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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팬 원하는 것 알고있다 장담할 수 있나”

스포츠경향 초청 한·미 축구산업 포럼 ‘5인의 메시지’

‘팬들의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하라.’ 18일 스포츠경향과 경향신문이 주최한 ‘한·미 축구산업 포럼’ 발제자로 나선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는 팬이었다. 출범 초기 위기를 딛고 자생력있는 리그로 변모한 미국 프로축구(MLS)의 성장은 팬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결과였다. MLS는 팬들이 ‘우리 팀’이라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전략적인 접근을 통해 축구 불모지에서 흥행의 싹을 틔웠다. 위기의 K리그도 축구 팬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들을 우리 팀으로 느끼게 하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K리그 생존을 위한 화두를 던진 5명의 발제자들의 강의를 정리했다.

18일 서울 한양대에서 열린 ‘한·미 축구산업 포럼’에서 주제 발표에 나선 정성훈 이사·곽대희 교수·미켈 스트로제 실장·테일러 그레이엄 실장(앞줄 왼쪽부터)과 축구 관계자 등이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리그 성공 = 구단 성공’ 상생 콘셉트 시너지

■찰리 신(MLS사무국 전략·기획·연구팀 이사)

1994년 미국 월드컵을 계기로 설립된 MLS는 1996년 본격적인 리그를 시작한 이후 성장을 거듭했다. 2002년에서 2006년까지 구단 운영 개선 작업을 진행하며 SUM(Sports United Marketing)이라는 마케팅 회사를 설립하면서 리그의 자립 기반을 만들었다. 2006년에는 처음으로 ESPN과 방송 계약을 했고, 2007년에는 세계적인 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영입되면서 인기에 불을 지폈다.

MLS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리그 구조로 각 구단은 지역 내의 운영 권리를 받는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상업적인 권리를 리그가 갖는 구조인데 ‘MLS가 성공해야 구단도 성공한다’는 상생의 콘셉트가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샐러리캡 제도로 비용이 절감됐고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했으며, 각 구단은 지역 방송 판매와 경기장을 활용한 수익 기반을 마련하면서 성장했다. MLS와 미국 국가대표 경기, 여기에 히스패닉이 많은 특성을 고려해 멕시코 팀의 경기까지 더하는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 중계권료를 크게 올려받으며 수익을 확보했다. 모두 전용 경기장을 만들어 팬 친화적이고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게 만든 것도 성공 배경이다. 출범 당시만 해도 축구 자체를 몰랐던 미국은 이번 브라질월드컵 결승 시청자 수가 미국 프로농구(NBA)를 넘어설 만큼 인기가 높아졌다.

리그 자체보다 ‘내 팀’에 관심…팬 생각 읽어라

■곽대희(미시간대 교수·스포츠 매니지먼트 전공)

MLS는 12~17살의 젊은 층을 바탕으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MLS 팬은 미국의 프로 스포츠 팬중 가장 연령층이 어리다. 이런 고객층을 분석하고 이해하면서 마케팅 공략법이 바뀌었다. K리그는 명확히 고객을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 프로축구연맹이 ‘토크어바웃 K리그’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는데 팬들은 리그가 아닌 나의 팀이라는 생각에서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리그 자체가 아니라 결국은 팀이다. 구단이 지역으로 들어가 소비자인 팬으로 하여금 내 팀으로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나의 팀과 즐거운 경험을 가질수록 그 팀에 대한 애정도가 증가한다. MLS는 라이벌 팀을 활용해 이를 높이고 있다. 스포팅 KC는 시카고 파이어와 라이벌인데, 시카고가 패하는 날 시내에서 햄버거를 공짜로 주는 이벤트를 통해 내 팀에 대한 팬들의 애정도를 더 높인다. 이 캠페인을 ‘셋 더 파이어’라고 지었는데 얼마나 기발한가. 팬들이 콘텐츠를 만드는 주체가 되는 게 중요하다. MLS는 팬들이 직접 참가하는 의사결정을 늘렸다.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경기장으로 끌어들이게 했다. 한국 시·도민 구단들이 생각해볼 메시지다. MLS의 성장은 클럽이 커뮤니티 안에 뿌리를 내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감동 스토리를 만들도록 지속적 노력을 하고 특히 디지털 공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최다관중 시애틀, 단장 신임도 팬투표로

