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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핀 코트의 꽃 임영희 “우리라서 행복해요”

늦게 피는 꽃은 아름답고 향기도 진하다.

임영희(34·우리은행)의 농구 인생은 참 늦게 풀렸다. 데뷔 후 오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영원히 꽃을 못 피울 것도 같았다. 코트 대신 벤치를 달군 기간이 10년도 넘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참아온 시간은 소중한 자양분이 됐다. 마침내 30대 중반에 그의 농구인생은 활짝 피어났다. 시련을 묵묵히 견뎌내고 피운 꽃망울은 더욱 진한 빛깔을 띠었다. 은은한 향기는 가슴 깊이 파고들어 더욱 진했다.

임영희는 지난 2년간 여자프로농구(WKBL)에서 가장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 2012~2013 시즌 정규리그와 챔프피언결정전 MVP에 이어 2013~2014 시즌 챔피언결정전 MVP에 올랐다. 우리은행 통합 2연패의 핵심 선수다.

여자농구 MVP를 차지한 우리은행 임영희 사진|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임영희는 1일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서 무명으로 힘겨웠던 지난 시절 얘기와 우리은행에서 뒤늦게 맞이한 결실의 기쁨을 담담히 전했다. 그는 “이번 시즌 우승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는 말부터 꺼냈다. 임영희는 “시즌을 앞두고 감독님과 함께 국가대표에 소집돼 팀과 함께 준비한 시간이 길지 않아 사실 걱정이 컸다”고 말했다. “그래도 지난 시즌에 해온 것을 믿었다. 감독님이 ‘우리의 몸이 1년 전에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으니 잘 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했다.

정말 우리은행은 1년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공수 조직력이 더 탄탄한 팀플레이를 뽐냈다. 다소 약한 외국인 선수의 약점은 국내 선수들이 메웠다. 그 중심에 팀내 최고참인 주장 임영희가 있었다. 경기당 평균 13.91점의 알토란같은 득점을 올렸고, 한참 어린 후배들을 이끄는 주장으로 팀 안팎에서 맹활약했다. 그는 2년 연속 통합우승의 기쁨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영광 뒤에는 힘들었던 과거의 시간이 있었다. 5년 전, 그는 우리 나이 서른에 농구를 포기하려고 했다. “고교 졸업하고 신세계에 입단한 1999년부터 10년간 경기에 많이 뛰지 못했다. 신입생때야 그러려니 할 수 있었는데 중고참이 돼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니 비전 없는 현실이 힘들고 싫어 은퇴 생각도 했다.” 당시 신세계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즐비해 그가 경기에 나설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은퇴를 염두에 두고 혹시나 하는 마음을 안고 2009년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 나간 게 농구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당시 성적이 좋지 않았던 우리은행에서 그를 데리고 간 것이다. 임영희는 “나를 필요로 하는 팀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이적해서 많은 경기에 뛰게 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한 것이 너무 기뻤다. 부모님도 딸이 경기에 나서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이적 직전 시즌에 임영희는 평균 9분 출전에 평균 2.57점을 넣었으나 이적 후 첫 시즌에 34분여를 뛰며 11.53점을 넣는 대변신을 이뤄냈다. 그가 이적할 당시 우리은행은 전력이 약해 꼴찌를 도맡아 했지만 임영희는 많은 경기에 뛰면서 기량과 자신감을 키워나갔다. 실전을 통해 슈터의 장점을 더 끌어올렸다. 그리고 위성우 감독이 부임한 뒤 혹독한 훈련으로 하나가 된 우리은행은 4년 연속 꼴찌에서 2년 연속 통합우승의 대반전을 만들었다.

무명의 식스맨으로 10년을 보낸 임영희는 뒤늦게 주전이 됐고, 30대 중반에 최고의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때로는 일찍 꽃을 피우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도 했다. 초·중·고를 함께 다닌 ‘절친’ 신정자(KDB생명)와 여자농구 최고의 슈터 변연하(국민은행)와 동기생인 그는 일찍부터 재능을 꽃피운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잘 했으면 물론 좋았겠지만 힘든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순간이 더 값진 것 같다. 내 스스로에게 ‘힘든 시간 잘 이겨냈구나. 포기했더라면 이런 좋은 시간 못보냈을텐데’라고 말하곤 한다”고 말했다.

사복을 입고 나와 조곤조곤 차분히 말하는 임영희는 천상 여자였다. 그 스스로도 “너무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어서 식스맨 시절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랬던 그는 이제 최고참으로 후배들을 다독이는 맏언니 역할을 하고 후배들과의 몸싸움도 피하지 않는다.

우승의 기쁨은 가족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했다. 특히 2년 전 결혼한 그는 든든히 지원해준 남편 유재선씨(35)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이젠 시즌 중 못다한 아내와 며느리 역할도 충실히 할 작정이다.

그러나 미래를 생각하면 고민도 적지 않다.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하진 않았지만 나이도 있으니 이제 은퇴도 서서히 생각해야 하고,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요….”

베테랑 선수와 여성 입장의 고민이 만나 복잡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도 있다. 뒤늦게 찾아온 행복한 시간을 잘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잘 해왔고 좋은 기억을 남겨준 우리은행에서 행복하게 마무리를 잘 하고 은퇴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확실하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휘슬이 울릴 때까지 그는 여전히 묵묵히 코트에서 자신이 할 일을 하겠다고 했다. 출발은 미약했으나 묵묵히 앞을 보고 전진한 임영희의 농구 인생 후반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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