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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볼 PM 6:29]프로야구 ‘인연’은 해피엔딩으로

확률 36분의 1. 두산 관계자들은 ‘야생마’로 통하던 한창 때의 LG 이상훈을 볼 때마다 당시 악몽이 되살아났다고 한다.

신인 지명을 위한 두산과 LG의 잔인한 ‘주사위 던지기’는 두 팀 라이벌 역사에서 매번 주요 단락으로 다뤄진다. 1992년 말 서울 지역 ‘최대어’였던 이상훈을 두고 진행된 ‘주사위 놀이’는 두산 승리로 끝날 것만 같았지만 ‘운명의 장난’에 승자는 또 바뀌었다.

주사위 2개를 3차례 던지기로 했다. 첫 번째 승부에서 두산은 LG에 10-8로 리드를 잡았다. 두 번째 승부에서 LG가 5점만을 얻어 두산은 중간 전후의 스코어만 따내면 굳히기에 들어갈 흐름이었으나 그만 주사위 2개 모두 1이 나오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말았다. 36차례 주사위를 던져 고작 1번 정도 나올 확률의 스코어가 하필이면 그 순간 나오고 만 것이다. 2점만을 추가해 12-13으로 어이없이 역전당한 두산은 3차전에서도 밀려 서울 지역 우선 지명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두산은 다 잡았던 이상훈을 LG에 넘기며 거포 유망주 추성건을 뽑아 ‘우타자 보강’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두산 이상훈 코치.

두 팀 스카우트 모두 ‘특훈’까지 했던 그해 가을의 주사위 던지기는 두산에게도, 이상훈에게도 먼 옛날의 추억이 됐다.

이상훈은 2년간 고양 원더스에서 지도자 수업을 쌓은 뒤 2015년 프로 코치로 첫 시즌을 맞는다. 지난달 30일 이상훈 코치는 ‘곰들의 모임’ 행사에서 신입단 멤버로 관계자와 팬들에게 인사했다. 두산 관계자가 그해 ‘주사위 던지기’를 떠올리며 “이상훈 코치를 모시는데 무려 22년이 걸렸다”고 하자 이 코치는 “그러고보면 어린 시절 나는 두산과 인연이 더 많았다”고 했다. 서울고 재학 시절, 당시 OB 베어스 선수들이 창원 캠프에서 훈련하는 것을 보고 프로 선수들을 동경했다고 했다. “프로 선수들이 훈련 뒤 양말을 갈아신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고교 선수들에게 야구 양말이 귀한 시절이었는데 수시로 양말을 갈아신는 것이 그저 신기했던 얘기다. 이 코치는 “당시 OB 선수들이 서울고에서 훈련하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친숙해졌던 것 같다”고도 했다.

이 코치와 두산의 인연은 그렇게 긴 시간을 돌고돌아 다시 생성됐다. 이 코치는 “코치로 평가받을 시기조차 아니다”라고 했지만, 그의 역할에 따라 내년 시즌 두산 행보가 꽤 많이 달라질 수도 있다. 두산은 장민익·진야곱·함덕주·이현호 등 다수의 좌완 유망주를 안고 내년을 기대하고 있다. 두산은 이들 좌완 중 둘은 확실한 1군투수로 바로 커주길 바라고 있고, 김태형 두산 감독은 이 코치가 디딤돌이 되줄 것으로 믿고 있다.

이상훈과 두산이 그랬던 것처럼 올가을에는 극적인 만남이 많았다.

선동열 전 감독이 재계약을 하고도 KIA 사령탑에서 전격 사퇴하며 재야에 있던 김기태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팬들의 강렬한 뜻이 에너지가 돼 ‘가상 만남’ 속에만 있었던 한화와 김성근 감독의 인연도 전격적으로 만들어졌다.

피천득의 수필 ‘인연’은 ‘새드엔딩’으로 끝난다. ‘세번째는 아니 만나는 게 좋았을 것’이라는 가슴 쓰린 여운을 남긴다. 올해 맺어진 프로야구 ‘인연’은 그와는 다른 인연을 지향하고 있다. 일단 모두 ‘해피엔딩’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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