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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9주년 특별인터뷰] 손흥민 “첫 월드컵 안 두렵다” 이청용 “지성형 몫은 내가”

축구 국가대표 이청용(26·볼턴)과 손흥민(22·레버쿠젠). 한 달도 남지 않은 브라질월드컵에서 첫 원정 8강을 이끌 ‘양 날개’가 지난 14일 파주트레이닝센터에서 가진 ‘스포츠경향’ 창간 9주년 대담에서 의기투합했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해하던 둘은 손흥민이 동북고 시절부터 이청용의 팬이었다고 말하자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이야기꽃을 피운 둘은 이내 월드컵을 향한 각오로 불타올랐다.

이청용(이하 이): 이번이 흥민이한테는 첫 월드컵이지? 중요한 대회라서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 독일에서 넣은 만큼만 골을 넣었으면 좋겠다.

손흥민(이하 손): 그럼 저 월드컵 득점왕 되는 거에요?(웃음) 저 이번 시즌도 두 자릿수 득점 올렸습니다. 아마 월드컵 한 대회에서 10골 넣은 선수는 없죠?

이: 농담이야 농담. 이적 첫 해부터 잘했으니 기대가 큰 거지. 나도 올해는 부상 없이 잘 넘겼고, 월드컵에 또 나갈 수 있어 기대가 커.

손: 형이 부상에서 회복해 건강하게 돌아온 게 정말 다행이에요. 전 지금도 ‘애기’지만 더 어릴 때부터 형이 뛰는 걸 보면서 자랐어요. 저 동북고 나와서 ‘서울 볼보이’ 출신이라고요. (당시 FC서울의 유스팀인 동북고 축구부들은 서울의 홈 경기 때 볼보이로 투입됐다.)

이: 뻥치고 있네.(웃음)

손: 우와, 형 옛날 성격 나오네. 진짜예요. 형이랑 저랑 뛰는 자리가 같잖아요. 동북고 시절 선생님한테 형한테 좀 배울 수 없냐고 부탁까지 했다니까요.

이: 아. 그랬구나. 그런데 흥민이 너랑 내가 이번 월드컵에서 나란히 가장 큰 기대를 모으는 공격수로 뽑혔더라. 기분이 어때?

손: 저 원래 그런 거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잖아요. 또 선수라면 부담도 즐길 줄 알아야죠. 다른 분들의 기대만큼 잘 준비하는 게 선수의 몫인 것 같아요. 형은 어때요?

이: 나도 사실 책임감만 느끼는 수준이야. 지난 남아공월드컵에선 (박)지성 형한테 의지를 많이 했잖아. 이번에는 내가 그 몫을 해야겠다 싶은 거지.

손: 아, 그 마음은 알 것 같아요. 지성 형과는 대표팀에서 많은 시간은 보내지 않았지만, 그 형의 영향력은 정말 실감했거든요.(손흥민은 박지성의 국가대표 은퇴 무대인 2011 카타르아시안컵에서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다.) 솔직히 지성 형의 발 끝도 못 따라가는 실력이니 정말 최선을 다해봐야죠.

파주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이: 그래. 그런 마음이 중요하지. 우리가 월드컵에서 이기려면 측면에서 잘 풀어줘야 하잖아. 월드컵 예선때나 A매치에서 했던 것처럼만 하자. 지금까지 했던대로 경기를 하면 상대도 힘들 거야. 난 흥민이 너 믿는다.

손: 와, 너무 부담 주신다. 참 형 생일이 월드컵이 한창인 7월2일이잖아요. 그날이 16강전 다음날인 건 아세요? 사실 제 생일도 7월 8일인데, 8강전이 끝나고 나서더라고요.

이: 내 생일이 그 때였나? 평소에 생일을 챙기는 편이 아니거든. 그래도 생일을 월드컵 현장에서 맞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은 좋네.

손: 그렇죠? 저도 생일 신경 안 쓰는 데 이번엔 좀 다른 것 같아요.(웃음)

이: 흥민이 넌 월드컵에 긴장은 안 되니? 난 사실 월드컵에 처음 나갔을 때 아무 것도 안보였어. 처음 5~10분간은 바로 앞만 보이더라.

손: 알죠! 그 느낌! 저 올해 유럽챔피언스리그에 처음 나가서 비슷한 경험을 했거든요. 첫 경기 상대가 하필이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는데 올드 트래퍼드에 빨간 유니폼만 가득한 거에요. TV로 볼 때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진짜 앞이 안 보이고 공도 놓치고, 혼자 정신없이 뛰었죠. 월드컵은 더 큰 무대라 어떻게 적응할 지 걱정은 되요.

