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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연이다] ‘참 좋은 시절’ 최화정

최화정은 연령 예측 불가의 외모다. 20대가 부러워하는 투명하고 탱탱한 피부, 30대처럼 톡톡 튀는 발랄한 목소리와 입담에 항상 밝은 모습이어서 1961년생, 54세란 나이에 다들 놀란다. 그동안 출연 작품마다 유학파 요리사, 호텔리어, 연예 기획사 여사장 등의 전문직 여성 역할을 맡았던 최화정이 세련된 도시 여성의 옷을 벗고 촌스런 시골 아줌마 차림으로 제 나이를 찾았다.

KBS2 주말극 <참 좋은 시절>에서 최화정이 연기하는 하영춘은 윤여정(장소심 역)과 한 집안에 사는 첩이다. 어린 시절에 술집에 팔려와 풋사랑을 나눠 아이가 생겼는데 하필 그 남자는 유부남에 바람둥이. 할 수 없어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에 “이 아이는 강태섭씨 아이입니다”란 쪽지를 남기고 사라졌다. 기구한 팔자로 선술집을 전전하다 그래도 자기 핏줄인 친아들 옥택연(강동희 역)이 보고 싶어 8년 전 집을 찾아와 윤여정과 함께 족발집을 운영하며 자매처럼, 혹은 부부처럼 지낸다.

병상에 누워서도 온 집안을 호령하는 할아버지(오현경), 마흔이 넘기고도 장가를 못간 쌍둥이 삼촌인 김광규와 김상호, 연기자를 꿈꾸지만 사투리 때문에 제대로 된 배역을 못맡는 큰아들 류승수(강동탁), 검사가 되어 돌아왔지만 첫사랑 김희선과 갈등이 많은 아들 이서진(동석 역), 어릴 때 사고로 일곱살 지능에 머문 이서진의 쌍둥이 남매 김지호(동옥 역), 최화정의 친아들이자 말썽꾸러기인 옥택연, 옥택연이 고교 때 여자친구와 하룻밤 불장난으로 낳은 쌍둥이들까지 대가족 사이에서 최화정은 혼심을 다해 윤여정을 돕고 그를 위해서는 불속이라도 뛰어들듯 한 충섬심을 보인다.

사진 KBS

과거 부자였던 김희선네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던 윤여정은 몰락한 김희선의 엄마 노경주에게 아직도 식모 대접을 받는다. 이에 격분한 최화정은 노경주과 몸싸움을 하며 대신 화풀이를 해준다. 입원한 노경주는 윤여정에게 최화정이 무릎 꿇고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 최화정은 사과하겠다며 음식보따리까지 준비해 병원을 찾았지만 막말과 독설을 퍼붓는 노경주에게 “오늘 너 이거 먹이구, 우리 형님한테 깨끗이 맞아 죽을려고”라며 음식 대신 싸 가지고 온 음식물 쓰레기를 쏟아 부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잘못했네, 내가! 그 여편네 면상에다 쓰레기가 아니라 똥물을 부어버리고 왔어야 했는데!”라며 윤여정에 대한 의리를 보였다.

