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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볼 pm 6:29]땀 흘린 자, 그에게 '등'을 보여라

야구는 눈으로 하는 운동이다. 좋은 공을 골라치는 선구안부터 투수의 습관 읽기까지 보는 능력이 탁월하면 움직임에도 여유가 생긴다.

투수는 포수 사인이 흐릿해질 때면 안경을 찾는다. 야구는 안경 쓰고 할 수 있는 많지 않은 구기 종목 중 하나다. 야수라면 몸의 고단함보다는 시력 저하 때문에 은퇴를 고민하기도 한다. 움직이는 공을 잡아내는 ‘동체시력’이 떨어지면 타자는 조준경 잃은 스나이퍼와 다름 아닌 신세가 된다.

지도자도 눈으로 통한다.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은 뒤에 있는 선수들까지 살핀다고 해서 ‘잠자리 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 감독은 보는 능력을 강조하며 견(見), 시(視), 진(診)이라는 한자 3개를 감독실 화이트보드에 적어놓곤 했다. ‘견’이 그냥 눈만 뜨면 볼 수 있는 단계라면 ‘시’는 뭔가를 아주 유심히 보려는 것이라고 했다. ‘진’은 의사가 진찰할 때 환자를 살피는 수준으로, 궁극적 목표라고 했다.

각 구장 더그아웃에서 경기 전 감독들이 기자를 만날 때도 배팅케이지로 향하는 시야를 열어놓는 것이 예의다. 프로야구 사령탑이라면 기자들과 철 지난 야구 일화로 웃음꽃을 피우다가도 급작스레 코치를 불러 누군가의 훈련 모습을 얘기한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시선만은 그라운드에 꽂아두고 있다.

어쩌면 프로야구 감독은 배우를 캐스팅하는 영화 감독과 비슷하다. 그만의 눈으로 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역할에 맞는 선수를 골라내야 한다.

프로야구 통합 3연패를 이룬 류중일 삼성 감독은 특유의 관찰법으로 선수들을 파악한다.

그 중 하나는 사우나에서 선수들의 ‘뒤태’를 살피는 것이다. 류 감독은 “겨우내 얼마나 훈련했는지, 또 평소에 얼마나 몸 관리를 잘 하는지 뒷모습에 많은 것이 담겨 있다”고 했다.

남자들만의 사우나라면 덮고 감추고 할 것도 없다. 류 감독은 양쪽 허벅지 외곽라인과 등 근육의 굴곡 변화를 통해 선수들의 훈련 내용을 짐작한다.

지난 시즌 개막에 앞서서는 일본 오키나와 캠프 숙소 사우나에서 선수들을 함께 있던 적이 많았다. 뒷모습만 보자면 고졸 3년생 우완 유망주인 이현동이 으뜸이었다. 뒷모습으로 호평받은 선수 중에는 ‘라이언킹’ 이승엽도 있었다. 한창 때 만큼은 아니더라도 지난 겨울 훈련량이 뒤태에서 상당 부분 나타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승엽은 10경기에서 타율 3할3푼3리에 1홈런 6타점으로 무난한 출발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선수 입장에서 감독의 눈은 참으로 무섭다. 반대로 보면 기회일 수도 있겠다. 삼성에서 땀 흘린 선수라면 ‘등’을 보여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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