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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사퇴’ LG, ‘인화의 아이콘’을 잃다

말하자면 김기태 감독은 LG 그룹이 최고 가치로 여기는 ‘인화의 아이콘’ 같았다.

김 감독이 2011년말 중도 퇴임한 박종훈 전임 감독에 이어 LG 지휘봉을 잡은 뒤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발빠르게 수습한 것도 그만의 인간적 화합 능력 덕분이었다.

김 감독은 LG 유니폼을 입은 뒤 항상 선수들 앞에서 ‘우리’라는 말로 얘기를 시작했다. 간혹 ‘너네’라는 표현 탓에 알게 모르게 사령탑과 거리를 느끼던 LG 선수들에게는 분명 다른 방식의 접근이었다. 김 감독은 “다수가 바뀔 필요는 없다.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가겠다”며 선수단에 녹아들었다.

한 고참선수는 김 감독을 두고 “함께 맞담배를 피울 수도 있을 것처럼 거리감이 없지만 선수 누구도 그의 말을 거역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게 김 감독의 ‘리더십’이고, 매시즌 위기를 넘은 동력이었다.

김 감독에게 사람은 힘이었다. 그러나 사람 때문에 아프기도 했다.

차명석 투수코치가 지난 시즌 뒤 LG를 떠날 때도 그랬다. 차 코치는 LG 유니폼을 벗고 방송 해설위원으로 변신해 있다. 시즌 중 신장 종양 수술을 받았던 이력 때문에 3군 총괄로 한 시즌 정도를 보내려 했으나 구단과 재계약이 순조롭지 않았다. 차 코치는 애리조나 캠프에서 1차 전지훈련 중이던 김 감독에게 퇴임 결심을 알렸고, 뒤늦게 내용을 안 김 감독은 구단에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시즌 뒤 노찬엽 코치와 서용빈 코치 등 LG 출신 스태프가 팀을 떠나는 과정에서도 김 감독은 적잖이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어쩌면 2014시즌 출발은 그래서 조금 불안했다. 떠난 사람도 아팠지만, 떠나보낸 격이 된 김 감독도 마음의 흠집을 안고 시즌을 시작했다.

조기 재계약 또한 도마에 오를 사안이었다. 2014시즌은 김 감독의 3년 계약 마지막 해였다. 2013시즌 LG를 11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으며 조기 재계약을 기대할 만했다. 9구단 NC 또한 김경문 감독과 조기 재계약을 맺으며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LG는 공식대로 움직였다. 재계약은 미뤄놨다.

감독의 계약 마지막 해는 선수의 자유계약선수(FA) 자격 획득 직전 시즌과 다름 없다. 김 감독은 혹여라도 재계약이 절실해 보이는 모습으로 시즌을 치르고 싶지 않았다. 김 감독은 누구보다 ‘자존심’을 소중히 여긴다.

김 감독에게 올해 초반 성적은 그래서 더 아팠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상태로는 시즌 중반 이내에 반등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어쩌면 올 시즌은 스타트가 너무 중요했다.

김 감독이 사퇴 의사를 밝히며 “내가 떠나면 반전을 이룰 것”이라고 구단 관계자에게 여러 차례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의 사퇴를, 팀을 위한 또 하나의 ‘반격 카드’로 여긴 것으로도 보인다.

김 감독은 지난 23일 밤 대구구장에서 LG-삼성전이 열리던 중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스마트폰 전원 버튼을 눌러 세상과 잠시라도 단절하려 했지만 이내 경기 결과가 다시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겨야했는데. 또 졌다”면서 곧바로 꺼낸 말은 “미안하다”였다. 김 감독의 미안함은 선수와 코칭스태프, 그리고 주변 여러 사람들을 두루 향해 있었다.

LG 구단은 김 감독을 이해하고 최대한 밀어줬다고 했지만, 김 감독의 특장점인 ‘인화’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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