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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연이다] ‘기황후’ 조재윤

한국인이 요즘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은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다. 지난달 25일 여론조사 전문회사 한국갤럽이 전국의 성인남녀 1천216명에게 전화로 조사한 결과, 국민예능으로 불리는 <무한도전>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역사왜곡의 논란 속에서도 <기황후>가 이처럼 인기를 끄는 이유는 주인공인 하지원·주진모·지창욱 만큼이나 빛나는 조연들의 공이 크다.

조재윤은 <기황후>의 홈페이지 등장인물에도 소개되지 않은 아주 작은 역할로 출발했다. 원나라의 황제 타환(지창욱 분)을 보좌하는 환관 골타 역을 맡았지만 점점 극중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회에는 하지원(기승냥 역)과 대립하는 지점에 항상 자리해 온 흑막 매박상단의 수령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수령이 묵묵히 하지원과 지창욱의 곁을 지켜오던 골타 조재윤일 가능성이 제기돼 그는 이제 미미한 환관에서 극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역할로 급부상했다.

매박상단은 가짜 교초(원나라의 화폐)를 만들어 원나라와 고려의 상권을 쥐락펴락 하고, 연고 없는 이들을 사로잡아 노예로 팔아넘기는 등 악행을 일삼아 온 집단이다. 이를 통해 축적한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매박상단은 과거 연철(전국환 분)의 자금줄 역할을 자임하기도 했다.

MBC 월화극 ‘기황후’에서 골타 역으로 출연 중인 배우 조재윤. 사진 MBC 방송화면 캡처

매박상단의 수령은 얼굴에 가면을 쓰고, 의사소통을 오로지 글로 대신하는 등 철저히 자신을 숨겼다. 바로 이어진 장면에는 조재윤이 황제 지창욱의 부름에도 “연로한 어머님이 아파서 돌보느라 늦었다”는 석연찮은 이유로 늦게 나타나 꾸지람을 듣는 모습이 소개됐다. 언제까지나 지창욱과 하지원의 편일 것만 같던 골타가 ‘악의 축’인 매박상단의 수령일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풍겼다. 또한 조재윤은 지창욱이 보지않는 자리에서는 평소와는 다른 날카로운 눈빛을 선보여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

시청자들은 게시판을 통해 “지창욱의 곁에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귀엽고 착한 조재윤이 매박상단 괴수라니 식스센스급 반전이다” “조재윤의 감초 연기가 이제 본좌급 악역으로 넘어가나?” 등의 글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기황후>가 고려와 원나라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궁중 암투가 살벌하게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유독 타환 지창욱과 내관 조재윤이 뭉칠 때마다 긴박한 감정선이 잠시나마 유보되며 시청자들의 숨통을 틔워줬다. 지창욱은 원나라 황제 타환을 연기하며, 때론 권력 암투 속에 연민 가득한 인물이었다가 때론 사랑에 빠진 귀여운 인물로 변신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조재윤은 충성심이 강하지만 다소 모자란 구석도 있는 내관을 맡아 수시로 감정과 상황이 바뀌는 지창욱과 환상의 콤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지창욱이 대승상 연철(전국환 분)의 국정 장악력에 밀려 목숨이 위태로웠을 때도 언제나 그의 곁을 지키는 진정성 넘치는 충복이지만 두 사람은 진지한 구석보다는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하는 관계를 보여줄 때 더 빛난다. 마치 <해를 품은 달>의 김수현과 정은표 커플처럼 성과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에 대해 시청자들은 “연말 방송상에서 베스트 커플상을 탈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지창욱은 하지원이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 채 하지원의 거취를 알아보라고 다른 내관에게 시켰다. 하지만 시간이 더디게 걸렸고 지창욱은 목욕 중 조재윤에게 귀여운 투정을 부리며 하지원에 대한 애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조재윤은 “소인이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겠다”고 했지만 물을 튀기며 토라진 모습을 보인 것. 갑작스런 물을 맞고 당황하다가 흘러나온 이 물질을 지창욱의 목욕물에 닦는 돌발 행동은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또 지창욱이 하지원의 황실 물품 중 꽤 많은 양의 금괴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해 조재윤에게 “승냥이(하지원)의 눈빛이며 행동이 예전 같지가 않다. 우리 둘 사이에 거대한 벽이라도 생긴 듯 요즘 멀게만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조재윤은 “본 모습을 이제 본 거다. 이대로 끌려다니시면 귀비마마를 절대 얻으실 수 없다. 폐하께서는 나약하고 외로운 황제가 아니다”라고 나름의 충언을 올렸다. 하지만 하지원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지창욱은 조재윤의 멱살을 잡으며 “그 입 조심하라. 내가 만신창이가 될지언정 승냥이를 포기 못한다. 승냥이를 폄하하는 자는 그 누구라도 절대로 용서치 않을 거다”라고 경고했다. 충언을 해도 자신의 멱살을 잡는 지창욱에게 그는 억울한 눈빛을 보였다. 이처럼 좀 모자라지만 충성도가 높은 조재윤이 매박상단의 괴수일지 모른다는 전개에 기황후의 시청률은 계속 오르고 있다.

영화 ‘7번방의 선물’ 출연 당시의 배우 조재윤. 사진 NEW

마흔살 총각인 조재윤은 2012년 SBS 드라마 <추적자>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무명배우였다. 그전까지 출연한 영화가 10편이 넘고 드라마 출연작도 대여섯 편이었지만 단역에 대부분 건달역 이었던 탓이다. <추적자>의 보조작가가 친구여서 우연히 출연제의를 받고 또 건달역이라 망설였지만 출연 분량도 많고 여형사와 멜로신도 있어서 결심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전과 7범 용식이를 맡아 의리있고 사랑스러운 로맨티스트 건달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전라도 출신 건달 용식이를 연기하기 위해 <은실이>의 성동일을 연구했다. 전라도 지방의 5일장을 돌아다니며 징한 사투리를 익히고, 건달도 순정이 있으니 연인 앞에서는 애교를 부릴 것 같아 “조형사니이임~~” 등의 억양도 연구한 덕분에 그는 16년만에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알렸다. 그후 승승장구하며 영화와 드라마, 연극에 겹치기 출연하고 있다.

최근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는 심장병을 앓아 리모콘을 친구 삼아 텔레비젼만 보셨는데 <전우치> <기황후> 등 드라마에 연달아 출연한 것도 그나마 방송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보여드리고 싶은 효심에서였단다. 아버지에게 부끄러운 아들이 되지 않으려고 연기에도 더욱 최선을 다했다.

“제 옷장엔 수많은 옷이 있어요. 한 캐릭터를 맡으면 전 그 옷 중 하나를 꺼내 입죠. 의사 옷을 입으면 닥터가 되고 깡패 의상을 걸치면 양아치가 되는 거죠. 다양한 옷을 채워 넣기위해 전국 각지를 돌며 사람들을 찍고 노트에 메모를 하죠. 그것들이 이미지화 돼 제 머릿속 데이터 베이스가 되고 전 그걸 바탕으로 연기를 해요.”

아직 그의 데이터 베이스에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다. 결혼과 육아 등 ‘간접경험’이 불가능한 것 들이다. 그래서 하루 빨리 결혼해 아빠가 되고 싶단다. 그의 테이터 베이스가 풍부해질수록 시청자들의 즐거움도 풍성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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