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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길 수 없어…웃음 잃은 예능인들

“5월 행사는 거의 초토화됐죠.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유명 개그맨 매니저의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로 전국이 애도 분위기에 잠겨있는 가운데 웃음을 직업으로 삼는 예능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사고 시점 이후 예능프로그램 촬영과 방송이 모두 멈춘데다 각종 행사들도 모두 취소됐기 때문이다. 특히 5월은 연중 행사의 대목으로 꼽히는 때라 이를 생업으로 삼는 예능인들에겐 특히 타격이 크다.

코미디 프로그램에 주로 출연하는 개그맨들은 당장 생계에 영향을 받는다. 가수나 배우 등 본업을 갖고 있으면서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미는 출연자와 달리 개그맨들에겐 코미디 프로그램과 행사가 주요 수입원이다. 아무리 녹화를 많이 했더라도 방송이 되지 않으면 출연료를 받을 수 없다.

SBS 공개 코미디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한 장면. 사진 SBS

익명을 요구한 한 개그맨 매니저는 “천안함 사건 당시는 6주 동안 방송이 나가지 않았던데다 행사도 대거 취소되면서 상당수 개그맨들이 아르바이트 전선에 내몰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4월에는 벚꽃이나 봄관련 축제, 5월에는 대학교 축제가 많기 때문에 이 때 얼마나 활동하느냐에 따라 연간 매출이 좌우된다”면서 “수십개 잡혀 있던 일정 중 단 2개만 남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경제적인 이유도 힘들지만 웃음을 직업으로 하는 만큼 심정적인 부담감도 크다. 국가전체가 애도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웃음을 찾아야한다는 점 때문이다. 24일 KBS <개그콘서트> 회의에 참석했던 한 개그맨은 “아이디어 회의를 위해 모였지만 모두가 표정이 어두웠다”면서 “일정 기간 지나면 방송을 해야하기 때문에 코너를 짜고 녹화를 해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고통스럽다”고 털어놨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과 tvN <코미디 빅리그> 제작 관계자들도 비슷한 고민을 호소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들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지상파 3사는 이달 중 새롭게 선보일 ‘신상’ 예능프로그램을 야심차게 준비해왔으나 방송일정이 무기한 미뤄지면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27일로 예정됐던 첫 방송이 불투명해진 SBS <일요일이 좋다-룸메이트> 제작진은 첫 회 방송분량을 준비해놓고 편성을 기다리고 있으며, SBS <도시의 법칙> 제작진과 출연진은 지난 22일 귀국한 뒤 조용히 해산했다. MBC <코미디의 길>도 첫 방송을 앞두고 제작회의만 하고 있다.

<룸메이트> 연출자 박상혁PD는 “11명이 모여 있는 <쉐어 하우스>도 언제 방송이 재개될 지 알 수 없어 현재 촬영을 멈춘 상태”라며 “그저 구조가 무사히 진행되길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7일 첫 방송이 예정된 SBS ‘일요일이 좋다-룸메이트’ 출연진. 사진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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