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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아이들 독기 품었다 … 슈틸리케 눈도장 위해 제주전훈 치열한 경쟁

박종우·정성룡 등 월드컵 뒤 내리막길

울리 슈틸리케 축구 대표팀 감독(60)은 변덕스러운 제주 서귀포의 겨울 날씨에 얼굴을 잔뜩 찌뿌렸다. 한겨울에도 포근한 날씨를 기대하고 전지훈련 캠프를 차렸는데, 정작 훈련을 시작한 15일부터 사흘 내내 서귀포 시민축구장에 거센 눈보라가 몰아친 탓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강추위 속에 멍든 가슴을 달래는 것은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멤버, 즉 ‘런던 아이들’도 똑같았다.

브라질월드컵까지만 해도 홍명보 전 감독(45)의 신뢰 속에 주전을 노렸지만 불과 반년 만에 집단 슬럼프에 빠지면서 재기를 꿈꿔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국내와 일본·중국 등에서 뛰는 선수들로 전지훈련 명단을 작성하며 평소보다 많은 28명의 선수를 뽑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1주일간 훈련을 치른 뒤 21일 청백전 결과에 따라 22일 호주에 데려갈 23명의 선수들을 발표할 계획이다.

유럽 및 중동에서 뛰는 선수들까지 포함하면 3배수에 가까운 경쟁 구도다. 지난 3일간 포지션별로 선수들을 배치해 훈련하면서 유독 눈에 띈 것은 ‘런던 아이들’이었다. 대표팀 관계자는 “런던 아이들의 특권 의식은 사라지고, 이젠 살아남겠다는 치열한 의지만 남았다”고 귀띔했다.

런던올림픽 당시 패기 넘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각광받았던 박종우(25·광저우 푸리)는 이번 훈련에서 런던 아이들의 타이틀을 벗어던진 대표적인 선수다. ‘만세 세리머니’로 전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던 그에게 2014년은 실망스럽기만 하다. 중국 프로축구로 활동 무대를 옮겨 발돋움을 꾀했지만, 대표팀에선 기성용(25·스완지시티)의 단짝 자리를 한국영(24·카타르SC)에게 빼앗겼다.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기용되는 수비수 박주호(27·마인츠)와 장현수(23·광저우 푸리)를 생각하면 내년 1월 호주로 가는 길을 장담할 수 없다.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영의 부상 공백에 막차를 탔던 또 다른 수비형 미드필더 정우영(25·빗셀 고베)의 처지는 더욱 답답하다. 일본 프로축구에서 33경기를 뛰면서 3골을 터뜨리는 등 맹활약을 펼쳤지만, 현실은 박종우보다 뒷길인 6번째 옵션이다.

런던올림픽에서 와일드카드로 부상 투혼을 발휘했던 수비수 김창수(29·가시와 레이솔)도 명예 회복이 다급한 것은 다르지 않다. 올해 벤치 멤버로 밀려나며 14경기 출전에 그친 그는 대표팀에서도 ‘베테랑’ 차두리(34·서울)에게 주전 자리를 내줬다. 여기에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첫골과 마지막 골을 터뜨리며 28년 만의 우승에 큰 공을 세운 임창우(23·울산)까지 급부상하면서 ‘끼인 세대’가 되버렸다. 이 때문인지 김창수는 대표팀 훈련에서 가장 먼저 나와 가장 늦게 들어가는 선수로 변신했다.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역사상 첫 메달을 나란히 지켜냈던 수문장 정성룡(29·수원)과 이범영(25·부산)의 생존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브라질월드컵부터 주전 골키퍼로 우뚝 선 김승규(24·울산)와 새롭게 등장한 김진현(27·세레소 오사카)에게 밀린 모양새다.

슈틸리케 감독은 아시안컵에 3명의 골키퍼만 데려가기로 했기에 자칫 잘못하면 참가조차 못 할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의 눈도장을 받으려는 선수들의 열의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울 수밖에 없다. 정성룡은 “모든 팀 동료들이 똑같겠지만 21일 열릴 청백전에 맞춰 모든 걸 준비하고 있다”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준비해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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