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플레이볼 PM 6:29]착한 포수 최경철의 독한 야구

‘착한’이라는 말이 훈장처럼 쓰이는 시대다. ‘착한 식당’을 찾아다니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카페인 없는 비타민 음료를 ‘착한 드링크’로 소개하며 마케팅에 나선 업체도 있다. ‘착한’이란 수식어는 그 자체로 강력한 신뢰를 가져다준다.

프로야구에서 ‘착하다’는 말은 그다지 칭찬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착하면 야구 못한다’는 속설까지 있다.

가령 팀에 악영향을 끼치는 플레이를 했더라도 동료를 의식해 자책하기보다는 조금은 뻔뻔하게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선수 개인과 팀 모두에 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LG 최경철

LG 최경철은 ‘착한 포수’로 통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최경철 속은 단번에 알 만하다. 그의 얼굴은 곧 마음을 알리는 전광판이다. 둥글둥글, 생글생글 웃는 얼굴은 주위 사람들이 알려주는 그의 성격을 떠오르게 한다.

최경철은 올시즌 주전 포수로 도약했지만 잠시라도 젠체하는 법이 없다. 주위 사람을 두루 배려하다보니 그 범위가 볼보이까지 미치기도 한다. 예컨대 볼보이가 주우러 가는 볼을 먼저 달려가 줍는 통에 볼보이마저 머쓱하게 만들기도 한다.

LG 양상문 감독은 이상적인 성격을 가진 포수로 삼성 진갑용과 롯데 강민호를 꼽는다. “포수는 조금은 능글능글할 필요도 있다. 갑용이나 민호가 그런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양 감독은 최경철의 성격까지 바꾸도록 주문할 생각은 전혀 없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어보인다.

최경철이 정말 독해야 할 몇 초의 순간에는 제대로 독해지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잠실 LG-두산전에서 LG는 ‘독한 야구’로 대승을 거뒀다. 0-2로 끌려가던 4회 스퀴즈번트 2개로 두산 선발 마야를 흔들며 4점을 몰아냈는데 첫 번째 스퀴즈 성공 선수가 바로 최경철이었다. 1사 1·3루에서 최경철은 투수 앞으로 번트를 굴려 3루 주자를 불러들이고 자신도 1루에서 살았다. 최경철의 번트가 성공하며 LG는 소나기 득점을 시작했다.

누가 봐도 스퀴즈가 성공한 것이었지만, 벤치에서 사인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최경철은 개인 판단으로 번트를 댔고, 3루 주자는 이 같은 상황을 준비하고 있다가 홈을 밟았다.

양 감독은 지난 5월 LG 새 사령탑으로 부임하자마자 ‘독한 야구’를 선언했다.

독한 야구는 흔히 3루 주자와 타자 사이의 당기는 힘의 크기로 나타나기도 한다. 3루까지 이른 주자는 기어이 홈으로 귀환하려 하고, 타자는 그 주자를 꼭 불러들이려는 의지의 크기가 플레이로 나타난다. 이는 벤치의 의도로 시작되지만 결국은 선수의 움직임으로 완성된다. 최경철 또한 3루주자를 불러들이려는 강렬한 열망에 번트를 선택했고, LG의 잇따른 번트 작전은 두산 투수를 자극해 승부의 분수령이 됐다.

LG는 시즌 막판 잇따른 뒤집기와 끝내기 승리로 4위 확정에 바짝 근접해 있다. 양 감독 말대로 적당히 끝내지 않고 독하게 경기를 한 결과다. 그 가운데는 ‘착한 포수’ 최경철의 아주 독한 플레이도 곁들여져 있다.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