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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중근의 AG일기]⑤‘무색’으로 ‘금빛’ 만든 선수들에 박수를

이번 대표팀처럼 소집 기간이 짧았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프로야구 시즌이 중단되기 전,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거의 바로 한 자리에 모여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조별리그를 시작했고, 일주일을 더 달려 당초 오고자 했던 종착역에 도착했다.

사실 올 시즌은 워낙 순위싸움이 치열하다보니 대표팀 합류를 앞두고 마음의 준비할 시간이 따로 없었다. 대표팀에서 함께 한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싶다. 소속팀 유니폼을 벗고,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정규시즌의 여운 같은 것이 없지 않아 있었을듯 싶다.

대표팀 소집 뒤 후배들에게 처음으로 해준 얘기가 ‘잊자’는 것이었다.

“이 곳에 있는 동안에는 잠시 소속팀에 대한 기억은 잊고 뛰자. 정규시즌 본인이 어떤 색깔의 유니폼을 입었고, 또 소속팀에서 어떤 역할을 했고, 또 어떤 성적을 냈는지 그에 대한 기억은 다 잊자. 대표팀에서 필요한 다섯경기에 집중하고, 그 안에서 자기 역할만 생각하자.”

선수들은 부탁을 잘 들어줬다. 지나고 보니 어쩌면 나랑 똑같은 마음으로 대표팀에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공교롭게 이번 대회 기간에는 선수촌에서 선수들간 대화할 시간이 무척 많았다. 그렇다고 소속팀 관련 얘기를 괜히 꺼내거나 이른바 튀는 행동을 하는 선수들이 없었다.

대표팀은 최고 선수들이 모이지는 자리다. 그러다 보니 개성 있는 선수들이 도드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대표팀을 표현하자면 오직 한가지 색만 존재했던 것 같다. 시작부터 다른 대회보다 금메달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에 방심할 여지도 있었지만, 그로 인해 경기장에서 나태한 순간은 없었다.

투수들도 매번 모였다 하면 ‘대회 끝까지 무실점으로 한번 끝내보자’는 식의 얘기를 많이 했다. 비록 준결승 중국전에서 예상보다 힘든 경기를 하면서 실점하고 결승전도 무척 힘들었지만 선수들 마음에 빈틈이 생겨 나온 결과는 아니었다. 고전의 이유라면 여유나 방심보다는 부담이 작용한 결과 아닐까 싶다. 초반부터 정말 풀리지 않은 경기였지만, 선수들이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은 덕분에 역전이 가능했다고 본다.

우리는 이제 금메달 하나씩을 걸고 소속팀으로 돌아간다. 나 또한 이제 LG 선수로 돌아간다. 며칠 뒤면 경기장에서 다시 마주하고, 차가운 승부를 벌여할 선수들이지만, 지난 2주간의 여정을 두고 다시 만나 얘기할 날도 또 있을 것으로 믿는다.

대표팀을 떠나며 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대표팀에 뽑히기 위해 열심히 뛰겠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베테랑이어서, 또는 경험이 많아서 그런 배경으로 대표팀에 뽑힐 일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또 그 언젠가 대표팀이 꾸려질 때 내가 당당히 뽑힐 실력이 돼서 부름을 받는다면 영광스럽게 응답할 일 아닌가 싶다. 다시 돌아가는 일상의 야구. 건강히 오래 오래 좋은 공을 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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