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아쉽다, 적어도 브랜드라도 살렸으면…” 해산 앞둔 WCG 이수은 대표 인터뷰

이미 파장분위기였다. ‘Beyond the Game’(게임 그 이상)이란 구호로 전세계 e스포츠 팬들의 가슴을 흔들던 ‘본진’의 마지막은 예상보다 훨씬 초라하고 씁쓸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 e스포츠대회인 월드사이버게임즈(WCG)가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메인 스폰서이자 ㈜월드사이버게임즈의 대주주인 삼성전자가 사업을 접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는 6일 주주총회에서 해산을 결의하면 WCG는 공식 해체된다. ‘게임올림픽’을 목표로 야심찬 첫발을 내딛은 지 13년만이다. 지난달 27일, 정리작업이 한창이던 사무실에서 이수은 대표를 만났다.

지난해 12월 중국 쿤산에서 열린 WCG 2013. 중국 e스포츠 팬들이 쿤산 컨벤션센터를 가득 메운 채 경기를 즐기고 있다.

- 갑작스러운 해체 배경은.

“글쎄…. 지난 1월에야 통보를 받아 아직도 얼떨떨하다. 회생 가능성에 대한 검토를 제의했으나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삼성전자가 PC사업을 축소하면서 마케팅툴로써 효용성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한 것으로 짐작된다. 사실 그동안 투자가 계속 줄어드는 과정이었다. 삼성에서 한때 모바일게임대회 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결국 해산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WCG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2000년대 인터넷붐을 타고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e삼성’의 결과물이다. 특히 윤종용 전 부회장이 조직을 관할하면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승승장구했고, 한때는 문화부장관이 공동 조직위원장으로 국가 예산까지 투입되는 대규모 행사였다. 독일 쾰른에서 열린 2008년 그랜드파이널의 경우 전세계 78개국에서 800여명이 참가, 명실 공히 ‘e스포츠 올림픽’에 근접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삼성전자의 사업 무게중심이 PC에서 모바일로 전환되면서 지원 규모가 줄기 시작했고 결국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 WCG의 중흥이 얘기되던 시점이었는데.

“무엇보다 그점이 안타깝다. 지난 2년간 중국 쿤산대회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회복하던 중이었다. 2011년부터 몸집을 줄이는 작업을 해왔다. 그랜드파이널을 제외한 대륙별 예선은 현지 스폰서 유치만으로도 무난하게 치를 만큼 자생력을 키우는 단계였다. 특히 쿤산대회부터는 흑자구조도 만들었고, 관객동원도 대성공이었다. 한마디로 브랜드를 키우고 내실화를 이루어 가던 제2의 성장기였다.”

2012년과 2013년 중국 쿤산에서 열린 WCG는 한해 15만명이 넘는 유료관중을 불러모으며 흥행을 기록했다. 대회 성공에 고무된 쿤산시 측에서 영구 개최를 제의할 정도였다. 시장은 물론 공산당 시당서기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건립 중인 WCG기념관이 대표적 사례다.

- 삼성의 방향대로 모바일대회로 전환했더라면.

“전환을 모색하지 않은 게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모바일게임의 태생적인 한계에 있었다. 모바일게임은 ‘보는 스포츠’로서 매력이 아직은 부족한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온라인·콘솔게임에 비해 생명력이 짧아 대회를 치르기가 쉽지 않았다. 대륙별 예선을 치르다 보면 그랜드파이널이 열리기도 전에 게임의 인기가 시들해져 사라지는 경우가 있을 정도였다.”

- WCG는 어떻게 되나.

“회사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대회를 이어가는 방향을 모색했지만 무산됐다. 삼성전자는 다른 곳에서 WCG 브랜드를 이어나가는 것도 원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적어도 브랜드만은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한국e스포츠협회 전병헌 회장이 국제e스포츠연맹(IeSF) 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상황에서 IeSF가 WCG를 운영하는 방법도 논의되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결심없이는 불가능하다.”

사실 스포츠 마케팅에 어마어마한 돈을 쓰고 있는 삼성전자의 입장에서 한해 수십억원 정도의 비용으로 전세계 게이머들을 상대로 마케팅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WCG의 효용성은 결코 작지 않다. 그럼에도 사업을 접는 것은 회사 내부에 사정이 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 WCG를 대체할 다른 대회의 가능성은.

“재원이 문제다. WCG의 14년은 삼성전자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어 가능했다. 단일 종목의 글로벌 대회가 각광받는 요즘 트렌드도 있고, 삼성도 접는 마당에 다른 기업이 나서 종합e스포츠대회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물론 중국이 나설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중국은 내수 규모·자금·흥행 등 모든 면에서 능력을 갖췄다. 세계대회를 치를 수 있는 인력 인프라만 있으면 레노버 같은 중국의 PC기업들에게 더없이 매력적인 마케팅툴이 될 수 있다.”

- WCG는 게임의 역사에 어떤 의미였나.

“처음 누군가가 생각해 냈을 당시에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위대한 도전이었다. 게임이 스포츠가 되는 이정표였다고 생각한다. ‘e스포츠 종주국’이라는 한국의 위상과 함께 WCG가 쌓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다시 시작하려면 더 많은 노력과 자본이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 게임과 e스포츠는 이미 콘텐츠 수출의 대부분을 담당할 만큼 ‘한류의 대표주자’다. 최근 게임을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이는 일종의 문화지체 현상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WCG를 사랑했던 팬들에게 한마디….

“너무 아쉬워하지 말고, 앞으로 새롭게 태어날 무언가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e스포츠에 진심어린 사랑과 성원을, 외부적인 힘든 환경을 이겨낼 수 있도록 ‘e스포츠 종주국’이란 말이 생겨날 때보다 더한 사랑을 부탁드린다. ”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