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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볼 PM 6:29]명필은 붓을 가린다

처음에는 그런 방망이로 어떻게 치나 싶었다. 몸 생김새 자체가 다른 외국인 선수에게나 맞는 물건인줄 알았다.

올해 두산 더그아웃에서는 외국인 타자 호르헤 칸투의 방망이가 자주 주목받았다. 칸투가 기대 만큼 호성적을 내고 있을뿐 아니라 국내 타자들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방망이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칸투의 방망이는 공을 때리는 ‘스윗 스팟’(Sweet Spot) 부분이 아주 넓다. 특정 ‘스윗 스팟’에 무게중심이 집중돼 있는 보통 방망이와 달리 무게중심이 아주 넓게 퍼져 있다. 헤드 한 부분에 중심이 쏠려 있는 방망이보다 헤드 스피드를 내는 데는 어려움이 따를 수도 있다.

두산 홍성흔이 평소 쓰던 방망이(왼쪽 끝)와 칸투에게 선물받은 스윗 스팟이 넓은 방망이(왼쪽에서 2번째). 오른쪽은 롯데 히메네스가 쓰는 방망이들.

골프 드라이버는 헤드 부피가 대략 400㏄부터 460㏄짜리까지 여러가지가 있는데, 이에 비교해보면 칸투의 방망이는 헤드도 크고 ‘스윗 스팟’도 넓은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홍성흔이 올해 자주 쓰는 ‘불방망이’가 바로 칸투의 것이다. 2일 현재 타율 3할3푼9리, 12홈런 39타점을 기록중인 홍성흔은 칸투의 방망이를 애용하고 있다. 칸투는 자신의 방망이에 태극기를 그려 몇몇 선수에게 선물했는데 홍성흔은 심심찮게 그 방망이를 들고 나와 홈런을 쏘아댔다.

홍성흔 앞에 도깨비 방망이가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포수 마스크를 놓은 뒤로 지명타자로 야구 인생의 승부를 건 홍성흔은 방망이를 여간 애지중지하는 게 아니다. 당일 쓰는 방망이라면 경기 전 닦고 조이고 기름치듯, 헤드 부분에 광을 내고 그립 부분을 손질한다. 칸투의 방망이 역시 여러 번 써본 뒤 방망이의 특장점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홍성흔은 처음에는 “스윗 스팟의 무게 중심 배분이 달라 적응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는데 이제는 반응이 달라졌다. “쓰다 보니 괜찮다”며 씨익 웃었다.

그러고 보면 ‘명필이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옛 말이다. 프로야구에서는 더욱 통하지 않는다.

롱런하는 선수일수록 장비를 가리고 또 가려 쓴다. 자신에게 최적의 것을 찾아 쓰다보니 장비에 대한 애착도 강하다.

LG 박용택의 장비 사랑도 남다르다. 방망이를 한번 들 때면 결혼식장 예복 고르듯 한다. 스타일부터 색채까지 신경을 쓴다. 나무의 속살이 그대로 느껴지는 일명 ‘누드 방망이’를 사용하는가 하면, 허용 범위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컬러를 주문 제작해 쓴다.

뿐만 아니다.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을 쓰기 위해 경기 전 나름의 수작업을 한다. 자기 손에 맞게 그립을 칼로 깎는 장면은 아주 흔하다. 롯데 외국인 타자 롯데 루이스 히메네스는 방망이 그립 끝을 볼륨있게 감고 경기 나선다.

야수들이 글러브 다루는 것도 마찬가지다. 유지현 LG 수비코치는 선수들에게 “글러브를 애인 다루듯 하라”고 말한다. 선수 시절 프로야구 간판 유격수였던 유 코치는 경기를 준비할 때면 그날 쓰는 글러브를 도자기처럼 곱게 다뤘다. 곳곳의 먼지를 털어내고, 습한 부분이 있다면 햇볕에 말려 손질했다.

야구는 장비가 다채로운 종목이다. 좋은 선수라면 장비도 잘 가려 쓸줄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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