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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최고 ‘다크 히로인’ 연민정 역 이유리 “시청률 오를수록 귀갓길도 무서웠다”

흔히 배우는 배역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가능한 한 원재료를 맛이나 신선함의 손실없이 담아내야 하는 것이 일이다. 하지만 재료의 향이 그릇에 배기도 하고, 그릇의 소재가 재료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래서 배역과 배우는 한 배를 탄 이상 서로 영향을 받으며 함께 가야하는 운명공동체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 이유리(34)는 지금껏 누구도 담지 않았던 독하고 매운 재료를 담고 6개월여를 보냈다. 최근 종방한 MBC 주말극 <왔다! 장보리>(극본 김순옥, 연출 백호민)에서 그가 연기한 연민정은 지금까지 안방극장에서 등장했던 가장 악독한 인물 중 하나였다. 자신의 배로 아파 낳은 자식을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는 것은 물론이요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부모와 친지와 친구도 이용했다. 그 역시 사람이다. 자신이 연기하는 연민정을 스스로는 아껴야했지만 연민정은 너무 맵고 뜨거웠다.

“악역을 하든 선역을 하든 연기를 하기 전에는 감정을 오래 잡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연)민정이는 제가 너무 괴로웠어요. <왔다! 장보리>를 찍을 때는 현장에서 최대한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했어요 촬영이 시작된 후에만 집중하고 ‘컷’ 사인이 나면 최대한 빨리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죠.”

최근 종방한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에서 극악무도한 언행을 일삼는 연민정을 연기한 배우 이유리.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악역 연민정이 가지는 무시무시한 존재감은 분명 <왔다! 장보리> 인기의 원동력이었다. 연민정이 강력한 악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드라마는 초반 장보리(오연서)-이재화(김지훈)의 작품에서 급격하게 연민정-문지상(성혁)의 드라마로 변해갔다. 그가 체감하기에도 악역 감정의 속도감은 굉장했다.

“나쁜 짓을 하겠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죠. 초반부터 아이를 고아원에 버리라는 폐륜과 관련한 설정이 들어가니까 연기하기에 주저도 됐어요. 하지만 초반에 강한 설정이 한 번 나오니까 그 뒤가 연결이 되려면 더 강한 게 나와야 하잖아요. 결국 작가 선생님을 믿고 가는 게 배우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최근 종방한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에서 극악무도한 언행을 일삼는 연민정을 연기한 배우 이유리.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시청률이 30% 위로 더 높게 오를 때마다 그를 욕하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다. 그에게 욕은 칭찬이었다. 인기와 동시에 뜨거운 질시를 감당해야 하는 이유리에게는 갈수록 커지는 반응도 때로는 부담이었다.

“인터넷 댓글을 가끔 보는데 ‘정말 나쁘다’ ‘어쩌면 그럴 수 있냐’는 반응들은 얌전한 축에 속해요. ‘계단을 내려갈 때 뒤에서 밀어버리고 싶다’는 댓글을 보면 저도 섬뜩했어요. 촬영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 조금 무서웠던 것 같아요. 하지만 어르신들은 오히려 ‘연기로 보는 거 아니냐’고 해주셔서 많은 힘을 얻었던 기억도 나요.”

최근 종방한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에서 극악무도한 언행을 일삼는 연민정을 연기한 배우 이유리.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실제 만난 이유리는 연민정처럼 눈을 부라리지도, 목청껏 악을 쓰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매사가 조심스럽고 작은 것에도 잘 놀라는 소심한 쪽에 가까웠다. 스스로도 “매사에 자신감있게 말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노홍철 같은 연예인이 부럽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연민정을 연기했다. 그것도 주변 배우들이 모두 인정하는, 엄청난 노력으로 드라마 일정을 헤쳐갔다.

“기왕 했으면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리고 저만 그랬던 건 아니에요. 김지훈씨는 성혁씨랑 제가 촬영을 하고 있는데도 열정적으로 연습하고 있고, 오연서나 오창석씨(이재희 역)도 대기실에서 방이 떠나가라 대사를 연습해요. 젊은 배우들의 열정에 서로가 더 부응하려고 열심히 하는 거죠. 긴장을 늦추기 힘들었어요.”

최근 종방한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에서 극악무도한 언행을 일삼는 연민정을 연기한 배우 이유리.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그는 배우 임수정, 여욱환 등과 함께 2001년 KBS 드라마 <학교 4>를 통해 데뷔했다. 벌써 연기를 한 지 13년이 넘었다. 아침일일극, 저녁일일극, 주말극, 미니시리즈 거의 매년 쉬지 않고 작품을 해왔지만 그의 인지도에 비해 퍼뜩 생각나는 작품은 <엄마가 뿔났다> <노란복수초> 정도로 적었다. 동년배 배우들이 다 큰 대중적인 인기로 유명세를 떨칠 때도 그는 연기가 잘 안 되는데 대한 조급함은 있었지만, 인기에 대한 조급함은 없었다.

“계속 촬영을 하고 연기를 할 수 있는 만족감이 커서 다른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가끔 제작발표회나 기자간담회를 할 때 질문이 제게 안 오다 가끔씩 오면 굉장히 반가운 수준? 그런 건 있었어요.”

최근 종방한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에서 극악무도한 언행을 일삼는 연민정을 연기한 배우 이유리.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이렇게 천진하게 말하는 이유리는 앞으로는 매체들의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게 될 유명세를 이번 드라마를 통해 얻었다. 그는 연민정을 뛰어넘을 악역을 할 생각이 없다. 굳이 그런 부담감에 자신을 옭아맬 생각도 없는데다 앞으로 연기를 할 시간은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급하게 욕심낸다고 잘 되는 건 아니잖아요. 민정이가 그랬어요. 민정이는 머리는 좋은데 방향이 잘못됐어요. 성공지향주의와 욕심에 사로잡힌 인간이 열심히만 하면 어떤 최후를 보는지 알 수 있는 드라마였다고 생각해요. 연기하면서 민정이가 많이 안타까웠어요. 제가 생각하는 인생과는 다른 길을 살았던 아이라 한 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죠.”

최근 종방한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에서 극악무도한 언행을 일삼는 연민정을 연기한 배우 이유리가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서 드라마 마지막회 선보였던 ‘민소희 패러디’를 해보이고 있다.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결혼 5년차인 그는 촬영 때 보지 못한 남편과 그리고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수다도 떨면서 망중한을 즐길 생각이다. 그는 이렇게 소박한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냐는 질문에 <힐링캠프>에서 했던 작은 실수를 되짚으며 미안해했다. 그의 해명은 그의 신념과도 같았다.

“토크쇼에서 텐트 하나만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게 좋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후회돼요. 가난이 얼마나 무서워요. 가난의 의미를 너무 쉽게 말한 것 같아 마음에 짐이 생겼어요. 연말 수상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더 넓은 폭의 배역을 하는 걸로 족해요.”

최근 종방한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에서 극악무도한 언행을 일삼는 연민정을 연기한 배우 이유리.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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