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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독백] ‘명량’ 최민식 “흥행에 상관없이 현충사에 인사드리러 가겠다”

[스타독백] ‘명량’ 최민식 “흥행에 상관없이 현충사에 인사드리러 가고 싶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2010)에서 잔학무도한 살인마 장경철 역을 맡았을 때, 최민식(52)은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검거·취조한 형사를 만났다. 20명을 살해한 유영철에게서 장경철의 단서를 찾아내 명확하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세계>(2013)에서 냉철한 경찰청 간부 강과장을 맡았을 때도 그가 보여주려는 것은 명쾌했다. “건물 철거할 때 확 끼치는 시멘트 냄새 같은 영화. 남자들의 욕망이 들끓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시멘트 바닥 같은 느낌을 내고 싶었다”고 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그런데 최민식이 맡은 <명량>의 이순신 장군 여전히 숙제 같은 존재다. 잡힐듯 잡히지 않는다. 그는 이순신 장군에게 “딱 10분 만 내달라”고 무릎꿇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숙제 같은 존재이기 때문인지 최근 스포츠경향과 인터뷰로 만난 최민식은 여전히 이순신을 떠나보내지 못한 듯 보였다. 인터뷰 중 이순신에 대해 말하다 답답한 듯 담배를 물었지만, 입에 물고 있는 시간보다 손에 들고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최민식은 이순신을 만나면 도대체 어떤 것을 묻고 싶을까. 최민식의 말을 들어봤다.

“인터뷰 하면서 영화에 대해 반성문도 쓰고 감상문도 정리하게 됩니다.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작업이죠. 지금은 수군통제사 제대 하고 예비군 신분으로 나와있는 셈이에요(웃음). 매번 영화를 찍을 때마다, 다른 의미에서의 전쟁을 치르는 느낌이 듭니다. <명량>은 정말 징글징글했어요. 육체적 정신적으로 둘 다요. 해전 장면은 온 사방팔방이 CG(컴퓨터그래픽)이잖아요. 블루매트 깔아놓고 하는데 어떻게 그림이 나올지 모르고 찍었죠.

이순신이 처한 상황은 뭐랄까. 화산 대폭발을 앞두고 마그마가 끓고 있고 산이 덜덜덜 떨리는, 그러니까 대폭발의 전야 같은 거에요.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을까. 장수지만 아들로서 어머니 임종도 못 지키고, 부하들은 승산 없는 싸움을 못 하겠고 아우성인데, 거기서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으니 속이 곯아 문드러졌겠죠. 지휘관으로서 6년간 생사고락을 함께 한 부하의 목을 단칼에 벨 때 심정은 어땠을까요. 인간적인 회한은 왜 없겠어요.

전쟁에서 이겼지만 중상모략으로 고문당하고 백의종군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목숨걸고 전쟁에 나가잖아요. 사실 이게 사람인가, 옥황상제가 내려온 것 아니냐 싶습니다. 왕 앞에서 충성을 다짐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런데 이순신은 실제로 실천에 옮기잖아요. 이런 상황과 인물을 표현해야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절망적이었겠어요. 난 그저 흉내낼 뿐이죠. 미치게 답답했어요. 이순신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어 이용하는데, 최민식은 술과 대화로 잠시 잊을 뿐이거든요. 난 그분에 비하면 삼류니까.

만날 수 있다면 딱 10분만 시간 내달라고 하고 싶어요. 그리고 왜 싸우셨냐고, 그런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전쟁에 임하셨냐고 묻고 싶습니다. 그분의 행동이 고귀하기 때문에, ‘난 배우로서 창작해서 연기만 하면 돼’라는 자유로움 빼앗아버렸어요. 진짜는 어땠을까 하는 강박에 사로잡히게 만들었습니다. 명량대첩을 담은 필름이 있어요, 사진이 있어요. 그저 그분이 쓴 <난중일기> 뿐인데 글씨 밖에 없잖아요. 타임머신이 있으면 ‘달라’빚을 내서라도 타고 싶은 심정이에요. 그분에게 맞을까봐 (동상이 서있는) 광화문으로는 안 다녀요(웃음). 오늘 인터뷰 장소(삼청동) 올 때도 돌아왔어요. 내가 왜 이러지 싶죠.

<명량>이라는 영화에 대해 현실과 결부한 해석이 많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현실이 답답하다는 거겠죠. 반대로 지나친 애국주의에 기댄 영화라는 평가도 있어요. 전 어느 한쪽도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상업영화를 통해서 애국·희생·충성 같이 잊고 있었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된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난 <명량>을 찍으면서 한 인격체로서 말할 수 없는 초라함을 느꼈어요. 위대한 분을 연기한다는데 대한 현실과의 괴리감 때문이죠. 너무 괴로웠지만 그만큼 의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영화 개봉되면 흥행 결과와 상관없이 현충사에 인사드리러 갈겁니다. 너무 감사했다고요. 그때 쯤엔 내가 궁금했던 해답을 들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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