■테일러 그레이엄(시애틀 사운더스 마케팅실장)

시애틀은 올시즌 MLS에서 가장 많은 평균 관중(4만4000여 명)을 모은 팀이다. 구단주의 열정으로 꾸준히 성장해온 시애틀은 항상 팬을 먼저 생각한다. 팬들이 경기장에 오기 전에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파악하고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계획을 짠다. 구단 상품을 만드는 데에 팬도 함께 참여한다. 시즌 티켓 디자인과 머플러 등을 디자인하는 데 팬들의 의견을 반영한다. 구단 단장의 신임 여부도 팬 투표로 진행하는데 올해 재신임을 받아 4년을 더 일하게 됐다. 구단 이름(사운더스)을 정할 때도 팬 투표로 결정했을 만큼 팬은 우리팀을 움직이는 주체다. 티켓에 팬들의 이름을 넣어주고 그들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경기장에 일찍 오는 팬에게는 맥주를 싸게 마실 수 있게 하는 등 우리 팀을 사랑하는 팬이라면 금전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도심에 위치한 경기장의 접근 구조를 감안한 티켓 판매 전략을 세우는 것도 팬 확보에 주효했다. 지난 6년간 지속적으로 지역 팬들의 충성심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결국 많은 관중의 결실로 돌아왔다.

팬보다 기능 치우친 한국경기장 다시 생각해야

■정성훈(스포츠경기장 전문 설계회사 로세티 이사)

축구 경기장에서 만드는 돈은 티켓 수익, 스폰서 수익, 운영 수익 등이다. MLS는 2만 석 정도의 규모인데 이를 잘 활용하고 있다. 팀이 이겨야 가치가 올라가지만 승리하지 않고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경기장에 있다. 경기장은 수익과 직결된다. MLS LA갤럭시 구장은 네이밍 라이트로 연간 700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이런 경기장은 결국 팬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들이 올 수 있는 경기장을 만드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 팬들은 경기장을 통해 다양한 경험과 스토리를 쌓게 된다. 이 때문에 경기장은 팬의 커뮤니티 속에 함께 녹아 있다. 지역마다 팬들의 정서와 함께 경기장의 형태가 달라질 수 있는 이유다. 요즘은 팬과 선수가 만나는 동선으로 경기장을 짓고, 좌석도 다양하게 개발한다. MLS에는 골라인 뒤쪽에 프리미엄시트가 등장했다. 이는 팬 서비스인 동시에 수익과도 연결된다. 그동안 미적이고 기능적인 요소에 치우쳤던 한국의 경기장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팬들의 욕구에 부합하고 이를 통해 수익과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팬은 구단의 최대자산…SNS 중심 소통 주력

■미켈 스트로제(밴쿠버 화이트캡스 마케팅실장)

우리 구단은 팬과의 소통을 위해 커뮤니케이션 부서가 활성화돼 있다. 특히 연구·개발(R&D)팀을 별도로 운영해 팬과 함께 하는 법을 연구한다. 이를 위해 전속 디자이너가 있는데 그들이 소셜미디어 콘텐츠 제작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외부의 에이전시에게 주던 방식을 내부에서 직접 하면서 SNS를 중심으로 빠르게 변하는 팬들의 요구에 잘 대처할 수 있다. 특히 우리는 다른 팀과는 차별화된 우리 팀만의 브랜드 전략을 세우는 데 집중했다. 브랜드는 하나의 일관성을 갖고 여러 콘텐츠에 적용되도록 했다. 이영표가 은퇴를 했을 때 만든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은 우리 팀 중남미 선수에게도, 지역 출신 어린 선수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게 했다. 경기의 승리는 팀 혼자 이기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역을 대표하는 명예는 팬과 함께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것은 우리의 명예(Our all, Our Honour)’라는 슬로건으로 커뮤니티와 함께 했다.

팬들은 ‘무인식→접촉 시도→간헐적인 접촉→팬→지지자’가 되는 과정을 겪는데 각 단계별에 맞게 팬을 끌어들이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팬은 우리의 모든 것이며 가장 큰 자산이다. 선수들의 얼굴에 팬과 도시를 담은 이미지를 만들어 광고했다. 팬과 하나가 돼 같이 싸우고 지역과 함께 한다는 생각을 심어줬다. 축구장에 오는 것은 22명의 선수가 공을 차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를 경험하러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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