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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미·김성신의 북톡카톡] ‘철학 브런치’…맛있는 철학, 생각의 포만감을 만끽하다

출판평론가 김성신과 방송인 남정미가 <스포츠경향>과의 만남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성신과 남정미는 <스포츠경향>에 카톡 대화를 통한 유쾌한 서평 ‘남정미·김성신의 북톡카톡’을 연재 중이다./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MBC <개그야>의 ‘명품남녀’에서 웃음 제조기로 인기를 모은 남정미. 하지만 요즘 그녀는 개그우먼보다 ‘책방 옆집 여자’로 더 유명하다. 개그 못지않은 서평가로서의 매력을 폴폴 풍기는 덕이다. 그녀 옆에는 ‘책방 옆집 여자의 남자’이기를 소원하는 출판평론가 김성신이 함께한다. 자칭 ‘책방 죽순이·죽돌이’인 두 사람의 유쾌상쾌통쾌한 북톡카톡 열일곱 번째 이야기는 <철학 브런치>(사이먼정 지음 / 부키 / 544쪽 / 1만8000원)이다.

성신:남정미씨! 요즘 제법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도 불고 가을 햇살이 참 눈부신데…, 잘 지내나요?

정미:네 이렇게 가을 햇살 눈부시니 친한 동료 세 명이 연이어 시집·장가 가고…, 저는 아주 ‘외롭게’ 잘 지내고 있어요.

성신:눈물 나네요! 그래 우울하기도 하겠지. 나도 그래요.

정미:내가 우울한 건 당연한 거지만, 쌤은 왜 우울해요?

성신: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일수록 우린 더 우울하지.

정미:‘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일수록 우린 더 우울하다’! 캬아~~ 뭔가 심오하고 어려운 게…, 철학적이야.

성신:철학적이라기보다는 말하자면 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란 뜻이에요. 가을! 아름답고도 쓸쓸한 계절이니까.

정미:철학? 그런 게 필요하다고 해서 덥석 마트 가서 카드 긋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건 정말 어려운 학문이라고요. 철학!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단어지! 암!

성신:대신 철학책은 덥석 살 수도 있겠지요.^^

정미:선생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지금 사놓고도 못 읽은 철학책이 7권이에요. 철학을 말하면 뭔가 대단해 보이고, 인생의 본질이며 삶의 섭리며 뭐 이런 멋있는 말을 나도 해보고 싶어서, 그때마다 그럴듯한 책을 구입하는데, 난 왜 30페이지를 못 넘기냐고요?

성신:그건 정미씨만 그런 게 아니에요. 난 그렇게 갖다 쌓아놓고도 못 읽은 철학책이 700권쯤 되는 것 같은데…. 헤헤^^

정미:읽지도 않는 책을 700권이나? 쌤 부자요?

성신:그런데 생각해 보니, 난 대학 때부터 철학책을 정말 열심히 읽긴 했지만, 내가 철학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군요.

정미:선생님! 철학적이라고 보이고 싶으시면 의상부터 바꾸세요. 나풀거리는 흰 가운으로다가.

성신:‘멘갑형님’처럼?

정미:ㅋㅋㅋㅋ ‘멘갑형님’이 뭐야?

성신:이 분!

박성광

정미:ㅋㅋㅋ아아~~~~~

성신:남의 개그도 좀 보고 사세요. 코미디언 아가씨.

정미:개그의 관점에서 보면, 보편적으로 철학이란 것이 너무 어려우니까 철학자를 저렇게 희화화할 수 있는 거라고요.

성신:어쨌든 철학은 말하자면 그냥 ‘생각의 정리’예요.

정미:생각의 정리? 음…. 그런데 그렇게 간단한 것이 왜 ‘접근하면 발포한다’고 경고하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학문이 되었을까?

성신:인간의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워낙 방대하니까, 그걸 설명하는 것도 방대해져서 그렇겠지요.

정미:철학에는 어떤 기능이 있나요?

