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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원’ 고수 “나도 열등감 있다, 하지만 결국 예술은 노력의 열매” [인터뷰]

배우 고수(36)가 출연한 이원석 감독의 영화 <상의원> 속 캐릭터 이공진은 어느 하늘에선가 떨어진 것 같은 신비한 존재다. 출신 자체가 신비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는 천민출신이며 어디서 와서 어떻게 왔는지 불분명한 인물이다. 기방을 전전하면서 기생들의 한복을 편하면서도 파격적으로 변신시키는 일을 한다. 천민 출신이라면 흔히 가질 수 있는 신분상승의 욕망도 없다. 그저 누구에게 어떤 옷을 입히면 어울릴까. 어떻게 하면 예쁘고, 편안한 옷을 입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하지만 욕심이 없는 인물은 반드시 욕심이 많은 인물들 사이에서 애꿎은 운명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는 양반으로의 신분상승을 앞둔 어침장(왕의 옷을 만드는 관청의 수장) 조돌석(한석규)와 군주로서 가진 게 없다는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왕(유연석)에게 휩쓸린다. 고수의 인터뷰는 그곳에서부터 시작했다. 가엾게 사는 공진이 불쌍한가, 아니면 욕심을 놓지 못하는 돌석이 불쌍한가.

배우 고수가 최근 서울 종로구 가회동 한 카페에서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이원석 감독의 영화 ‘상의원’에서 이공진 역을 맡았다.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저는 당연히 아무 것도 갖지 않은 공진이 불쌍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반응이 갈리더라고요. 의외로 돌석이 불쌍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놀랐어요. 그런데 그 열등감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요. 돌석은 공진을 시기했지만, 공진도 결국 사람이거든요. 하지만 공진은 그 시련을 행복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에서는 달랐죠.”

오는 24일 개봉하는 영화 <상의원>은 아름다움 그리고 질투에 대한 영화다. 조선시대 시대 상의원을 배경으로 30년 베테랑 어침장 조돌석과 천민출신 디자이너 공진이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아름다움을 갖지 못해 질투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거기에 왕의 사랑을 받지 못해 음지의 꽃처럼 시든 왕비(박신혜)와 결핍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왕이 엮인다. 이 작품은 고수 첫 사극이었다.

배우 고수가 최근 서울 종로구 가회동 한 카페에서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이원석 감독의 영화 ‘상의원’에서 이공진 역을 맡았다.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제가 옛 것 특유의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한 공간은 분명히 시공(時空)을 초월해서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 신기한 것 같아요. 역사 이야기가 다 재밌다고들 하는데 저는 궐 안의 이야기보다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땅은 좁지만 지역성이 너무 뚜렷하잖아요. 책을 읽어도 그런 소재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고수는 천재 디자이너 연기를 하기 위해 직접 바느질을 배우고 패션을 익혔다. 바느질로 늘어난 실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얼마 전 태어난 자신의 아기에게 입힐 돌 옷을 만들었다. ‘바늘을 넣을 때는 혼을 집어넣고, 뺄 때는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극중 대사가 생각나는 장면이었다. 게다가 지금껏 드라마나 영화에서 우울해 있던 그의 이미지와는 달리 공진은 능청스럽고, 오지랖도 넓으며, 만사태평인 인물이었다.

배우 고수가 최근 서울 종로구 가회동 한 카페에서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이원석 감독의 영화 ‘상의원’에서 이공진 역을 맡았다.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현장에서 웃을 수 있어서 너무 재미있었어요. 왜 지금까지 이렇게 안 웃었는지 모르겠어요. 공진은 천재라기보다는 그냥 자유로운 인물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보이지 않지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 예를 들면 권력, 지위, 신분, 배경 그런 게 있잖아요. 이런 부분에서 자유로운 인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어요. 천재가 진짜 있을까요? 영화 후반부에 공진의 손가락이 나오는데 바늘로 입은 상처로 가득해요. 결국 노력하는 천재였죠. 저도 후천적인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의 연기생활 역시 후천적인 노력의 산물이었다. 1999년 드라마 <광끼>로 연기를 시작해 2001년 <피아노>로 이름을 알리고 영화 <백야행> <고지전> , 드라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황금의 제국>에 출연하면서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는 내향적인 성격을 연기를 통해 조금씩 바꿔온 역사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는 인터뷰에 나선지 10년이 넘는 경력이었지만 항상 말을 조심했고, 생각이 깊었으며, 침착했다.

배우 고수가 최근 서울 종로구 가회동 한 카페에서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이원석 감독의 영화 ‘상의원’에서 이공진 역을 맡았다.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열등감이요? 저도 예전에는 많이 느꼈죠. 지금은 좀 줄어든 것 같지만요. 제가 갖지 못한 연기나 재능을 가진 사람을 볼 때 부러운 마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제 것이 아닌 것을 뺏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서서히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면 뭐하냐’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력을 하자는 쪽으로 저를 다잡았어요. 연기도 잘 하는 사람을 보면 시기하거나 질투하기 보다는 찬사하고 칭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죠. 예술 역시 그래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의 열매죠.”

결국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의 마음속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없다’는 명제로 가득 차 있었다. 매년 겨울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 만나 온 이 배우는 자유로운 공진 역을 통해 좀 더 자주 찾아올 것임을 약속했다.

배우 고수가 최근 서울 종로구 가회동 한 카페에서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이원석 감독의 영화 ‘상의원’에서 이공진 역을 맡았다.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한 때 빼어난 외모로 조각이라는 의미의 ‘다비드 상’과 이름을 합쳐 ‘고비드’라는 별칭을 갖고 있던 이 배우도 약간의 열등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인터뷰를 하면서 왜 이렇게 희열이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빼어난 외모를 가진 고수 역시 한 명의 인간이며 우리처럼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 친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게 됐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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