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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 끝!’으로 뜬 조윤호 “한달 40만원 번적도…광고계 대세? 늘 겸손해야죠”

인생이 야구라면 9회말 역전 만루홈런이 이런 모습일까.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정말 아무도 모르던 개그맨이었다. 하지만 개그맨의 뜻을 접으려는 순간 찾아온 기회는 그를 광고계의 대박스타로 만들었다. “빡! 끝!” 어쩌면 KBS2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역사상 가장 짧은 유행어로 그는 보란 듯이 일어섰다. 개그맨 조윤호(36)의 이야기다. 갑자기 얻은 인기에 조금은 어리둥절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공(功)을 동료들에게 돌렸다. 인터뷰는 경향신문 팟캐스트 <연예는 박하수다>에서 진행됐다.

2007년 KBS 공채 22기 개그맨으로 데뷔한 그의 동기들 면모는 화려하다. 김준현, 김원효, 양상국, 허경환, 박지선, 박성광, 송준근 등 현재 <개콘>의 주류인 이들이 총망라됐다. 그의 순서는 어쩌면 제일 마지막에 찾아왔다. 하지만 누구보다 불꽃은 화려하다. 톱스타들만 찍는다는 통신 광고에 정장, 가전, 의류, 학원, 라면, 게임, 섬유유연제 등 올해 만해도 10개에 달한다.

개그맨 조윤호가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처음 코너를 짤 때만 해도 방송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작은 행사를 할 때에도 코너 동료들과 함께 가고 싶은데 자꾸 저만 불려가는 것 같아 미안해요. 그래서 밥을 많이 사고 있어요. 부추비빔밥을 자주 사요.”

그는 처음 ‘깐죽거리 잔혹사’ 코너에서 늘어진 흐름에 긴장감을 주는 ‘등퇴장(등장했다 퇴장하는)’ 역할이었다. 류정남, 이성동 등 후배들이 짜온 틀에 예전 안일권 등과 함께 짰던 ‘도장깨기’ 허당 캐릭터를 접목했다. 원래는 “네가 이쪽을 공격하면 나는 막고 이렇게 ‘빡’하고 치면 넌 ‘끝’이야”하는 긴 대사였지만 회의 끝에 “빡!” “끝!” 등의 대사로 간결해졌다.

개그맨 조윤호가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동료들 뿐 아니라 <개콘> 개그맨 전체가 다 기뻐해주니 정말 고마워요. 얼마 전엔 (송)영길이 결혼식에 갔는데 어머님이 제 손을 잡으시면서 ‘영길이가 윤호 선배 잘 된 게 너무 좋다고 집에서 말했다’고 해주시더라고요. 팀원들도 혼자 광고 찍는 게 미안할 땐 ‘나가서 더 코너를 알리고 오라’고 응원해줘요.”

그는 원래 꿈은 가수였던 연예인 지망생이었다. 안양예고 재학시절 2년 후배인 가수 진주의 권유로 가수 연습생의 길로 들어섰고 실제 2002년 아이돌그룹 ‘이야말로’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활동은 시원찮았고, 그는 미용업계 진출을 노리던 중 학교선배인 개그맨 권재관의 권유로 2005년 KBS 개그맨 시험을 봤다.

개그맨 조윤호가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원래 재관선배와는 학교 때 ‘숨만 쉬어도’ 주변을 다 웃길 정도로 유명했어요. 시험을 보러 갔는데 극단 연습생 출신이 아닌 저희 모습에 심사위원들도 신선함을 느끼셨어요. 하지만 요령이 없었죠. 2차 때 붙었던 개그를 3차 때 또 했거든요. 그렇게 다시 낙방했어요.”

하지만 그의 활약을 주의깊게 본 <폭소클럽> 이영진PD의 제안으로 방송을 시작해 2년 후에 합격의 영예도 안았다. 하지만 개그맨이 됐다고 해서 금방 형편이 나아지는 게 아니었다. 8년 간의 지긋지긋한 무명생활이 이어졌다.

개그맨 조윤호가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연습생 시절에는 혼자 한 달 40만원 출연료를 받고도 살았거든요. 하지만 결혼도 하고 가장이 되니까 그러면 안 되겠더라고요. 많은 코너를 했지만 인지도가 오르지 않았어요.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휴대폰 매장에서 판매를 하는 친구에게 ‘네 밑으로 들어가면 얼마 줄래?’라고 의중을 떠보기도 했었어요.”

그는 개그맨으로서 딱히 특이한 얼굴이거나, 체형이지도 않다. 그리고 성대모사나 개인기에 뛰어난 것도, 아이디어가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믿는 것이라곤 갈고 닦은 춤솜씨와 정극을 기반으로 한 연기력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려 이제야 개그맨 생활 햇볕을 본 그였지만 시선은 항상 음지에 가있었다.

개그맨 조윤호가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아직도 생활고에 어려움을 겪는 개그맨들이 많아요. 저만 이렇게 주목을 받게 되서 미안해요. 하지만 그렇게 궂은일을 하는 이들이 있기에 <개콘>이 재미가 있습니다.”

요즘은 ‘헝그리 정신’을 들먹이는 일이 많이 낯설어졌다. 그만큼 절박함을 갖고 꿈을 향해 달리는 이들도 줄었다는 증거다. 하지만 조윤호에겐 절박함이 있었고 그만큼 겸손했다. 아직도 반지하방에서 미래의 스타를 꿈꾸는 개그지망생들에게 그의 존재는 이제 ‘희망’의 다른 이름이 됐다.

☞[스포츠경향 팟캐스트] 연예는 박하수다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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