성신:철학의 기능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종합적인 사유의 기능’과 ‘종합적인 사유에 대한 분석비판의 기능’! 그런데 우리가 보통 철학이라고 하면 ‘분석비판 기능’만을 떠올려요. 그래서 어렵게 느껴지는 거죠.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은 복잡한 일이니까요.

정미:존재론, 실천이성 비판, 형이상학, 변증법… 이런 것들.

성신:그렇지요. 그런데 최근에 바로 이런 점을 지적하며 철학의 첫 번째 기능, 즉 ‘종합적인 사유의 기능’을 부각시켜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하는 법’을 설명해 주는 대중철학서가 나왔더군요.

정미:아! <철학 브런치>! 사실 이 책 처음 받았을 때 메뉴판인 줄….

이렇게 생긴 브런치 메뉴판에 소크라테스도 팔고, 데카르트도 주문할 수 있고, 니체도 먹을 수 있고, 프란시스 베이컨은 아예 베이컨 그림 위에 이름이 있더라고. ㅋㅋㅋ 빵 터졌네.

성신:하하하! 표지도 그렇지만, 나는 이 책 제목이 너무 좋아요. 철학과 가장 비슷한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음식’이거든요.

정미:철학과 비슷한 게 음식이라고요? 왜?

성신:배고픈 나를 대신해 다른 사람이 음식을 먹어도 내가 배부를 수 없듯이, 철학은 아무도 대신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지요. 철학을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것이니까요…. 다시 말해 ‘내가 배고프면 내가 먹어야 하잖아요. 남이 먹는다고 내 배가 부른 것은 아니니까요. 또 인간은 늘 먹어야 살듯이, 인간이 인간으로 살고 싶으면 늘 생각을 해야 한다는 점도 비슷하고요.

정미:듣고 보니 기가 막힌 제목이네요. 어차피 해야 할 철학이라면 폼 좀 나게 브런치로 먹으라는 함의까지 느껴지네요.^^

성신:그렇지요. 그래서 진짜 좋은 제목!

정미:그럼 선생님!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는 얘기네요? 그러니까 ‘누구든 철학을 말할 수 있다. 왜냐면 철학은 그냥 생각의 정리니까’ 이렇다는 말씀이지요?

성신:그렇지요. 세계 인구가 70억명이라면 70억 가지의 사유, 70억 가지의 철학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정미:오오오~~~ 그런데 과연 사람들이 ‘내 생각의 정리’를 철학으로 받아들여줄까요.

성신:철학은 자기 자신의 앎의 문제를 탐구하는 사유의 학문이지요. 그러니 보편타당성만 있다면….

정미:보편타당성이라…. 어쨌든 이번에 <철학 브런치> 읽으면서 어떤 철학자의 이야기에 꽂혔어요? 쌤이라면 이미 진즉에 다 읽어본 철학자들일 것 아니에요?

성신:아주아주 먼 옛날 소싯적에 나의 스승이었던 분이 계셨는데, 니체! 한동안 잊고 지냈지. 그런데 <철학 브런치> 읽으면서 니체가 다시 내 뒤통수를 때리시더군요.

정미:니체? 신은 죽었다고 말한 사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고 했던 그 콧수염 무지 멋진 아저씨!

성신:은둔자 차라투스트라가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인간을 위한 새로운 원칙을 찾기 위해 산에서 내려와 시장과 군중 속으로 들어가 “신은 죽었다!”라고 외치며, 인간의 내면에 있는 그 모든 ‘사막’들을 목격하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 왕, 거머리, 마술사, 더없이 추악한 자, 제 발로 거지가 된 자, 그림자, 나귀 등과 대화하고 축제를 벌이고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는 징조를 보는 이야기죠. <철학 브런치> 속에서 니체는 나에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다시 읽어 보라고 하더군요.

