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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소금] ‘안현배의 그림으로 보는 인류학’ 죽어가는 노예

L’Esclave Mourant(죽어가는 노예, 1513~1516 ) | 대리석, 229㎝ | 미켈란젤로(1475~1564)

예전에는 자주 쓰다가 최근에는 수정돼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수식어들이 있습니다. 예술작품 속에도 이런 말이 있는데, ‘빈사의’라는 말도 그렇지요. 루체른의 빈사의 사자상, 혹은 오늘 소개해 드리는 미켈란젤로의 빈사의 노예도 있습니다.

오늘은 유명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인 ‘죽어가는 노예상’을 말씀드립니다. ‘빈사의 노예’라고도 하죠.

루브르의 조각관에는 미켈란젤로가 작업하다가 끝내 완성하지 못한 2개의 조각상이 있습니다. 하나는 묶여 있는 노예상이고, 다른 하나는 이 죽어가는 노예상입니다.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조각 중에서 유달리 ‘죽어가는 노예상’에 관심을 많이 보입니다. 사실 전통적인 방식의 조각과는 살짝 다르게 표현된, 미켈란젤로의 특징적인 방향이 나타나는 작품이 바로 이 조각들입니다. 정지되고 조화로운 정점의 조각이 아니라 뭔가 뒤틀리고 불편한 듯하면서도 훨씬 인간적인 순간을 묘사한 이 조각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매력이 분명 있습니다.

“이 완성되지 못한 조각상은 원래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묘지 기념물의 일부로 계획됐다. 이 노예상은 오직 미켈란젤로 머릿속에만 있었던 거대한 구상 중 살아 남은 유일한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율리우스 2세를 기념하는 작품은 당초 바티칸에 베드로성당 안에 위치시키려던 원래의 계획이 끝내 포기되고, 그 규모도 수정·축소돼 초기 구상에 비하면 초라한 기념상만 현재 로마의 비콜리의 성베드로 성당에 남아 있다. 40여년이나 완성되지 못한 이 계획은 미켈란젤로에게 좌절감과 공포, 그리고 고통만 남겨준 일생의 숙제나 마찬가지였다.”

무소불위의 권력이던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예술 진흥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믿었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자기가 묻힐 묘지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길이 남기길 원했고, 그 작업을 동시대 최고의 조각가 미켈란젤로에게 맡기려고 했죠. 그 기념상은 바티칸 베드로 성당 안쪽에 위치시키려고 했습니다. 만약 초기 계획이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베드로 성당 안쪽에서 미켈란젤로의 예술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가질 뻔했습니다.

돌에서 영혼을 깨어나게 한다는, 대리석 속에서 살아 있는 인물을 찾던 조각가로서 본인을 자랑스러워했던 미켈란젤로는 어쩌면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은 회화 작품인 시스티나 천장 벽화와 전면 벽화라는 역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스티나 천장의 ‘창세기’와 벽화인 ‘최후의 심판’이 그것이죠. 그것도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키는 자 마음대로였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교황의 묘지 계획은 율리우스 2세의 간섭을 받기는 했어도, 미켈란젤로가 초기에 의욕을 가질만한 조각 중심의 기념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계획은 지지부진, 그리고 교황도 1506년에 제안을 하고도 지원을 하지 않고 망설이다가 겨우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1513년 사망하고, 이 모든 작업 자체가 떠내려 가버립니다.

언제든 제대로 준비되면, 자기 역량을 보여주고 싶었던 미켈란젤로는 곧이어 좌절감 속에 끊이지 않는 고통을 당합니다. 미리 자기 돈을 들여서 준비했던 조각품들은 구조물 축소 명령에 의해서 갈 곳이 없어졌고, 조수들에 대한 인건비나 재료비는 아무도 주지 않았던 거죠.

이 조각이 부분적으로 팔린 후 흘러흘러 프랑스의 왕 프랑수와 1세가 구입해서 루브르가 보관하게 된 것도 뿔뿔이 흩어지고 변형된 그의 계획의 결과였습니다. 이상한 것은 계획이 연기되고 변경되는 것은 다반사였는데, 정작 이 기념물을 만드는 일은 끝끝내 취소되지 않았다는 거죠.

안 한다고 하다가 다시 불려가고 다시 제작하다가 또 취소 됐으니 그만하라 하고…. 이런 반복은 일을 마치지 않으면 쉬지 못했던 미켈란젤로에게 다른 이들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이 조각 자체의 아름다움을 넘어서 우리는 인간 영혼을 대표하는 이 조각이, 인간으로서의 고통과 육체의 족쇄에서 괴로워하며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재료 속의 부분과 완성돼 정돈된 조각의 선은 재료와 예술의 대결을 보여주는 듯하다.”

제자 가운데 한 명이 미켈란젤로가 사망한 후 30년이 지나 스승이 들려줬던 당초의 계획을 데생으로 남긴 것이 전해집니다만, 처음에 미켈란젤로 머릿속에 완성하고자 했던 그 세계는 실제 보여진 것이 없어 그 실체가 어떤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여러 번의 중단 끝에 모세가 등장하는 율리우스 2세의 영묘를 완성하는 것으로 자신의 고통을 풀어보려 합니다. 그 결과가 지금 바티칸 바깥의 빈콜리에 있는 베드로 성당의 조각품입니다.

미술사학자 안현배는 누구?

서양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가 예술사로 전공을 돌린 안현배씨는 파리 1대학에서 예술사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예술품 자체보다는 그것들을 태어나게 만든 이야기와 그들을 만든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라와 언어의 다양성과 역사의 복잡함 때문에 외면해 오던 그 이야기를 일반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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