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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석, 서른즈음 얻은 별명 ‘국민 짝사랑’

대체로 자기연민을 동반하게 마련인 짝사랑이 이처럼 쿨하고 아련하게 표현된 적이 있을까.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는 그렇게 찾아왔다. ‘짝사랑’이라는 단어의 어감조차 달콤하게 바꾸면서 말이다. 칠봉이를 연기한 배우 유연석 역시 많은 이들의 가슴에 그렇게 내려앉았다.

올해로 11년차가 된, 이제 막 서른을 넘어선 그를 지금껏 자극해 온 것은 도전의식과 호기심이다. 때문인지 그는 또래 배우라면 욕심냄직한 빛나는 배역을 찾는 대신 다소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인 ‘몸바꾸기’를 해 왔다. 순하디 순한 눈빛의 소년(열여덟 열아홉)이 소름끼치게 냉랭하고 건조해지는가 싶더니(화이) 이내 야비하고 유들유들한 비웃음을 날린다(건축학개론). 처연한 눈빛으로 사랑을 꾹꾹 눌러 감추다가도(맛있는 인생) 컴플렉스에 사로잡혀 집착과 광기를 발산했던(늑대소년) 그는 대체로 분노와 절망, 짜증과 답답함을 오가는 극적인 감정선으로 관객들을 몰아부쳤다. 선과 악이 모호하게 뒤섞인 듯한 그의 표정이 이번엔 비현실적일 정도로 좋은 남자 칠봉이를 형상화해냈다..

“감독님이 특별한 캐릭터를 구축하기 보다 저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연기하면서 실제 내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끼거나 공감가는 면이 꽤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이건 연기를 하는건지 안하는건지 혼란스럽더라고요. 그동안 주로 강한 캐릭터를 연기해와서 그런지 지금까지 맡았던 배역 중 가장 어려웠어요.”

<응답하라 1994>에서 칠봉이 역으로 인기몰이한 배우 유연석. /김정근기자

완벽한 남자 칠봉이는 드라마에 등장한 인물 중 유일하게 짝사랑으로 끝을 맺는다. 그가 전작에서 연기했던 캐릭터 대부분도 짝사랑에 가슴앓이 하거나 뒤틀리고 그릇된 방식으로 사랑을 표출했다. 심지어 결혼까지 해놓고도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이혼을 감수한다(맛있는 인생). 지난해 한 방송 토크쇼에 나와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다”라며 유쾌하고 귀엽게 항변했던 것도 이같은 이미지가 짙어지는데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다시 짝사랑하는 배역을 고른건 왜일까.

“몰랐죠. 처음엔 촌놈들의 상경기를 그리는 드라마에서 극단의 매력을 가진 인물들의 삼각관계가 그려지는 작품이라고만 알고 있었어요. 전작을 무척 재미있게 봤던데다 모든 캐릭터가 재능을 빛낼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는 감독님, 작가님 말에 무조건 신뢰가 갔고 그것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거든요. 나중에 대본을 보다가 ‘어, 또 짝사랑이네’ 했던거죠(웃음).”

극중 칠봉이는 서울말을 사용하지만 유연석은 경상도 출신이다. 대학교수이던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경남 진주에서 살았던 그는 고2때 연기를 배우겠다며 서울로 올라왔다. 지금도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사투리가 더 편하다. 드라마를 찍는 동안에도 동료 배우들과 카메라 밖의 일상대화는 사투리로 나눴다. 함께 출연했던 배우 김성균이 ‘노안’으로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줬다면 그는 10대 후반을 연기하는 것도 자연스러울 정도의 ‘동안’을 가졌다.

“앞으로 계속 나이들텐데 더 많은 역할을 소화할 수 있다는 면에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때는 그게 고민이었어요. 성장통 앓는 청소년을 연기했던 <열여덟 열아홉>을 찍을 때가 이십대 중반이었거든요. 그 당시엔 내 나이대에 걸맞는 고민을 표현할 기회를 갖고 싶다는 아쉬움이 컸어요.”

2011년 MBC 드라마 <심야병원> 이후 쉬지 않고 작품활동을 해 온 그를 둘러싼 외부적 환경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 확연히 바뀌었다.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뜨거운 대중들의 반응, 작품이나 CF 등 쏟아지는 러브콜에 의연하게 평상심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터. 때문에 그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자”는 것이다. 비슷한 상황은 10년전에도 있었다. 2003년 영화 <올드보이>의 유지태 아역으로 데뷔했을 때다. 영화가 성공했고 큰 관심이 쏟아졌지만 그는 주위의 안타까움에도 아랑곳 않고 학교(세종대 영화예술학과)에 주로 머물렀다. 기본기를 닦는데 충실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현재도 그는 대학원 공부와 연기를 병행하고 있다. 드라마를 촬영하며 하루에 두어시간밖에 잠을 못자는 강행군을 이어가는 중에도 시간을 쪼개 후배들의 기말공연 무대에서 조명을 맡았다.

“과분하게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 말고는 달라진 건 없어요. 한때는 초조함과 조바심을 가졌던 적도 있지만 언제부턴가는 내가 만들어가는 캐릭터를 꾸준히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해요. 작품을 하다 보면 좋은 반응을 얻을 때도 있고 관심을 받지 못할 때도 있는 거잖아요. 사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느릿한 말투로 마치 득도한 사람처럼 대답하던 그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 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게 고민이에요. 사람이다보니, 또 마음이 약해질 수도 있다보니 제가 변하지 않을까 하는거요. 학교에 가는 것도 스스로 채찍질하고 되돌아보기 위해서예요. 열정을 가진 배우들이 모여있는 공간이다보니 항상 반성하게 되고 긍정적 에너지를 받게되거든요..”

초등학교 학예회 때 연극을 하면서 처음 느꼈던 그 떨림이 좋아 배우의 꿈을 꾸게 됐다는 소년. 10년이 지나 배우가 됐고 다시 10년간 연기를 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대본을 받아들 때마다 기분좋은 떨림에 취해든다. 현재 그를 붙잡고 있는 고민은 기우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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