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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탁구공도 결국 ‘성적은 실력대로’

“영향을 받는 선수는 조금 있지만, 그렇다고 기존 질서를 무너뜨릴만한 변수는 아니다.”

공이 바뀐다고 실력있는 선수가 갑자기 하락하고, 못하던 선수가 갑자기 반사 이익을 얻는 일은 없다. 기존 셀룰로이드 공이 인화성이 높다는 이유로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퇴출된 뒤 대체재인 플라스틱 공을 처음 사용해 전국종합선수권대회(전남 여수·16~22일)를 치르고 난 탁구선수와 지도자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부드러운 재질에 표면에 미세한 돌기가 나 있는 셀룰로이드 공과 달리 플라스틱 공은 표면이 매끈매끈하고 지름도 0.5㎜ 더 커서 아무래도 회전이 덜 걸리고 구속도 줄었다. 그러다보니 회전을 많이 이용하는 수비형 선수에게 불리하고 공격형 선수에겐 유리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대표적인 수비 전문 주세혁(삼성생명)은 “상대가 스핀을 많이 걸어야 나도 걸 수 있는데, 공이 묵직한 느낌이 있어 스핀이 잘 안 걸린다”고 반응했다. 빠른 박자로 공격을 이어가는 스타일인 이상수(삼성생명)는 “공이 변화를 덜 타서 실수가 줄었다. 정확도가 올라갔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사진|월간탁구 제공

하지만 지각변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자 단식 결승에는 정영식(KDB대우증권·국내 랭킹 2위)과 김민석(KGC인삼공사·1위))이 올라왔고 여자단식 결승서는 양하은(대한항공·1위), 서효원(한국마사회·5위)이 맞붙었다. 모두 기존의 실력파들이다.

정영식과 양하은이 각각 우승하면서 빠른 공격에 연결력이 좋은 선수가 유리하고, 수비선수는 불리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정영식은 8강전에서 그동안 열세였던 주세혁에게 완승을 거뒀고, 양하은도 수비 전형 서효원을 쉽게 꺾었다. 정영식은 “주세혁 선배와의 8강전, 치열한 승부를 예상한 김민석과의 승부에서 상대 공격 때 회전이 덜 걸리고 파워 드라이브에 힘이 덜 실려오니 편했다”며 반겼다.

탁구인들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걱정을 많이 했다. 연습 때 랠리가 자주 끊기고 바운드도 불규칙한데다 자주 공이 깨져 제대로 경기를 치를 수 있을까 우려했다. 그러나 막상 공식 경기에 들어가니 선수들이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모두들 잘 극복해냈다.

삼성생명 여자부 최영일 감독은 “딱딱한 플라스틱 공이라서 전보다 훨씬 많이 깨지는데, 그건 모두 같은 조건이다. 핌플 등 이질러버를 써 반발력과 회전력을 사용하는 선수들이 일부 어려움을 겪는데, 그렇다고 기존 질서를 흔들만한 변수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삼성생명 남자부 이철승 감독은 “문제가 많이 있다. 좋은 공도 40번 정도 치고 나면 변형돼 있고, 바운드와 스핀이 적게 먹고 스피드도 떨어진다”면서 “1년 정도는 지켜봐야 정확한 분석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감독도 “한두 명 공의 영향을 받아 처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 실력을 갖춘 선수가 유리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공의 재질 변화는 21점제에서 11점제로 전환한 이후 국제탁구연맹(ITTF)이 시도한 두 번째 ‘탁구 혁명’이다. 결국은 중국의 독주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도 있다.

내년 1월7일부터 3차례 국가대표 상비군 선발전이 열리고, 2월 초부터 쿠웨이트·카타르 오픈이 열리는데 이어 4월에는 세계선수권(개인전·중국 소주)이 이어진다. 각종 대회를 치르면서 플라스틱 공에 대한 국내외 탁구인들의 평가는 지속적으로 화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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