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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아마도 이자람 밴드 “고 천상병 시인의 작품에 곡 입혔죠”

‘아마도 이자람 밴드’는 실수로 지어진 이름이다. 2005년 결성된 밴드는 첫 공연 때 밴드 이름이 뭐냐는 질문에 “아마도 ‘이자람 밴드’가 되지 않을까요?”라고 대답했다. 잘못 알아들은 공연 스태프가 포스터에 적은 ‘아마도 이자람 밴드’는 그대로 밴드 이름이 되었다. 딱히 마음에 든 건 아니었지만 고치는 게 귀찮았다. 나쁘게 말하면 게으르고, 좋게 말하면 낙천적이다. 다섯명으로 구성된 밴드는 지난 17일 고인이 된 천상병 시인의 작품에 소리를 더한 곡들로 만든 앨범 <크레이지 배가본드>를 발매했다. 무엇이 게으르고 낙천적인 이 밴드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리더 이자람은 천상병 시인의 시에 대해 호방하다고 표현했다. 돈 때문에 사람이 죽고 사는 시대에 정반대의 삶을 살았고, 그 삶을 시에 그대로 옮겼다는 것이다. 밴드는 천 시인의 작품 ‘나의 가난은’의 언어가 주는 울림에 끌렸다고 한다.

천상병 시인은 1967년 중앙정보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 독재를 합리화하기 위해 조작한 간첩단 사건인 ‘동백림 사건’에 연루됐다 3개월간 옥살이를 한 뒤 풀려났다. ‘나의 가난은’은 시인이 고문 후유증과 음주벽으로 인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던 와중에 나온 작품이다. 시인은 한 잔의 커피와 갑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남은 버스비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밴드는 이 낙천적인 시구를 헐렁한 네박자 행진곡풍 리듬에 실어 호방하게 노래했다. 흥겨운 곡이지만 노래를 부르며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고 이자람은 털어놓았다.

“노래라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하던 시대가 지나온 지 너무 오래됐어요. 제가 대학에서 듣고 즐겼던 훌륭한 노래들은 어떤 역할을 해준 것 같거든요. 노래가 사람 사이에서 존재하고 불리워지고 합창되던 것들이 디지털화되면서 달라졌죠. 그럼 우리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하고 밴드활동을 해야하는 것인가 고민을 많이 하게 됐어요.”

앨범작업은 더뎠다. 밴드는 앞서 2010년 ‘천상병 예술제’에 참여해 시인의 미발표작 ‘달빛’을 비롯한 시들을 가사로 한 창작곡을 선보이며 이번 앨범을 구상하게 됐다. 하지만 2005년 데뷔한 지 5년이 지나고도 정규앨범 하나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먼저 떠올랐다. 밴드의 첫 정규앨범 <데뷰>는 ‘천상병 예술제’ 참여 이후 3년이 지난 2013년 4월에서야 빛을 봤다.

오랜 침묵에는 이유가 있었다. 좋아서 하는 밴드를 유지하기 위해 멤버들은 각자의 일터에서 최선을 다했다. 이자람은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의 희곡을 판소리극으로 재해석한 ‘사천가’와 ‘억척가’를 직접 감독하고 연기하며 주목받았다. ‘사천가’로 2010년 폴란드 콘탁국제연극제에서 최고 여배우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사실 이자람은 10대 시절 최연소 춘향가 완창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던 촉망받는 소리꾼이었다.

기타 연주자 이민기는 또다른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활동으로 한창 얼굴을 알렸다. 각각 드럼과 퍼커션을 맡고 있는 김홍식과 이향하는 국악 타악기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앨범작업을 병행했다.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는 베이스 연주자 강병성은 “아직도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며 웃었다.

밀린 숙제같았던 정규 1집이 나오고 밴드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천상병 시인의 작품에 곡을 붙이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멤버들은 각자 애착이 가는 곡을 언급하며 이번 앨범작업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았다. ‘크레이지 배가본드’를 꼽은 강병성은 “20대를 모던록 장르와 함께 보냈다”며 “그 시절 나의 음악이 정리되어 있는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이민기는 ‘피리’를 골랐다. 그는 “시만 보면 귀여운 느낌인데 곡은 슬프게 나왔다”며 “시어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밴드는 이번 앨범에 대해 정규 1집과 언젠가 나올 정규 2집을 잇는 다리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2집은 어떤 색깔의 노래들로 채워질까. 이자람은 조심스럽게 힌트를 줬다.

“천상병 시인이 작품에서 쓰는 언어들은 이해하기 쉽지만 전혀 가볍지 않아요. 그래서 ‘나의 가난은’을 호방하다고 말했고요. 날아가버리는 노랫말말고 언어들의 무게가 달린 앨범을 만들고 싶어요. 천상병 시인의 거대한 노랫말 없이 어떤 앨범을 만들어야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네요. 지금같은 속도면 2018년에나 나오지 않을까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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