이: 그치. 그래도 초반 5~10분만 잘 넘기면 될 거야. 넌 큰 무대를 한 번 경험하기도 했잖아.

손: 에헴. 저 이래뵈도 분데스리가 4년차입니다. 잘 적응해야죠.

이: 독일 축구는 어때? 거기가 관중은 제일 많다고 하잖아. 사실 난 영국에서만 뛰었으니 궁금해.

손: 여기서 뛰면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잘 안들어요. 관중은 언제나 가득하고, 분위기도 좋아요.

이: 영국 팀에서 관심있다는 이적설이 나왔는데 혹시 생각은 있어?

손: 아뇨. 레버쿠젠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잖아요. 올해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러다보니 팀원끼리는 더욱 단단해졌어요. 당분간 팀을 옮길 생각은 없어요.

이: 좀 아쉽긴 하다. 흥민이 넌 영국에서도 잘 뛸 것 같거든. 영국에서 뛰는 선수들끼리는 원정 경기 때 꼭 얼굴이라고 보고, 밥도 자주 같이 먹는경우가 많으니까. 서로 힘을 주고 받는 관계지. 아, 흥민이는 영국에 안 올테니 밥은 안 사줘도 되겠다(웃음).

손: 아 진짜! 독일에서 뛰는 형들하고도 같이 밥을 먹자고는 말했는데, 서로 시간대가 잘 맞지 않아 정작 자리는 못 만들었어요. 왠지 부럽네요.

이: 흥민아. 넌 월드컵에 나간다니까 팀 동료들이 뭐라고 해?

손: 친구인 골키퍼 레노가 한국을 응원할 테니 제 대표팀 유니폼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이 친구가 사실 독일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도 대표팀에는 안 뽑혔거든요. 형은 어때요?

이: 우리 팀에는 월드컵 나가는 선수가 나 밖에 없잖아. 다들 자기 나라보다 한국을 응원해주겠다고 하더라.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낮다고 무시하는 유럽 사람들 앞에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으니 최선을 다해야지.

손: 우리끼리 잘 준비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어요? 전 사실 2002 한·일월드컵을 보면서 자란 월드컵 키드잖아요. 그래서 제가 월드컵에 뛴다는 사실이 잘 실감이 안 나요.

이: 나도 예전에는 그랬지. 그래도 난 1998년 프랑스월드컵이 기억에 가장 남아. 그때 크게 지는 걸 보면서 내가 크면 강호들을 무찌르겠다고 다짐했었거든. 근데 형들이 이미 2002년에 해버렸네(웃음). 이젠 진짜 우승이라도 해야 하나?

손: 자꾸 우승 얘기하니까 우승 팀이 어딘지 궁금하네요. 형은 어느 팀이 우승할 것 같아요?

이: 우승 후보를 꼽는 건 어렵지. 브라질이 아무래도 홈팀이고 워낙 센 팀이니까 우승하지 않겠어?

손: 저도 브라질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독일도 만만치 않을 걸요?

이: 뭐야, 독일에서 축구를 배웠다고 그러는 거야?

손: 그게 아니라 아직 시차 적응이 안돼 숙소에서 새벽에 일어나 독일하고 폴란드 평가전 경기를 봤거든요. 독일이 주전을 다 빼고도 0-0으로 비기더라고요. 독일이야 언제나 센 팀이니 최소 4강이나 결승은 가지 않겠어요?

이: 그렇게 말하면 난 스페인! 항상 해보고 싶은 축구를 하잖아. 지난 대회 우승팀이기도 하고.

손: 에이~, 그렇게 말하면 월드컵에 나온 팀은 다 우승 후보네요. 그럼 전 이번 대회에 나오는 32개 팀 모두를 우승 후보로 지목할래요. 그럼 우리도 우승 후보인 거죠?

이: 진짜 우승했으면 좋겠다. 우리 감독님은 한국이 결승전에만 가면 보러오겠다고 약속했는데….

손: 근데 진짜 결승에 갈 수 있을까요?

이: 믿어야지! 아, 너무 나갔다. 일단 16강부터 가고 생각해야지(웃음). 흥민아, 우리 둘이 힘내서 16강부터 쭉쭉 올라가자. 우리가 일 한 번 내야지!

손: 전 형만 따라갈게요. 믿습니다. 믿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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