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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독재자’ 설경구 “관객을 속일 순 있어도 나 자신을 못 속이죠”

배우 설경구(46)는 영화 <나의 독재자>(감독 이해준·30일 개봉)에서 복잡한 지점에 위치한다. 그가 연기한 성근은 무명배우다. 극단 허드렛일을 도맡아하면서 연극 ‘리어왕’의 대사를 달달 외웠고, 덕분에 대타로 무대에 설 기회를 얻는다. 하나 뿐인 아들이 지켜보고 있는 첫 무대. 성근은 너무 떨려 대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대를 내려온다. 그러나 무명배우라는 점 덕분에 1972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일성 대역으로 발탁된다. 말투와 몸짓 하나까지 필사적으로 모사하지만 회담이 결렬되면서 ‘데뷔’는 무산되고, 성근은 김일성 역할에 빠져나오지 못한 채 살아간다. 충무로를 이끌고 있는 배우 설경구가 연기를 잘 못하는 무명배우가 김일성 연기를 하는 걸 연기해야 했던 셈이다.

배우 설경구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설경구는 스크린 데뷔 전엔 유명한 연극배우였다. 연극 <지하철 1호선>과 <모스키토>로 이름을 알렸던 그는 극중 성근과 달리 “족구를 하다 무대에 올라갈 정도”로 무대가 편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 초조해서 다리를 떨고 스포트라이트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모습은 100% 연기다. 김일성을 연기하는 무명배우를 연기해야 한다는 복잡한 지점이 설경구를 잡아끌었다.

“최근 작품에서는 단선적인 캐릭터가 많았어요. 간만에 어려운 배역이라 두려웠지만 반갑기도 했죠. 그래서 어려운 시나리오를 준 이해준 감독에게 고마웠어요.”

복잡한 배역이지만 김일성이 아니라 김일성 대역이라는 점이, 또 연기를 못하는 배우라는 점 덕분에 쉽게 풀릴 수 있었다고 했다.

“평양 출신 사투리 선생님과 억양을 연습했는데 현장에는 안 오셨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김일성 역할이 아니라 김일성 대역 역할이기 때문이죠. 성근은 김일성이란 배역에서 못 빠져나온 것이 아니고 안 빠져나왔다고 봅니다. 김일성의 탈을 벗는 순간 아들 앞에 나설 면목이 없으니까 거기에 안주하면서 연극을 하는 거죠. 분명히 기회가 올거라는 희망을 가지고요.”

영화 ‘나의 독재자’의 설경구

영화는 1972년과 1994년을 오간다. 설경구는 22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1994년의 김성근을 위해서는 5시간 넘게 분장을 해야 했다. 새벽 1시에 촬영장에 나가 차가운 본드를 5겹씩 얼굴에 칠했다. 분장이 떨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분장팀에서는 김밥도 눕혀서 먹으라고 부탁할 정도로 조심했다. 그러나 설경구는 부러 연기할 때 표정을 크게 지었다고 한다. “조심하면서 연기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조심하면서 연기할 수 없다는 건, 아마도 분장한 걸 들킬 수 없다는 생각일 것이다. 분장을 하고 있다는 걸 신경쓰면서 연기하면 그건 진짜 연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연기의 많은 부분을 이창동 감독에게 배웠다고 말했다.

<박하사탕>(2000)에는 김영호가 병원에서 감정을 폭발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이창동 감독이 설경구를 불러 “이 장면은 6개의 감정이 모여서 터져나와야 하는데 아직 2개가 비어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욕이 나왔죠. 채웠다는 4개의 감정도 뭔지 모르겠는데, 2개가 안됐다는 게 무슨 말인지 어떻게 알겠어요.콧물이 나온 후에 오케이 사인을 받았는데 콧물이 그 감정이었나 싶기도 했고요(웃음).”

<오아시스>(2002)를 찍을 때 이창동 감독은 ‘컷’을 외친후 설경구를 또 불렀다. “거의 된 것 같은데, 너랑 나랑은 속이지 말자”는 게 이 감독의 말이었다.

“‘80~90점 정도는 됐는데, 100점이 아니라는 걸 너랑 나는 알잖아. 100점을 향해서 더 가보자’는 말이죠. 와. 정말 너무 무서웠어요. 관객은 속일 수 있지만 너랑 나를 속일 수 없다는 말이잖아요. 그 말이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아 있어요.”

설경구는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게 배우의 숙제”라고 말했다. 그 말은 그에게도 유효하다.

영화를 찍을 땐 아직까지 긴장감을 느낀다는 설경구. 적당히 살얼음처럼 깔려있는 긴장감은 배우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극중 배역과 배우가 하나가 되는 ‘메소드 연기’는 목표점이기도 하지만 두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영화 속 인물이 됐다는 건 배우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 100%가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연기라고.

그러면서 설경구는 “요즘 관객들은 모른 척 해도 다 안다. 진심이 아니면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기도 관객과의 소통이기 때문에 소통이 깨지면 재미를 느낄 수 없다고. “진짜만 통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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