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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이 정권잡아 일본을 식민지로 삼았다면…

◆ 가장 찬란했던 제국
권태승 지음/천지간/281쪽/1만2000원

‘역사에 가정법이란 없다’지만 소설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나치와 일본이 2차대전에서 승리해 미국을 분할 점령했다는 설정의 <높은 성의 사나이>(필립 K 딕)나 여기서 영향을 받은 <비명을 찾아서>(복거일) 같은 ‘대체역사소설’들이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위화도회군 대신 요동정벌이 성공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해보는 역사의 가정이다. 특히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침략 부인과 노골적인 우경화 행보, 국내 일부의 역사 왜곡과 맞닥뜨리고 있는 요즘에는 아예 과거로 직접 뛰어 들어가 역사를 재구성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을 듯싶다.

책은 갑신정변이 ‘3일천하’로 끝난 것이 아니라 김옥균이 30년간 정권을 장악해 일본을 식민지로 삼고, 그 후계자들인 군부는 더 극성스러운 팽창주의에 나서 마침내 미국과 일전을 벌인다는 내용을 이야기의 틀로 삼고 있다. 주인공 ‘나’가 어느날 미국에 타임머신이 실존한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의 치욕스러운 근대사를 바꾸기 위해 시간여행을 감행, 역사의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줄거리다.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 만큼 강대국이 된 ‘제국주의 조선의 욱일승천’을 단순히 그렸다면 ‘그렇고 그런 한풀이 소설’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겠지만, 책은 절묘한 시점에서 방향을 튼다.

저자는 갑신정변을 우리 근대사의 흐름을 바꾼 중요한 시점으로 삼고는 있지만, 김옥균 세력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주인공을 내세워 이야기의 재미와 격을 높인다. “역사란 정의(定義)할 수도 없고 정의(正義)도 없다”는 주인공의 주장처럼 저자는 김옥균이 주도한 갑신정변을 우리 역사의 성공과 연결 짓는 섣부른 판단을 경계한다.

김옥균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주인공 ‘나’는 갑신정변의 현장인 우정국으로 날아가 거사를 방해하는가 하면, 명성황후를 만나 대한제국의 민주화를 모색하고, 대한제국과 미국의 전쟁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들 간의 이념과 견해 차이로 인한 갈등구도, 19세기 시대적 격랑에 대처하고자 개화사상가였던 박규수, 오경석, 유대치와 나눈 다방면에 걸친 대화는 색다른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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