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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먹이사슬 ‘천적의 세계’

류현진(27·LA 다저스)이 엉덩이 근육 부상 복귀전이었던 지난 1일 샌디에이고전에서 7이닝 1실점의 완벽투로 시즌 14승째를 따냈다.

다저스 돈 매팅리 감독이 로스터 조정의 부담을 안고서도 류현진에게 그 경기를 맡긴 것은 류현진이 샌디에이고의 ‘천적’임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류현진은 샌디에이고에 무척 강했다. 지난 시즌 샌디에이고를 상대로 1승0패, 방어율 1.42를 기록한 데 이어 올 시즌에는 4경기에 나와 3승0패, 방어율 0.69로 철저하게 타선을 봉쇄했다. 샌디에이고의 버드 블랙 감독은 경기 후 “류현진은 완벽한 투수”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특정 팀이나 특정 상대에 무척 강한 것을 두고 ‘천적’이라 부른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네메시스’(천벌)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류현진만 만나면 작아지는 팀은 샌디에이고뿐이 아니다. 같은 LA 지역을 연고로 하는 에인절스는 류현진만 만나면 꼼짝 못했다. 류현진은 데뷔 후 에인절스전에 2차례 등판해 2승0패, 방어율 0.00을 기록했다. 16이닝 동안 단 1점도 내주지 않았다.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데뷔 첫 완봉승 상대가 에인절스였다.

류현진은 이 밖에도 피츠버그를 상대로 3승0패, 방어율 2.79로 무척 강했고, 동부 지역 팀에 전반적인 약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뉴욕 메츠에는 2승0패, 방어율 1.80으로 강한 모습을 보였다. 내셔널리그 강팀 중 하나인 세인트루이스를 상대로 1승1패를 거뒀지만 상대 방어율은 1.93으로 나쁘지 않았다. 특히 정규시즌 성적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에서 보여준 7이닝 3안타 무실점 호투는 세인트루이스를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야구는 ‘멘털’이 강조되는 스포츠다. 경기 전 안고 가는 자신감은 실제 경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추신수를 천적으로 여기는 투수들도 있다. 추신수는 15타석 이상 상대한 투수 중 브론슨 아로요(애리조나)와 맥스 슈어저(디트로이트)를 상대로 타율 5할7푼1리를 기록했다. 토론토의 마크 벌리에게도 4할1푼7리로 강했다. 추신수가 가장 많은 홈런(4개)을 빼앗은 투수는 역시 아로요다.

류현진이 천적으로 생각하는 타자들도 존재한다. 10타석 이상 상대한 타자 중 프레디 프리먼(애틀랜타)에게 피안타율 6할2푼5리로 많이 맞았다. 찰리 블랙먼(콜로라도·0.500), 안드레스 토레스(샌프란시스코·0.455) 등이 뒤를 잇는다. 그래도 홈런을 많이 허용하지는 않았다. 한 타자에게 맞은 홈런은 2개가 최다다. 제이 브루스(신시내티)와 체이스 어틀리(필라델피아)가 전부다.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텍사스)는 아주 독특한 천적을 만났다. 뉴욕 양키스의 브렛 가드너와 겨우 12타석을 만났는데, 11타수 5안타를 허용했다. 피안타율 0.455도 천적으로 충분한데, 안타 5개 중 4개가 홈런이었다. 다르빗슈가 “가드너라는 뛰어난 타자를 낳으신 가드너의 부모님이 원망스럽다”고 농담을 했을 정도다.

한국 프로야구에도 천적들이 존재한다. 두산의 더스틴 니퍼트는 데뷔 후 삼성을 상대로 18경기에 등판해 13승1패, 방어율 2.37을 기록 중이다. 올 시즌에는 6경기에 나와 5승0패다. 삼성 박석민은 니퍼트에게 올 시즌 1할6푼7리로 꽁꽁 묶였다. 그런데 니퍼트에게도 천적이 있다. 시즌 도중 떠난 SK 루크 스캇이다. 그는 메이저리그 때도 니퍼트에게 강했고, 올 시즌 3타수 2안타 모두를 홈런으로 연결했다.

삼성 박석민은 니퍼트가 싫지만 롯데 쉐인 유먼은 무척 반갑다. 박석민은 유먼이 한국 무대에 온 이후 통산 타율 4할을 기록하며 홈런 6개를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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