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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 위기의 대통령들

최고 권력자에 대한 대중 시선 변화…‘절대선’ 아닌 실수·무능·비리 주범으로 그려져

SBS 수목극 <쓰리데이즈>에 등장하는 대통령 이동휘(손현주)는 극중 과거 하버드를 수석으로 졸업한 인재로 미국 무기회사의 경제 컨설턴트로 일했다. 대한민국 국가안보관련 예산 편성을 조장하고 국가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조작된 무장공비 침투를 계획한다. 공비 침투로 인명피해가 생긴 이후 사업 파트너 김도진(최원영)이 강대국에 머리를 조아리기 싫으면 대통령이 되라는 말에 그는 대선출마를 결심한다.

이전 같으면 영화든 드라마든 쉽게 등장할 수 없는 설정이다. 그동안 시청자에게 대통령은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이자 어떤 경우에서든 바른 판단을 할 것 같은 절대선으로 인식됐다. 주요 시대극이나 KBS2 <프레지던트> <아이리스> 등에서 묘사됐던 대통령의 모습은 신념과 강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지만 최근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최고권력자들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인간적인 고뇌가 비칠 뿐 아니라 실수와 무능, 나약함이 그대로 노출된다. 경악할 만한 비리나 범죄에도 연루된다. 사극에 등장하는 왕도 마찬가지다.

안방극장에서 위엄을 잃은 최고 권력자를 연기 중인 배우들. MBC 월화극 <기황후>의 왕 타환 역 배우 지창욱
사진 | MBC 제공.

SBS 월화극 <신의 선물-14일>(이하 신의 선물)에 등장하는 대통령 김남준(강신일)은 허수아비에 가깝다. 자신의 측근인 비서실장 이명한(주진모)과 영부인 박지영(예수정)이 자식의 살인혐의를 벗기기 위해 무고한 시민을 이용하는데도 그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주인공 김수현(이보영)이 청와대를 찾아와 모든 사실을 알리자 그는 그동안의 책임을 통감하고 하야를 결심한다.

안방극장에서 위엄을 잃은 최고 권력자를 연기 중인 배우들. <신의 선물-14일>의 김남준 대통령 역 배우 강신일
사진 | SBS 제공.

MBC 월화극 <기황후>에 출연하는 왕 타환(지창욱)은 유약한 인물로 설정됐다. 그는 자신의 왕비 기승냥(하지원)과 신하 백안(김영호)이 권력을 놓고 암투를 벌이는데도 속수무책이다. KBS1 주말극 <정도전>에 등장하는 공민왕(김명수)은 부인인 노국공주의 죽음 이후로 정사를 돌보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 이인임(박영규)의 계략에 의해 시해되고 만다.

안방극장에서 위엄을 잃은 최고 권력자를 연기 중인 배우들. SBS 수목극 <쓰리데이즈>의 이동휘 대통령 역 배우 손현주.
사진 | SBS 제공.

대중문화평론가 충남대 윤석진 교수는 “최근 최고 권력자들이 인간적인 매력을 보이는 것을 넘어서 실수와 비리에 연루되는 모습도 보여주는 것은 현실 정치의 영역에서 최고권력자에 대한 각종 의혹이 해소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단순히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과 비리에 연루되는 것은 다르다”면서 “최고 권력자를 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바뀌면서 드라마에서의 쓰임새도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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