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드라마 ‘내 생애 봄날’ 마친 이준혁, 軍복무 2년 공백…되레 훌쩍 큰 느낌

입대 전엔 기억으로 연기

제대 뒤엔 감정으로 꽉차

드라마속 비중 줄었어도 “좋은 작품 찍었다” 자부심

배우 이준혁(30)이 최근 출연한 MBC 드라마 <내 생애 봄날>의 배역 강동욱은 남자들 입장에서 볼 때 분통이 터지는 캐릭터다. 일찍이 사랑했던 여자가 형 강동하(감우성)와 결혼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형수가 사망한 후 다시 자신의 병원 영양사인 이봄이(최수영)와 사귀었지만 이봄이의 마음은 다시 형에게로 향했다. 물론 형수의 심장을 이식받은 봄이가 형을 좋아하는 설정의 드라마라 더욱 극적이었지만 강동욱에게는 시련과 비련의 연속이었다.

자칫 극의 중심에서 밀려난, 비중이 작아진 캐릭터라 실망할 수도 있었으나 이준혁의 마음은 좋은 드라마를 찍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심지어 이 드라마는 한석규-이제훈, 비-크리스탈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한 대작 드라마의 틈바구니 속에서 시청률 면에서도 선전을 거뒀다. 군 복무를 마치고 떨리는 마음으로 도전했던 <내 생애 봄날>은 이준혁의 마음속에 적지 않은 여운을 남겼다.

“제게는 7회 봄이를 형에게 보내주는 장면이 실질적인 엔딩이었어요. 극의 중심에서 물러나는 느낌이 있었죠. 다들 아쉽지 않냐고 하시지만 정말 따뜻한 느낌의 드라마를 하고 싶었고, 배우들 사이의 호흡도 좋았어요. 여러 가지로 뜻 깊은 작품이었죠.”

극중 강동욱은 이봄이를 보내주고 다른 의사 배지원(장신영)과 서로 마음을 나눴지만 그때는 이미 극의 모든 중심이 강동하와 이봄이의 로맨스로 옮겨진 이후였다. 아무리 드라마라도 형에게 사랑했던 두 명의 여인을 모두 내줘야 하는 설정, 그는 납득했을까.

“아마 극중 동욱이었다면 기자님도 납득하셨을 걸요? 공감이 됐어요. 저만의 상황도 납득에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촬영 당시 여러 가지로 고민이 있었는데 마침 결혼과 사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때 본 영화가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연출하고 호아킨 피닉스 그리고 스칼릿 조핸슨이 목소리로 출연했던 <그녀(HER)>였어요. 그 영화 막바지에 보면 자신 말고도 많은 남자와 교제하는 컴퓨터 운영체제(OS) 여자친구를 주인공인 테오도르가 놓아주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 정서가 이해가 갔어요.”

영화 <그녀>의 테오도르는 이성 교제를 어려워했던 자신에게 다가온 컴퓨터 운영체제 여자친구 때문에 잠시나마 인생 최고의 행복을 맛봤다. 이준혁 생각에 강동욱도 그랬던 것 같다. 떠났을지라도 만났던 시간 동안에는 행복을 안겨준 사람. 그 사람을 놓아주는 것도 자신에게 있어서는 성장이고, 사랑이라는 사실을. 그는 강동욱의 아련하면서도 묵직한 사랑에 7회 대본을 받고 울음을 삼키기도 했다.

“오히려 동욱이가 봄이에게 집착하고 동하에게 나쁘게 굴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하지만 담담히 사랑을 놓아주는 모습이 좋았어요. 배우로서는 동욱이의 모습이 더 보이면 좋았겠지만 소중한 감정을 체험할 수 있어 그 정도로 족해요.”

2007년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을 통해 이름을 알린 그는 2012년 드라마 <적도의 남자>에서 신분 상승의 욕망으로 가득 찬 인물 이장일을 연기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군 생활을 위해 안방극장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마침 그가 복무하던 때에 연예병사 제도가 논란이 돼 마음고생도 했다. 여러 일을 거치며 많은 군 전역자들이 그렇듯 그도 마음의 키가 많이 자랐다.

“예전보다는 조금 더 채워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적도의 남자> 때까지는 10대와 20대의 기억들로 연기를 했다면 군 생활 이후에는 좀 더 많은 감정들이 안에 채워진 것 같아요. 지금은 극의 성격도 중요하지만 공감할 수 있고, 관심사가 맞는 작품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캐릭터가 갖고 있는 담백한 면, 감정이 과잉되지 않는 면에 끌리는 것 같아요.”

그는 인터뷰 막바지에 ‘영웅물’ 영화 이야기를 했다. 군에서 <아마겟돈> 영화를 보면서 ‘왜 한국 배우들은 지구를 구할 일이 없을까. 외국 배우들은 지구도 구하고, 별도 달도 가는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잘 정돈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언뜻언뜻 보이는 인간 이준혁의 의외성은 배우 이준혁이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밀알이 될 것 같다. 다른 배우들처럼 시끌벅적한 복귀를 하진 않았지만 그가 꿈꾸는 ‘자신을 볼 때만큼은 만사를 잊을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길로, 그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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