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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10년, 우리가 아는 배우 차예련은 차예련이 아니다 [인터뷰]

이 인터뷰는 마냥 화려한 차림에 차갑고 도도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 차예련의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10년 동안 변신의 의지 없이 예쁘기 만한 역할을 고집하는 배우 차예련의 이야기도 아니다. 인터뷰로 배우들을 만나다 보면 차곡차곡 쌓인 배역의 이미지가 너무나 단단해져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밀어내는 경우를 종종 본다. 배우 차예련(29)이 그랬다. 대중이 보는 차예련은 차갑고 화려한 여배우였고, 연기에 대한 고민 따윈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인간 차예련 아니 박현호(본명)는 이를 벗어나기 위해 10년 동안 혼자서 고독한 싸움을 계속해왔다. 배우 차예련이 아닌 인간 차예련의 민낯을 보고 싶었다.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차라리 아예 옷을 못 입는 인물을 연기할까 봐요.”

차예련 눈가의 그늘이 깊어졌다. 그는 최근 종방한 SBS 드라마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에서 극중 배경인 연예기획사 ANA의 이사 신해윤 역을 맡았다. 인터넷에 있는 그의 배역 소개에는 우리가 가진 차예련에 대한 이미지들이 집대성 돼 있다. ‘스펙(성적, 언어능력 등의 수치)이며 외모, 집안 뭐 하나 빠지는 것 없는’ ‘넉넉한 집안에서 귀하게 자란’ ‘매사에 당당하고 도도하며 자기감정에 솔직한’.

최근 종방한 SBS 드라마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에서 신해윤 역을 연기한 배우 차예련.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미안한 말이지만 기획의도에 나왔던 신해윤이란 인물은 결국 반쪽짜리에 머물렀다. 차가운 모습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 이현욱(정지훈)에게는 약한 모습이 언뜻언뜻 보여야 했으나, 신해윤은 사랑을 받지 못해 억울한 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연기를 통해 조금이라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차예련의 바람도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옷 잘 입고 ‘엄친딸(엄마 친구 딸)’에 부잣집 사람으로 이미지가 어느새 각인돼 버린 것 같아요. 고민이 많았죠. 깨보고 싶었던 생각에 많은 작품을 했어요. 하지만 <여배우는 너무해> <구타유발자> 등의 발랄하거나 정숙한 모습은 많은 분들이 어색해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흥행마저 안 됐을 경우에는 다시 예전 이미지로 배역이 돌아갔어요.”

최근 종방한 SBS 드라마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에서 신해윤 역을 연기한 배우 차예련.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흔히 배우의 변신은 쉽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만만치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쉬지 않고 작품을 하고 싶은 배우는 결국 작가나 연출자의 ‘이미지 캐스팅’ 틀을 벗어나기 힘들다. 악역은 계속 악역이 되고, 착한 역은 계속 착한 역이 되고 웃긴 이미지는 좀처럼 씻겨나가지 않는 식이다. “배우 스스로 바꾸면 되지 않나” 싶지만 엄청난 히트작을 만나거나 예능프로그램에서 맹활약하지 않는 이상 이는 힘들다.

“제 기사에 댓글을 읽으면 ‘아 이분은 나를 이렇게 생각하는 구나’ 알게 돼요. ‘예뻐요’ ‘좋아요’ 해주시는 분들도 많지만 연기에 대한 갈증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모델로 시작해 연기를 배운 적은 없지만 요즘도 연기수업과 발성도 처음부터 한다는 생각으로 배우고 있어요. 연기도 10년을 했잖아요.”

최근 종방한 SBS 드라마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에서 신해윤 역을 연기한 배우 차예련.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그렇다면 화려한 이미지 속에 고립된 ‘진짜’ 차예련은 어떤 사람일까. 그는 현재 소속사와 10년 째 계속 일을 하고 있다. 드라마 속 까다로운 이미지라면 언젠가는 한 번 다툼이 일어났을 법하다. 그의 진득하고 사람을 잘 믿는 성격은 한 번 일을 시작하면 계속 함께 한다. 헤어숍과 스타일리스트도 오랜 시간 일을 했다. 순대국밥도 좋아하고, 옷도 오히려 편하게 입는 걸 좋아한다. ‘셀 것 같다’는 그의 얼굴 뒤에 가려진 성격은 ‘곰 같다’였다.

“제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예능 프로그램 떠올렸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걱정하더라고요. ‘진짜 네 모습을 보였다가 맡고 있던 캐릭터도 잃으면 어쩌냐’는 거였어요. 친언니도 그래요. ‘너무 사람들에게 배려하지 마라. 네 것을 챙기라’고 해요. 하지만 안 되는 걸 어쩌겠어요.”

최근 종방한 SBS 드라마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에서 신해윤 역을 연기한 배우 차예련.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연기를 처음 한 20대 초반에는 성격과는 다른 자신의 이미지 때문에 괴로웠지만 이제 서서히 체념하는 법을 배워간다고 했다. 배우에게는 억울할 법한 일이다. 하지만 더 억울한 일은 차예련은 체념이 여린 성격 때문에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아직 그는 희망을 다 놓지는 않았다.

“딱 한 번이라도 제 모습이 온전하게 담겨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그냥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예요. 몸에 맞는 역할을 만난다면 정말 노력할 수 있어요. 진짜 제 모습을 조금씩 보이기 위해서 최근에 인스타그램(사진을 주로 올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의 일종)을 시작했어요. 조금씩 대중들과 소통한다는 느낌이 좋아요.”

최근 종방한 SBS 드라마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에서 신해윤 역을 연기한 배우 차예련.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사람은 살면서 세 번의 큰 기회가 온다고 했다. 모델이었던 그가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 그의 인생 처음의 기회였다. 자신과 혼연일체가 되는 배역을 만나는 일이 두 번째 큰 기회가 될 것이다. ‘차도녀(차가운 도시여자)’ ‘패셔니스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이 이미지 안에서 그는 오늘도 자신의 연기를 다듬으며 기다리고 있다. 대중에게 잊히지 않고 10년을 버틴 그에게 한 번 쯤 제대로 된 기회 정도는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배우 차예련에 대한 진짜 평가는 그의 진면목을 본 후로 미뤄도 충분하다. 그에게 운명같은 기회는 언제쯤 올 것인가. 인터뷰를 하며 계속 물음이 생겼다. 차예련은 과연 ‘차도녀 패셔니스타’인가, 아니면 기회를 기다리는 또 한 명의 간절한 사람인가.

최근 종방한 SBS 드라마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에서 신해윤 역을 연기한 배우 차예련.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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