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화제의 책]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황선도 지음/부키/240쪽/1만5000원

생선회를 어느 정도 즐기는 경우라도 일명 ‘육지 것’들은 좀처럼 구별하기 쉽지 않은 게 광어와 도다리(가자미의 한 종류)다. 생김새가 비슷한 탓이다. 하지만 ‘갯 것’들이 알려주는 구별법은 아주 간단하다. 좌광우도. 눈이 왼쪽에 붙어 있으면 광어, 오른쪽에 붙어 있으면 도다리다. 글자수에 맞춰 왼쪽=광어, 오른쪽=도다리로 외우면 더 쉽다.

이처럼 밥상에서 흔히 접하는 생선이지만 의외로 모르는 것이 많다. 뱀장어는 왜 회로 먹지 않을까, 양식 복어에는 왜 독이 없을까, 명태라는 이름의 유래는 무엇일까…. 책은 우리가 늘 보고 먹지만 잘 몰랐던 물고기에 대한 온갖 궁금증을 풀어준다. 특히 30년간 어류를 연구해 온 ‘물고기 박사’인 저자는 바닷물고기에 대한 풍부한 정보는 물론 다양한 뒷얘기까지 맛깔스러운 입담으로 풀어놓는다.

■ 고등어가 사바사바를?

‘사바사바’란 뒷거래를 통해 떳떳하지 못하게 일을 꾸미는 짓을 속되게 부르는 말이다. 국어사전에도 올라있다. 그런데 ‘사바’는 일본에서 고등어를 부르는 말이다. 고등어가 무슨 이유로 ‘은밀한 뒷거래’와 관련됐을까. 유래가 흥미롭다. 어느 일본인이 나무통에 고등어 두 마리를 담아서 관청에 일을 부탁하러 가는데, 도중에 어떤 사람이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사바 가지고 관청에 간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것이 와전돼 ‘’누구는 사바사바를 잘해서 일이 잘됐다’는 표현으로 발전했다.

‘서민의 생선’ 고등어와 ‘고급 생선’을 대표하는 참치가 친척뻘이란 점도 흥미롭다. 왕후장상의 씨는 역시 없는 듯 하다.

■ 홍어는 음란함의 상징?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은 참홍어를 음란한 물고기로 봤다. “암컷이 낚싯바늘을 물면 수컷이 달려들어 교미를 하다가 다같이 낚싯줄에 끌려 올라오는 예가 있다. 암컷은 먹이 때문에 죽고 수컷은 색을 밝히다 죽는 셈이니, 이는 음(淫)을 탐하는 자에게 본보기가 될 만하다.”

하지만 저자는 정반대로 해석한다. 참홍어는 “삼강오륜을 지키는 일부일처주의자”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책은 “교미 후 기꺼이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수사마귀처럼 짝에 대한 마지막 작별의 애절함”, “정녕 아름답고 처절한 섹스의 미학”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우리가 간재미로 부르는 생선이 원래는 ‘홍어’이고, 흑산도 홍어는 ‘참홍어’로 불러야 한다는 사실도 뜻밖이다.

■ ‘네가지’ 있는 생선 조기

조기라는 이름은 한자로 물고기 중의 으뜸이란 뜻의 ‘종어(宗魚)’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조기라고 부르게 된 뒤에는 사람의 기를 돕는 생산이란 뜻으로 ‘조기(助氣)’라고도 했다. 조기는 생선중 으뜸으로 제사상에 오를 자격을 얻었는데, 여기에는 후손들에게 ‘네가지 덕’을 일깨워 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조기의 사덕이란, 이동할 때를 정확히 아는 ‘예(禮)’, 소금에 절여도 굽히지 않는 ‘의(義)’, 염치있고 부끄러움을 아는 ‘염(廉)’, 더러운 곳에 가지 않는 ‘치(恥)’가 그것이다.

한 때 조기의 친척뻘로 참조기로 둔갑해 팔리던 ‘부세’라는 물고기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잘 잡히지 않아 참조기보다 값을 더 쳐주는 귀한 몸이 됐다고 한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되는 게 세상의 이치다.

■ 노가리 ‘작명이 기가 막혀!’

한국 가곡의 주인공이 된 유일한 생선 명태. 북어국, 생태탕, 명란, 창란젓부터 ‘가난한 시인이 시를 쓰다가 쐬주를 털어넣고’ 캬~소리를 내뱉으며 쭈욱~ 찢어먹는 안주까지…, 만들 수 있는 요리만 해도 수십 가지나 될 만큼 사랑받는 ‘국민생선’이다.

옛부터 ‘전국구 사랑’을 받아온 만큼 이름도 다양하다. 명태, 생태, 동태, 건태, 북어, 황태, 코다리, 깡태, 백태, 간태, 막물태, 일태, 망태…. 건조방법, 잡히는 철에 따라 끝도 없다. 재미있는 것은 노가리다. 노가리는 1년 정도 자란 새끼 명태를 말하는데 농담의 ‘농(弄)’자에 접미사 ‘가리’가 붙은 것이라고 한다. ‘노가리를 푼다’는 말은 악의 없는 농짓거리를 말하는데, 호프집에서 ‘노가리를 풀면서 씹어대는 게 노가리’라니 참 절묘한 작명이 아닐 수 없다.

책은 매월 가장 맛있는 제철 물고기 16종을 선정해 1월부터 12월까지 차례로 설명한다. 각 장에서는 물고기 이름의 유래와 관련 속담, 맛있게 먹는 법, 조사 현장에 겪은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책 제목의 ‘멸치 머리 블랙박스’는 ‘이석(耳石)’을 말하는 것이다. 단단한 뼈를 가진 경골어류가 가진 평형기관 구실을 하는 부위로 쪼개어 성장선을 분석하면 이 물고기가 며칠에 태어났는 지까지 알 수 있는 등 여러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