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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 나는 엄마 ‘장소연 전성시대’

초등학교 1학년 딸 김고은양(7)은 합숙 때문에 떨어져 살지만, 쉬 보채지 않는다. 어린 말로 엄마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 엄마가 코트에 나오지 않아도 “엄마, 왜 경기에 안 나와?”라고 묻는 대신 “엄마, 엄마도 옛날에는 십 몇 점씩 내고 그랬지?”라며 위로한다. 배구선수 엄마 장소연(40·한국도로공사)은 “그럼, 엄마도 예전에는 십 몇 점씩 내고 그랬지”라고 힘줘 답하곤 했다.

딸 고은양은 18일에도 도로공사의 홈경기가 열린 성남실내체육관을 찾았다. 자기가 태어나기전, 펄펄 나는 엄마를 보지 못한 고은양은 요즘 박수치느라 손이 남아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것이 1992년부터 태극마크를 놓지 않은 장소연은 2004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2007년 고은양을 낳았고, 배구 선수가 아닌 심판으로 활동했다. 코트로 돌아온 것은 2009~2010시즌. 신인 드래프트를 거쳐야 했다. 2011~2012시즌 뒤 은퇴했다가, 지난 시즌 다시 도로공사의 플레잉 코치로 복귀했다. 고은양은 드디어 말로만 듣던 ‘펄펄 나는 엄마’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중이다. 부상에서 돌아와 통증과 나이를 한꺼번에 지워버린 ‘엄마의 전성시대’, ‘장소연의 전성시대’다.

여자배구 한국도로공사 장소연이 18일 성남 현대건설전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성남 | 이용균 기자

장소연은 18일 2014~2015 NH농협 V리그 여자부 2위 현대건설과의 경기에 주전 센터로 나섰다. 예전만큼의 스피드는 나오지 않지만, 이를 충분히 채울 경험과 흐름을 읽는 눈을 지녔다. 장소연은 이날 1세트에서 결정적인 블로킹과 속공을 성공시키며 승리에 보탬이 됐다. 2세트에서도 세트 후반 연달아 세터 이효희와 기막힌 이동 속공을 성공시키며 분위기를 가져왔다. 넉넉한 리드를 뺏기면서 2세트를 내준 도로공사는 흔들릴 법 했지만, 3세트 초반 문정원의 강서브가 상대 진영을 헤집으며 분위기를 다시 가져왔다.

그 흐름을 확실히 다잡은 것이 또 장소연이었다. 3세트 10-4에서 네트 근처 혼전이 겹치며 랠리가 오가던 중 장소연은 네트를 등진 상태에서 2단 공격을 상대 코트 뒤쪽으로 밀어 넣으며 승부를 굳히는 점수를 따냈다. 마치 등 뒤에 눈이 달린 듯한 플레이였다. 농구로 치자면, 민완 센터 김주성의 골밑을 향한 노룩 패스를 닮았다. 야구로 치자면 유격수 박진만이 보지도 않고 2루수에게 던져주는 글러브 토스 더블 플레이였다. 장소연은 “아예 안 보고 한 건 아니고, 슬쩍 뒤가 비어있다는 걸 확인하고 밀어넣었다”며 웃었다.

도로공사는 이날 2위 현대건설에 3-1로 이기며 3위 흥국생명을 승점 1점차로 따라붙었다. 장소연은 10득점을 올리며 큰 힘을 보탰다. 지난 15일 대전 KGC인삼공사전 11득점에 이어 2경기 연속 두자릿수 득점이다. 딸 고은양의 ‘옛날 십 몇 득점씩’은 현실이 됐다. 장소연은 “이제 딸에게 ‘엄마는 지금도 십 몇 점 낼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며 ‘엄마 미소’를 보였다.

장소연은 해가 넘어가면 우리 나이로 마흔 둘이 된다. 비교적 선수 생활을 오래 한다는 프로야구에도 장소연 보다 나이 많은 선수가 없다. 프로야구 최고참인 LG 이병규, 삼성 진갑용, KIA 최영필 등이 장소연과 동기다. 당연히 여자 배구 최고참 선수다. 도로공사 후배들은 세터 이효희(34)까지는 ‘언니’라고 불러도, 장소연에게는 ‘언니’라고 하지 못한다. 선수들은 “아, 언니가 아니라 코치님이죠”라고 답한다. 실제 선수등록도 플레잉 코치다. 도로공사 서남원 감독은 “최근 2연승은 장코치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여자배구 도로공사 장소연(위 오른쪽)이 지난 15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KGC인삼공사와의 경기에서 백목화의 스파이크를 블로킹해 득점을 올리고 환호하고 있다. 대전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장소연은 지난시즌 막판 발목을 다치면서 선수생활에 고비가 왔다. 재활에 무려 7개월이나 걸렸다. 장소연은 “실제로 배구를 그만 둘 위기가 몇 차례 있었다. 서 감독님과 트레이너 선생님 덕분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훈련을 이어갈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최근 도로공사의 주전센터 정대영이 종아리 근육을 다치면서 장소연에게 기회가 왔고, 정대영 못지 않은 실력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서 감독은 “정대영이 긴장 좀 해야 할 것”이라며 흐뭇해했다.

최고참답게 배구 선수로서의 삶은 20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한국 배구의 변화를 몸으로 느꼈다. 장소연은 “10년 전의 배구가 정교함의 배구라면, 지금의 배구는 파워와 스피드의 배구다”라고 했다. 그 10년의 세월의 무게가 가져온 파워와 스피드의 부족은 거꾸로 10년 전 정교함의 배구로 극복한다. 장소연은 “이효희 세터가 옛날 배구, 정교한 배구를 안다. 나도 옛날에 배구를 했고. 그 옛날 정교한 배구의 토스를 기막히게 올려준다. 다 세터가 잘 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기 후 기자회견이 끝났다. 문밖에서 기다리던 딸 고은양이 뛰어들어와 엄마 장소연에게 안겼다. 고은양이 환하게 웃으며 “엄마, 정말 잘했어요”라고 했다. 장소연은 “딸이 경기장에 오면 더 신난다”고 답했다. 고은양이 덧붙였다. “와, 엄마 이제 신문에도 나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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