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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볼 PM 6:29] LG는 왜 응사에서 ‘LG 트윈스’란 이름을 허락하지 않았을까

tvN <응답하라 1994> 방송 캡처

1994년 10월23일. LG 트윈스가 그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태평양 돌핀스를 3-2로 꺾고 4연승으로 우승 축배를 들었다.

지난 주말 방영된 텔레비전 드라마 ‘응답하라 1994’ 10회분에서는 그날의 경기 장면이 드라마 속 TV를 통해 생생히 전해졌다. 4차전 마무리 투수로 나온 김용수가 우승의 기쁨을 토해내는 모습과 함께 그해 신인 트리오로 LG 신바람 야구를 주도한 유지현·서용빈·김재현의 이름도 곁들여 나온다.

화면 하단에는 역사성을 제대로 살리려는듯 1994년 10월23일이란 일자가 선명히 찍혔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매력은 모든 게 실명으로 다뤄지는 데 있다. 드라마지만 한편으로는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다.

당시 인기몰이를 한 연세대 농구팀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등장할 뿐더러 주축선수이던 문경은·우지원·김훈 등은 직접 출연까지 했다. 대학가 밀집 지역인 신촌의 그레이스 백화점이 실명으로 언급되는가 하면, 대우 로열즈 같은 프로 축구단도 나와 옛 추억을 끄집어낸다.

누가 뭐라고 해도 1994년 대한민국 스포츠는 LG 트윈스의 해였다. 트윈스는 그해 신인 트리오를 중심으로 그라운드의 아이콘이 됐다. 야구도 잘 했지만, 세련된 이미지로 서울의 젊은 팬들에게 일종의 동질감을 선물했다.

그러나 드라마에는 LG 트윈스가 없다. LG 트윈스는 ‘서울 쌍둥이’란 다소 우스꽝스런 이름으로 바뀌어 나온다.

드라마 주요 등장인물의 베이스캠프와 다름 없는 신촌 하숙집의 주인 아저씨(성동일 분) 직업이 바로 LG 트윈스 코치다. 그는 드라마 속에서도 트윈스 1루 코치로 이따금 등장한다. 유니폼 모양과 점퍼 색깔 등은 흡사한 것을 착용하지만 왼쪽 가슴에는 LG라는 팀 이름을 달지 못했다.

백화점까지 실명을 드러낸 드라마 제작진이 LG 트윈스란 이름을 욕심내지 않았을 리 없다. 제작진은 페넌트레이스가 한창이던 지난 초여름 즈음 LG 구단에 팀 이름을 사용하도록 해달라고 간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구단으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LG 구단은 드라마 방영시점이 가을야구가 열리는 10월쯤이라는 것이 무척 신경쓰였던 모양이다. 지난해까지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LG다. 그간 4강 문턱을 오르내리다가 미끄러지기를 수 차례 반복했다.

LG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했다. 혹여 또 4강에 실패한다면 인기드라마에서 팀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 것 자체가 고통일 수 있었다. 걱정이 많았다.

1994년의 LG 트윈스는 구단에게도 팬에게도, 또는 모그룹 임원들에게도 자랑스런 이름이었다. 그러나 암흑의 역사를 지나오면서 LG 안에 있는 누구에게는 그 이름이 불안했던 모양이다.

LG는 2013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서 1승3패로 져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지만 페넌트레이스 2위까지 오르며 시즌을 끌어갔다. 그 사이 LG는 잠재해 있던 수많은 팬을 다시 만났다. 그 중 상당수는 1994년 LG 야구를 좋아했던 팬일 것이다.

그들이 LG가 다시 일어선 2013년 늦가을, 드라마를 통해 그때의 향수를 제대로 한번 느꼈다면 어땠을까. 서울 쌍둥이보다는 ‘오리지널 버전’의 LG 트윈스였다면 더욱 실감나지 않았을까. 지금 돌아보니 LG 구단이 돌다리를 너무 신중하게 두드리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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