하지만 고지식한 윤여정은 그런 행동을 한 최화정을 내쫒았다. 초라하게 집을 나온 최화정은 아들 옥택연이 다쳐서 입원한 병실로 갔지만 역시 독한 말로 구박을 받고 속으로 눈물을 삭이는 서러움을 표출했다. 정작 최화정을 내쫓은 윤여정은 마음이 아파 물 한모금 못 마시고 앓아 누웠다. 그 소식을 들은 최화정은 집으로 돌아갔고 맨발로 그를 찾아나선 윤여정과 대면했다. 최화정은 억지로 밝은 표정을 지으며 “내가 집을 왜 나가? 이 집 두고 갈 데가 어딨어? 형님! 제가 가만 생각해보니 까요. 우리 족발집 열 때, 3분의 1은 제 돈이었던 거 아시죠? 그러니까, 이 집이 꼭 형님 집만은 아니더라구요. 깜빡하구 괜히 쫄았어”라고 말하면서도 눈시울을 붉혔다. 윤여정 또한 “영춘아! 미안혀”라는 말과 함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서로를 바라보며 눈물의 화해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피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더욱 뜨거운 특별한 가족애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시청자들은 “최화정씨 제 2의 연기인생인 듯 싶어요! 연기정말 좋아요!” “발랄하고 얄미운 연기만 하던 최화정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다” 라며 최화정의 연기 변신에 대한 호감을 보였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최화정은 눈물 마를 날이 없다. 최화정의 친아들 옥택연은 자신의 쌍둥이들이 가출했는데도 가족들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낳아준 친엄마도 갖다 버린 쓰레기 같은 놈 새끼들이라서, 그래서 그러느냐”며 서운한 감정을 폭발시키며 눈물을 터뜨렸다. 윤여정은 이 말에 옥택연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음을 깨닫고 충격에 빠졌고 친엄마 최화정은 혼자 아들에 대한 죄책감에 가슴을 치며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았다.

윤여정은 울먹이는 최화정에게 다가와 “그러게 왜, 눈도 못 뜬 아이를 버리고 갔냐. 속으로 낳은 새끼까지 버리고 갔으면 이 악물고 싹 다 잊어버리고 팔자 고치고 잘 먹고 잘 살아야지. 새끼가 보고싶어서 왔겠지. 버리고 간 새끼가 어떻게 크고 있나, 그 집에서 구박은 안 당하고 잘 크고있나 궁금해서 왔겠지”라고 눈물을 머금고 말을 이었다.

윤여정은 “난 우리 동희 데려다 놓고 딱 일주일만 미워하고 그 다음부터는 우리 자식들하고 똑같이 키웠다. 책임도 못질 자식 낳은 부모들이 문제지 그 핏덩이가 무슨 죄가 있나 싶었다. 난 누구 앞에서든 동희를 우리 자식들하고 똑같은 마음으로 키웠다고 말할 수 있는데 미워했던 그 일주일이 목구멍에 걸린다. 잊어보려고 별 짓을 다해도 안 된다”고 고백하며 눈물을 쏟았다. 윤여정의 진심이 담긴 고백과 위로에 최화정은 “제가 죽을 죄를 지었다. 제 자식 제가 못 키우고 형님한테 짐만 지어 드렸다. 너무 죄송하다.”고 대성통곡하며 지난날을 후회했다. 드디어 지난주에 최화정이 옥택연의 출생의 비밀을 시아버지 오현경에 밝혀 다시 파란이 예상된다. 펑퍼짐한 시골 아줌마 차림으로 윤여정에게 “형님, 형님”하며 재롱을 떨면서도 정작 친아들 앞에서는 죄책감에 혼자 슬픔을 삼키는 하영춘에게 과거 최화정의 모습은 찾기 힘들다. 특히 최화정은 최근 끝난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영국 유학파이자 방송에서도 인기인 요리사 안나 역으로 요리솜씨와 패션감각을 자랑했기에 안나에서 영춘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모습에 “36년차 연기 내공”이란 찬사를 듣는다.

최화정은 1979년 TBC 탤런트 공채 21기로 연기자로 데뷔했다. 수많은 작품에서 연기활동을 펼쳤으며, 청량감 있는 목소리로 여러 프로그램에서 방송인으로도 활동했다. 1991년 연극 <리타 길들이기>로 전회매진의 기록을 세웠으며 2008년 17년만에 26세의 리타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드라마 <호텔리어> <김수로> <최고의 사랑> 등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았고 <승승장구>등 토크쇼의 보조진행도 맡았지만 대중들에게는 듣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드는 상큼 발랄한 목소리와 라디오프로 진행자로 뛰어난 재능을 더 인정받는다. 윤여정은 “기분이 우울할 때마다 항상 밝은 목소리에 기분 좋은 말을 해주는 최화정에게 전화를 건다”라고 했다. 그런 태생적인 밝음과 배려심이 54세에도 항상 최화정이 젊게 사는 비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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