티저 공개를 기본으로 한다. 불과 수년전만 해도 음반 발매 전 뮤직비디오 한 편 정도가 공개됐다. 그룹 엠블랙은 멤버들이 목에 큰 뱀을 친친 감고 있는 사진을 티저물로 사용했다. 혼성그룹 투개월의 멤버 김예림은 속옷만 입은 채 골몰히 생각하는 내용의 티저 사진 및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남성 그룹 비투비는 음성으로 이뤄진 티저물을 유튜브에 올렸다.

김예림

9일 정규 10집을 발표한 가수 박진영도 거울을 들여다보는 화제의 사진물을 티저물로 썼다. CG(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해 백발에 주름진 자신의 이미지를 그려넣었다. 김예림은 음반의 작곡 작사가, 음원 수록 순서를 적은 앨범 속지를 사전에 띄우기도 했다.

그룹 비스트가 소속된 큐브엔티터인먼트의 안효진 팀장은 “이제 ‘티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의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안 팀장은 “단순히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영상 일부를 편집한 것을 넘어 각종 아이디어나 방식을 구하는 회의를 음반 출시 한 달 전부터 수차례 연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가요기획사 ㄱ이사는 “뮤직비디오 제작에 수천~수억원이 들어가는 것에 반해 티저는 몇 만원이나 몇 십만원이면 되고 효과도 큰 편이어서 선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기법도 다양해졌다. 온라인 상에서 잠깐 띄웠다 사라지는 ‘팝업’처럼 실제 거리에서 ‘팝업스토어’를 열기도 한다. 그룹 엑소는 지난 7월 서울 명동에 팝업스토어를 세워 달라진 음반 콘셉트를 미리 보여줬다. 엑소는 티저를 잘 이용했다. 데뷔 전 이미 20~30여개의 티저를 띄웠다. 걸그룹 소녀시대도 아홉 명의 멤버 사진을 공개하는 방법을 썼다

지드래곤

팬들도 티저를 일종의 ‘놀이’로 여기고 있다. 수수께끼를 풀거나 퍼즐을 맞추듯 티저를 보고 즐긴다. 이런 과정에서 팬들은 새 앨범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된다.

SM엔터테인먼트 김은아 과장은 “과거와 달리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유튜브 등 일반 대중이 접할 수 있는 미디어 창구도 다변화됐다”면서 “짧은 사진과 영상 등 비교적 실험성 강하고 가벼운 콘텐츠의 교환이 요구되는 시대”라고 말했다. 김과장은 “K팝은 음악을 전세계로 알려야 되고, 이미지와 결합하면 더 큰 시너지를 내기도 해서 티저는 매우 유용하다”고 말했다.

앨범 발매 이전에 음원을 먼저 유통시키기도 한다. 그룹 엑소와 여가수 선미는 음원을 정식으로 발표하기 전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지드래곤은 콘서트에서 먼저 노래를 불렀다. 이것 역시 ‘애간장을 태운다’는 티저 마케팅 기법의 일환이다.

스타십엔터테인먼트의 서현주 이사는 “티저의 유행은 가수와 음원의 양이 많아 경쟁이 치열해졌고, 음원의 소비 주기가 턱없이 짧아진 가요계의 현실을 대변한다”며 “초반에 분위기를 주도하지 못한다면 성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대중문화평론가 하재근씨는 “포장과 홍보에 치중할 경우 정작 본래의 가치를 등한시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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