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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볼 PM 6:29]김광현, 박경완과 만든 ‘초심’ 그리고 ML

2007년 5월13일 광주. 경기를 준비하던 SK 김광현은 선배가 불쑥 내민 제안에 잠시 머뭇거렸다.

“오늘 사인은 네가 낸다. 던지고 싶은 대로 던져봐.” 뜻밖이었다. 면전에서 들은 얘기지만 농담인지 진담인지 바로 반응하기조차 어려웠다.

김광현은 대선배 박경완과 시선을 나눈 뒤 진심을 확인했다. 그제서야 유감없이 던져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김광현은 안산공고를 졸업하고 2007년 SK에 입단하자마자 전년도 신인왕과 최우수선수(MVP)를 동시석권한 일명 ‘괴물’ 류현진과 비견됐다.

헹가래 타고 높이 날기를 몇 차례, 그러나 이내 땅으로 굴렀다. 개막 이후 6차례 마운드에 오르면서 등판 때마다 류현진과의 간격은 멀어졌다. 첫 승은 아득하기만 했다. 이에 포수 박경완은 김광현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고, 그 중 하나로 김광현에게 스스로 구종과 코스를 선택토록 한 것이다.

김광현은 그날 프로 데뷔 후 첫 승을 거뒀다. 박경완이 ‘멋대로 던져보라’고 한 지시를 그대로 따랐고, 6이닝을 2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승리투수가 됐다.

김광현은 “박경완 선배가 그날 이후 내 공의 장단점을 완전히 파악한 것 같았다. 마운드에서 고개를 흔들 이유도 없었다”고 말했다.

박경완(왼쪽)과 김광현.

누구에게나 ‘등대’ 같은 존재가 있다. LA 다저스 류현진은 한화에 입단하자마자 선배 왼손투수 구대성으로부터 체인지업을 배워 첫 시즌부터 다양한 레퍼토리의 소유자가 됐다. 지금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강의 체인지업을 던지고 있다.

류현진에게 구대성이 있었다면, 김광현에게는 박경완이 있었다. 박경완은 2010년까지 SK 주전포수로 활약한 뒤 부상 등으로 출전 기회가 줄어든 끝에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뒤 2군 감독을 맡고 있다.

김광현은 지난 5일 박경완의 은퇴식을 함께 했다. 배터리라는 이름으로 얇게나마 남아있던 박경완과의 끈이 끊어졌다.

이제는 제대로 홀로서야할 때다. 내친김에 올 시즌을 끝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하겠다고 했다. 포스팅시스템(비공개 입찰제도)을 통해 메이저리그 문턱을 넘으려면, 류현진이 그랬듯 국내리그에서 압도적인 피칭으로 상품성을 키워야 한다.

올해 출발은 꽤 무난한 편이다. 지난 18일 문학 KIA전에서는 양현종과 최고 좌완 대결을 벌여 7이닝 4안타 무실점으로 승리했다.

시즌 막바지에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김광현을 어떻게 평가할지 예측하는 것도 올해 김광현을 보는 중요한 재밋거리다. 그 대목에서 류현진이 또 한번 오버랩될 것이다.

한 편의 시나리오도 써보게 된다. 김광현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는다면 국내에서는 매번 불발된 류현진과의 선발 맞대결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다. 김광현과 류현진의 페넌트레이스 만남은 국내에서는 한 차례도 성사되지 않았다.

2010년 5월23일에는 하늘이 무심했다. 경기를 앞두고 1시간 전부터 내린 비 때문에 맞대결이 성사 직전에 불발됐다. 둘은 악수로 다음 만남을 기약했지만, 다음이라면 이제 미국 무대일 수밖에 없다.

메이저리그는 30팀이나 된다. 김광현이 메이저리그에 진입해 선발투수로 뛴다 해도 소속 리그와 지구에 따라 맞대결 가능성을 가르는 변수가 너무 많다. 그러나 빅리그 선발투수로 안정적으로 뛸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희망적인 시나리오를 써볼 만하다.

박경완과 이룬 첫승 스토리는 김광현에게는 바로 ‘초심’이었다. 김광현은 올해 들어 초심을 자주 더듬는다. 그것만으로도 올 시즌 기대치는 커진다. 초심은 언제나 방심과 나태함을 막는 백신의 효능을 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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