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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아시안게임 달구는 맏형들의 힘

한국과 중국이 2-2로 맞선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배드민턴 단체 결승전. 마지막 제5경기 단식에 나선 이현일(34·MG새마을금고)이 금메달을 결정짓는 스매시를 내리 꽂았다. 숨죽이며 랠리를 지켜보던 동생들 모두가 코트로 뛰쳐나가 형님에게 안겼다. 동생들이 그를 높이 헹가래쳤다. 이현일은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웃었다.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대표팀 막내로 단체전 금메달에 힘을 보탰던 이현일이 이번에는 맏형으로 돌아와 금메달을 이끌었다. 부산 대회 이후 12년 만의 단체전 금메달이다.

대표팀 맏형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위기마다 출격해 팀을 구한다. 후배들을 위한 멘토 역할에도 모자람이 없다.

이현일은 지난 2012년 대표팀에서 은퇴했지만 홈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위해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현일은 일본과 맞선 8강전에서도 마지막 5경기에 출전해 팀을 4강으로 끌어올리는 승리를 따냈다. 이현일은 “후배들에게 아시안게임 분위기나 어떤 점에 중점을 둬야 할지 알려주려고 노력했다”면서 “후배들이 또 다른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4년 뒤 다시 좋은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현일이 23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배드민턴 남자 단체전 결승 마지막경기에서 금메달을 확정 짓고 동료들의 헹가래를 받고 있다. 인천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레슬링과 양궁에서는 정지현(31·울산 남구청)과 오진혁(33·현대제철)이 맏형으로서 대표팀 자존심을 지켰다. 정지현은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1㎏급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이후 끊겼던 한국 레슬링의 금맥을 다시 이었고 오진혁은 리커브 개인전 금메달로 남자 양궁 대표팀을 대회 ‘노 골드’ 위기에서 구했다.

정지현이 출전하기 전까지 레슬링 대표팀은 자유형에서 은메달 1개와 동메달 6개를 추가하는데 그쳤다. 기대했던 금메달은 나오지 않았다. 정지현은 4강전 도중 얼굴을 상대 머리에 들이받혀 오른쪽 눈두덩이 퉁퉁 부어오른 채로 결승 매트에 올랐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도 정지현은 초반부터 상대를 몰아붙여 압승을 거뒀다. 정지현은 “그레코로만형 첫날부터 금메달 물꼬를 터 기쁘다. 후배들이 더 잘해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오진혁은 10살 넘게 어린 이승윤(19·코오롱)·구본찬(21·안동대)과 팀을 꾸려 단체전에 나섰지만 4강에서 중국에 발목이 잡혔다. 패배의 아픔보다 동생들 걱정이 앞섰다. 오진혁은 “올림픽보다 더 열심히 이번 대회를 준비해왔다”며 “이승윤과 구본찬은 아직 어린 선수들이다. 격려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후배들에게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선물했다. 양궁 마지막날 오진혁은 세트스코어 0-2로 뒤지다 3-2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오진혁이 26일 인천 계양아시아드양궁장에서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양궁 리커브 남자 단체 16강전에서 출전해 활을 쏘고 있다. 인천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유도 방귀만(31·남양주시청)도 빼놓을 수 없다. 방귀만은 이번 대회가 대표팀 발탁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맞는 아시안게임이다. 개인전 금메달로 ‘비운의 천재’ 꼬리표를 떼려 했지만 일본의 아키모토 히로유키를 넘지 못해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맏형 방귀만의 진가는 단체전에서 빛을 발했다. 방귀만은 단체전 결승경기에 2번째 주자로 나서 역전 한판승을 거뒀다. 대표팀은 결승에서 첫 경기를 내줬다. 앞서 8강과 4강을 ‘퍼펙트’로 이기고 올라온 터라 첫 경기 패배의 충격은 컸다. 그러나 탈구된 엄지 손가락에 마취주사를 맞고 경기에 나선 방귀만의 투지가 팀을 다시 살렸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어느새 서른을 넘겨 근력과 순발력이 전성기만 못해도 경험으로 메운다. 무엇보다 최고참이라는 책임감이 그들을 움직인다. 맏형들의 투혼이 인천을 달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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