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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연이다]‘태양은 가득히’ 조진웅

조진웅은 요즘 ‘소진웅’으로 불린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소처럼 우직하고 묵묵하게 많은 역할을 소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맡은 역할마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 ‘여우진웅’으로도 불린다. 조진웅은 KBS 2TV 월화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에서 박강재 역을 맡아 시청자들로부터 “명품 조연이란 말로는 부족하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태양은 가득히>는 태국에서 다이아먼드 도난 사건으로 아버지를 비롯, 창창한 미래 등 모든 것을 잃은 윤계상(정세로 역)과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좌절한 한지혜(한영원역)의 지독한 로맨스를 그린 작품. <태양은 가득히>란 제목과 달리 시청률이 한자리수로 저조하지만 조진웅을 비롯, 연기자들의 열정과 연기력은 가득한 드라마다.

극 중 조진웅이 연기하는 박강재는 10대 시절부터 이대연(정도준 역)을 따라 사기를 배워온 사기꾼으로 이대연의 아들인 윤계상에게는 친형 같은 존재다. 자신을 배신하려 했던 이대연을 원망하지 않고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쓴 그의 아들 윤계상의 옥바라지를 하고 신분세탁을 해주는 등 그의 복수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속 깊은 인물이다. 자신도 노련한 사기꾼이지만 복수심에 불타있는 윤계상에게 현실을 바로보게 하고, 김유리(서재인 역)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 순정적이고 마음여린 남자다. 카리스마가 넘쳤다가 바보 같은 순애보였다가. 강자 앞엔 강하고 사랑 앞엔 약한 조진웅의 야누스적 매력이 여심까지 사로잡고 있다.

배우 조진웅 사진|권호욱 선임 기자

윤계상의 행방을 쫒기 위해 그의 할머니 김영옥까지 유인하는 거물 김영철(한태오 역)에게 그의 비리 자료를 내밀며 “할머니 건드리고 그러면 되겠어요. 우리 치사하게 그러지 맙시다. 나 먹고 떨어지려니까 나 찾지도 말고 궁금해하지도 말고”며 능글맞게 속사포 일갈을 가했다. 김영철이 살인범이자 엄청난 조직을 이끄는 보스인데도 기죽지 않는 그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한 눈에 간파할 만큼 예민하고 날카로운 남자다. 특히 그는 윤계상을 향한 김유리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김유리 곁을 묵묵히 지키며 자신만의 사랑표현을 이어간다.

조진웅은 김영철과 함께 주가조작 판을 벌이자는 신회장(정원중 분)의 제안을 받아 갈등 끝에 팀원들에게 내용을 전했지만 모두 반기를 들자 당혹해했다. 김유리 까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한다며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윤계상도 만류하자 “못할게 뭐있냐. 돈버는데”라며 일부러 위악을 떨며 혼자라도 김영철과 손을 잡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조진웅은 윤계상의 만류에 등을 돌리며 슬픔과 외로움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을 미세한 눈빛 연기와 심도 깊은 감정 연기로 표현해냈다. 외로운 남자 박강재의 참담한 심경을 속으로 꾹꾹 눌러 표현해내며 내면 연기를 통해 옳고 그름을 떠난 어쩔 수 없는 사기꾼으로서의 인생에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특히 자기보다 윤계상에게 마음을 쏟는 김유리의 태도에 자존심이 상해 일부러 위악적인 모습을 보일 때는 오히려 자신이 뱉은 말로 스스로 자신에게 비수를 꽂는 듯 한 모습으로 애처로움을 더하게 했다.

극중 조진웅은 윤계상에게 여러가지로 열등감을 갖고 있다. 윤계상의 아버지에게 배신을 당했지만, 자신 때문에 윤계상의 아버지가 사고로 죽었다는 자책감도 갖고 있다. 또 자신이 사랑하는 김유리가 윤계상을 사랑하는데, 윤계상은 한지혜에게 이끌린다는 사실에 분노감을 느낀다. 이런 박강재의 복잡미묘한 심리를 조진웅은 차분하면서도 묵직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조진웅은 불같이 격렬한 분노나 폭풍 같은 포효 대신에 차분하고 냉정함으로 일관한다. 그 냉정함은 더 위험해보이고 묵직한 존재감이 더해진다. 조재웅의 탁월한 열연으로 박강재란 사기꾼의 분노감과 애증은 설득력을 더한다.

시청자들은 “박강재, 볼수록 애잔하다. 조진웅 연기가 박강재 미워할 수 없게 하네”, “박강재 마음 이해 간다. 김유리만 조진웅 편에 서도 이렇게 안쓰럽진 않을 듯”, “조진웅 연기 진짜 갑”, “조진웅과 윤계상 마음 너무 이해돼 누구 나무랄 수도 없네. 이게 다 배우들 때문이다. 내 감정이입은 누가 책임지냐”는 등 반응을 보였다.

경성대 출신으로 연극무대에서 연기력을 다진 조진웅은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데뷔했다. 영화 <우리 형>에서 자폐아 두식역을 맡아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두식역을 위해 비슷한 체형의 자폐아를 찾아내 관찰하고 몸무게를 128kg까지 불렸다. 하지만 이듬해 출연한 영화 <마이 뉴 파트너>에서는 78kg까지 감량할 정도로 연기에 대한 열정이 강하다. 2011년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하정우의 부하역을 맡아 비열하고 악랄한 만년 2인자 판호 역으로 얼굴에 새겨진 짙은 흉터와 함께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스틸컷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순박한 청년부터 비열한 사채업자나 으스스 한 조폭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내는 조진웅의 장점은 진실하다는 점이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석규의 호위무사로 “무사 무휼!”이라고 외치고, 영화 <퍼펙트 게임>에서 “롯데의 4번타자가 아니라 최동원의 1루수가 되겠다”고 다소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를 해도 조진웅이 연기하면 가슴을 울린다. 신파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 믿고 연기하기 때문이다.

“야구로 치면 직구를 던집니다. 스스로 어색하다고 느끼면 관객도 그렇게 느끼거든요. 진실을 담아 연기해야죠. 아무리 손발이 오그라드는 신파도 직구로 세게 던지면 정확히 들어갑니다. 많은 분들이 너무 다작을 한다는 지적을 하지만 스스로 역할이나 장르에 경계를 두지 않습니다. 언제든 제가 지금 연기하는 장면에만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드라마와 영화도 모두 작품 중 하나일 뿐이에요. 어디에도 경중을 두지 않아요. 언제 어디서든 저는 제 연기를 하려 할 뿐입니다.”

조원준이 본명인 조진웅은 아버지의 이름을 예명으로 쓴다. 연극에서 단역을 전전하다 영화 데뷔를 앞두고 집을 찾아 예명으로 아버지 이름을 쓰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집에서 별걸 다 가져 가는구나”라며 귀찮은 표정으로 승낙했단다. “아버지를 너무 좋아해서 이름을 빌렸지만 아버지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더욱 더 열심히 연기하게 된다”는 조진웅은 이미 아버지에게 효도를 한 셈이다. 연기자 조진웅이란 이름이 이토록 사랑받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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