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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분신' 고 이남종 유서 공개, 채무 비관이라더니 "국민들 일어나십시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특별검사제 도입을 주장하며 지난달 31일 분신자살한 고(故) 이남종 씨의 유서가 2일 공개됐다.

이 유서는 누리꾼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이 씨가 카드빚 등 채무 관계 때문에 자살했다는 경찰의 주장과 유서 공개를 꺼린 배경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유족과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민주투사 고 이남종 열사 시민 장례위원회’(가칭)는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 장례식장에서 이 씨의 유서와 유품을 공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부도 묻기 힘든 상황입니다”로 시작한 유서에는 “박근혜 정부는 총칼 없이 이룬 자유 민주주의를 말하며 자유 민주주의를 전복한 쿠데타 정부”라고 적혀 있다. 또 “원칙을 지킨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그 원칙의 잣대를 왜 자신에게는 들이대지 않는 것입니까”라며 “많은 국민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공권력의 대선개입은 고의든 미필적 고의든 개인적 일탈이든 책임져야 할 분은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쓰여있다.

SNS를 통해 퍼지고 있는 고 이남종씨의 유서 사본
SNS를 통해 퍼지고 있는 고 이남종씨의 유서 사본

이어 “이상득, 최시중처럼 눈물 찔끔 흘리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던 그 양심이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이 아니길 바랍니다”라며 “보이지 않으나 체감하는 공포와 결핍을 제가 가져가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모든 두려움을 불태우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안녕히 계십시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라고 썼다.

장례위는 이날 경찰이 유가족과 충분히 대화하지 않고 성급하게 자살의 원인을 추측하는 보도자료를 냈으며 “유가족의 공식적인 입장은 해당 보도 자료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일 유족과 함께 경찰을 찾아 이씨의 유서를 확인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박주민 변호사에 따르면 이씨의 수첩에는 국민에게 2통, 가족에게 3통, 평소 도움 받은 이들에게 2통 등 총 7통의 유서가 적혀 있었다. 오늘 공개된 유서는 그 중 국민에게 남긴 유서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 변호사는 앞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씨의 분신자살이 카드빚과 어머니의 병환 등 개인적인 이유라는 경찰의 주장에 정면 반박했다. 그는 “형의 사업으로 이씨가 3000만원 상당의 빚을 떠안게 됐으나 이미 7~8년 전의 일이고 그 역시 모두 형이 책임지기로 했기에 평소 이씨가 카드빚 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없었다” 며 “어머니 역시 치매 초기 증상을 앓고 있을 뿐 신체 건강에는 문제가 없었다. 어머니의 병환 때문이라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또 “경찰 측에 유서와 유류품 공개를 요청했으나 ‘국과수에 있다’는 식으로 거절하다 항의하자 말을 바꿨다”고 지적하며 “유서에는 경찰이 발표한 것과 달리 ‘채무관계’나 ‘신병비관’등과 관련된 내용이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5시 35분쯤 서울 중구 서울역 앞 고가도로 위에 승합차를 세운 뒤 ‘박근혜 사퇴, 특검실시’라는 세로 5m 길이의 현수막 두 개를 늘어뜨리고 몸을 쇠사슬로 묶은 채 시위를 벌이다 “박근혜 사퇴”를 외치고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이후 온 몸에 화상을 입고 병원에 옮겨졌으나 다음날 오전 7시 55분쯤 숨졌다.

이씨는 1973년 전남 광주에서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으며 조선대 영문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의 장례는 시민사회장으로 4일간 치러진다. 영결식은 4일 오전 9시 30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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