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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이성민 “고수들과 연기 대결 짜릿”

배우 이성민(46)이 연기를 시작한 지는 20년이 넘었다. 그간 숱한 작품에 출연했으나 이름을 알린 건 2012년 드라마 <골든타임>이다. 시청자들은 강한 카리스마, 환자를 향한 따뜻한 마음씨를 갖춘 최인혁 교수에 열광했다. 이성민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졌다.

젊은 배우였다면 갑작스런 인기에 정신을 못 차렸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아는 불혹의 나이였다. 인기에 취하는 대신 다른 연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즐기려 했다고 한다. ‘최인혁 신드롬’ 이후 그가 출연한 영화가 바로 <방황하는 칼날>이다. 딸을 죽인 소년들에게 직접 복수하는 아버지 이상현(정재영)이 중심이지만, 주제를 함축하는 건 이성민이 맡은 형사 장억관이다. 소년범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사적 복수의 문제는 억관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사건에 냉정하던 억관은 점차 분노로 뜨거워지는데 이는 관객들의 감정 이동 경로와 같다.

“처음엔 범인을 찾아 눈밭을 헤매는 상현이 ‘방황하는 칼날’이라고 생각했는데, 억관도 방황하더군요. 억관은 이성과 감성, 정의와 법 사이에서 방황하고 회의에 빠지죠. 범인 못 잡고 뒷북 치는 형사인 줄만 알았는데, 내면이 복잡한 인물이라 흥미를 느꼈어요. 맡고 나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역할이죠.”

영화 〈방황하는 칼날〉에서 형사역을 맡아 열연한 이성민이 3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영화는 상현이 딸을 죽인 소년 철용이를 죽이고 피해자 가족에서 가해자로 변하는 시점, 상현이 또 다른 범인을 찾아서 강릉에 내려가는 시점을 계기로 전환점을 맞는다. 이성민은 상현과 억관이 마주하기 전과 후, 상현이 범인 얼굴도 모른 채 쫓고 있다는 사실을 억관이 알기 전과 후로 나눠 연기했다고 한다.

그는 촬영장에서 리허설을 잘 하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하는 연기가 가장 자연스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영화에도 대부분 첫 번째 테이크(촬영) 연기가 담겼다.

본능을 강조했지만 그냥 하는 연기는 없었다. 불면증이 있는 그는 대본을 읽으면서 잠을 청한다. 그러다 잠에 들면 공연 시간이 다 됐는데 공연장에 도착 못했거나, 연습을 못했는데 무대에 등장해야 하는 꿈을 꾼다. 실제로는 한 번도 없던 일인데 꿈에는 자주 나온다고 한다. 관심을 받는 만큼 책임감은 더 커졌고 늘 불안하다고 했다.

“요즘 연극 <마르고 닳도록>을 연습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에이 연습 뭐’ 이러면서 건들거렸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제가 나서서 한번 더 하면 안되느냐고 연출자에게 부탁하죠. 스스로도 왜 이러지 싶을 정도예요.”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 주위에는 야단치는 사람이 많았다. 조언도, 꾸짖음도 자주 들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꾸짖는 사람이 없어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며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후에는 아무도 조언을 안해준다. 스스로 검열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성민이 20대 였을 때 선배들은 배우는 60, 70세가 되도 정체될 수 없는 팔자이니 도 닦듯이 연기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도 닦는데 끝이 어딨겠냐”며 “아쉬웠던 점을 보강하려는 마음 때문에 연기를 계속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 <변호인>에서는 속물 변호사 친구에게 일갈하는 기자 이성민을, <관능의 법칙>에서는 고개 숙인 중년 이성민을, 드라마 <미스코리아>에서는 순정을 간직한 건달 이성민을 볼 수 있었다.

“무림에는 고수들이 무척 많습니다. 정재영·오달수도 있고, 송강호란 절대 지존도 있습니다. 은둔 고수도 무수하죠. 마주 서보면 상대의 내공이 느껴지거든요. 무협지 주인공이면 칼 들고 대결하겠지만, 배우들은 서로 자극 받아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줘요. 그런 자극이 제가 연기를 계속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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