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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탁구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우승

발걸음에 힘이 없었다. 시상대에 올라갔을 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금메달을 목에 걸어주는 이도, 받는 이도 표정이 어둡기만 했다. 눈물의 시상식이었다.

국내 최고 권위의 탁구 대회인 제60회 전국남녀종별선수권대회가 열린 17일 충남 당진실내체육관. 안산 단원고 탁구부는 이날 여자 고등부 단체 결승전에서 울산 대송고를 3-1로 꺾고 우승했다. 트로피와 함께 대한탁구협회 조양호 회장이 전달하는 두둑한 금일봉도 받았다.

평소라면 기쁨의 환성을 질렀겠지만 같은 교실에서 웃고 떠들던 친구들이 추운 바닷속에 있다는 생각에 눈물만 절로 흘렀다. 단원고는 2학년 학생들이 수학 여행을 떠났다 여객선 침몰사고를 당했다.

안산 단원고 탁구부 선수들이 17일 충남 당진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60회 전국남녀종별선수권대회 여자 고등부 단체 결승전에서 우승한 뒤 시상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월간탁구 제공

단원고 오윤정 코치는 “선수들이 지난 이틀을 지옥같이 보냈다”고 했다. 지난 15일 준결승에 올랐을 때만 해도 2년 연속 우승 트로피를 학교로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그런데 16일 준결승에서 안양여고에 3-2로 승리하고 나서 침몰사고 소식을 접한 뒤 갑자기 침울해졌다. 박세리·안영은·김민정 등 3명은 수학여행을 가야 하는 2학년생이었지만 이번 대회 출전 때문에 배에 오르지 않았다.

오 코치는 “경기 중에는 아이들이 휴대폰을 쓰지 않아 침몰 소식을 곧바로 알 수는 없었다”면서 “사고 초기에는 학생 전원이 구조됐다는 소식에 안도했지만 이후 경과가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17일 결승전이 열린 체육관은 경건해졌다. 상대를 자극하는 응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단원고 상대인 울산 대송고 조범래 교장은 “최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단원고 2학년 선수들도 큰 사고를 당한 친구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뛰었다. 안영은이 단식 첫 게임을 3-1로 제압했고, 박세리가 두 번째 게임을 3-2로 이겼다. 3번째 복식에서는 졌지만 박신애가 4번째 게임에서 승리해 단원고는 우승했다. 오 코치는 “우승한 뒤 아이들이 우리 담임 선생님은 어떻게 됐느냐고 묻더라”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이 선수들의 담임교사는 실종자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단원고 선수들은 우승 식사자리를 마다하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오 코치는 “선수들이 친구들 걱정에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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