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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밤’ 김기태, “오늘 이겼어야했는데” 깊은 한숨

지난 23일 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 LG는 한창 대구 삼성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LG 김기태 감독은 휴대폰 전원을 눌러 껐다. 세상과 통하는 창을 잠시 닫아두려했다. 김 감독은 전날 한시도 눈을 붙이지 못한 터였다. 사퇴 의사를 표명했고, 구단 수뇌부와 대화에서 입장을 고수하는 과정에서 새벽을 맞았다. 밀려오는 고단함에 잠시 눈을 붙이려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김 감독은 그런 사이 그날 LG 경기 결과를 체크하고 있었다. LG는 3-7로 삼성에 또 패했다.

“이겨야하는데. 또 졌네요” 김 감독은 쓴맛을 다시는 듯했다. 김 감독은 이에 덧붙여 “미안하다”는 말을 습관처럼 반복했다.

김 감독은 배경이 무엇이든 자신의 사퇴로 팀이 분위기 반전을 이루기를 바랐다.

결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팀은 조계현 대행 체제 출범을 놓고 난항을 겪고 있다. LG는 이번 주말이 지나야 방향을 잡고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퇴의 이유를 놓고도 말이 많다. 성적 부진과 프런트에 대한 서운함이 얼마 만큼씩 담겨있든 김 감독은 지난 22일 대구 삼성전을 마지노선으로 삼고 경기에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

선수들 전원 삭발을 하고 나온 경기. 고참 선수들도 시즌 초반 경기수에 따른 팀성적 이상으로 팀내 위기감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시즌 초반 20경기도 치르지 않은 상황에서 선수단 전원이 삭발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김 감독은 경기 전 선수들을 향해 “고맙다”고 했다. 경기 뒤에는 “오늘 패전은 감독 책임”이라고 했다. 한 경기 평가 치고는 지나쳐 보였다. 김 감독은 이미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김 감독은 사령탑으로 많이 달랐다. 선수들과 스킨십은 역대 어느 사령탑보다 유연했으나, 속으로는 대나무처럼 곧았다. ‘김기태 스타일’로 LG를 이끌었다. 현장 수장으로 프라이드에 상처를 받는 일에 대한 심적 반응 또한 다를 수밖에 없었다.

‘고작 몇경기했다고…’라며 갸우뚱 하는 시선이 주류였지만, 김 감독이 체감하는 것과는 또 달랐다.

‘자신 사퇴’를 팀을 살리는 마지막 카드로 여긴 것으로도 보인다. 너무 이른 초반이지만 경기 속에서 팀은 지난해와 달리 손발이 맞지 않고 있었다. 여론은 ‘너무도 서둘러 사퇴했다’고 했지만 그 이전에 너무도 서둘러 LG를 질타하고 있었다. 개막 이후 선발 로테이션이 몇차례 돌기도 전 몰린 벼랑 끝. 김 감독이 보는 최고의 반전카드는 ‘사퇴’였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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