정미:그러고 보니 요즘 니체의 책이 다시 각광받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성신:차라투스트라의 외침 이후 인간은, 인간이 인간의 주체가 되는 새로운 아침을 잠깐 꿈꿔 보지만, 빛나는 아침은 그야말로 찰나에 끝났죠. 인간은 그 자리를 감당 못해 두려움에 벌벌 떨다가 곧바로 ‘자본’에 자신의 자리를 내주었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자본’이 신이잖아요. 지금 우리 모두는 ‘돈’이라는 이름의 신을 경배하지요.

정미:만약 니체가 지금의 이 꼬라지를 다시 본다면 차라투스트라에게 무슨 말을 시킬까, 사람들이 바로 그걸 궁금해한다는 것이로군요.

성신:맞아요. 니체가 실제로 본다면,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안할 것 같기는 하지만…^^

니체는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사람, 정신적인 힘이 있는 사람만이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말했지요. 이 시대의 사람들이 니체를 다시 읽기 시작한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심장해요. 뭔가 읽는다는 것은 무엇이 결핍되었는지를 반영하거든요. 니체의 비유대로, 마치 낙타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당위적 세계의 구속에서 벗어나 인간은 마치 사자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힘을 지녀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바로 그런 생각을 지금 우리가 하기 시작했다고 봐요, 나는.

정미:역시 철학은 우리 삶과 별개의 것이 아니었어. 이토록 아주 밀접한 것이었어! 철학은 바로 우리 삶의 양상 그 자체잖아! 철학…, 꽤 멋진 걸!

성신:뭔가 터득했군, 축하~

정미:나는 개인적으로 키케로가 좋아요. 기원전 106년에 태어난 로마 역사상 최고의 영재이자 신동이었지. 이 부분부터 나랑 좀 비슷하긴 해. 키케로가 엄친아였거든. 이제와 고백하건대 나 ‘엄친딸’이야! 우리 엄마 친딸! 헤헤~ 키케로를 수식하는 타이틀은 워낙 많았어요. 법률가였고, 최고의 웅변가였고, 정치인이면서, 번역가이기도 했지요.

성신:비슷한 면이 없진 않네. 그대는 코미디언이자, 서평가이자, 헤나아티스트이자…. 그래서 남키케로!

정미:ㅋㅋㅋ 발음이 이상해! 비웃는 거 같잖아! 남키케로. ‘케로로’ 같기도 하고….

성신:세상을 비웃는 것도 코미디언의 권리이자 의무지.

정미:특히 키케로가 10대 때 썼다고 하는 책 <창의성에 대하여>에 나오는 세계관이 마음에 탁 와 닿아요. “불명예스러운 것은 아는 게 거의 없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어리석게 오랫동안 고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자는 인간의 흔한 약점 탓인 반면 후자는 개인의 특수한 결점 탓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것도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바 없이, 그러나 동시에 질문을 하면서, 각각의 관점을 일정한 의혹을 가지고 진전시켜 나갈 것이다.”

성신:키케로는 뜨거운 인간애와 훌륭한 성품을 가진 도덕적 인간이었지요. 뜨거운 인간애와 훌륭한 성품을 가진 도덕적 코미디언인 남정미와 아주 많이 닮았네요. 그대가 왜 키케로를 좋아하는지 알겠어.^^

정미:키케로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니까. 진짜 독단과 독선, 내가 생각한 것이 전부라고 아집을 부렸던 스스로가 몹시 부끄럽더라고요. 그렇게 치면 공자의 가르침과도 직결되고, 소크라테스의 철학과도 일맥상통하는 거예요.

성신:도덕적 인간의 원형을 이야기하니 시공을 초월해 일맥상통하게 된 것이겠지요.

정미:정말 브런치 메뉴 하나 시켰을 뿐인데, 공자도 나오고, 소크라테스도 나오고,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이거 쓰키다시(밑반찬) 작렬인데요? 아주 훌륭한 브런치 카페네요~

성신:배가 터지도록 드시오. <철학 브런치>. 철학은 다이어트에 효과 만점이란 이야기가 있소!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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